7. 네가 떠난 지 3일째 되던 날

나는 너와 완전히 이별했다

by 흐를일별진



6월 9일


대근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넌 지 3일째 되던 날.

부산에서 눈을 뜬 나는 일찌감치 엄마와 집을 나섰다. 엄마는 내게 대근이를 보내는 길이니 깨끗이 씻고 옷을 갖춰 입어야 하는 게 아니냐 물었고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답했다. 평소 대근이는 내가 머리를 감고 나갈 때와 그냥 나갈 때의 차이를 정확히 알았다. 물리적으로 우리가 떨어질지라도 마음만은 함께였기에 내가 긴 시간 외출한다고 느끼게 하고 싶지 않았다. 금방 나갔다가 돌아올 것처럼, 곧 우리가 다시 만날 것 같은 기분으로 대근이의 유골함을 안아 들었다.


그날은 날씨가 좋았다. 파란 하늘 사이 새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그 와중에 바람은 빠르게 불어서 구름이 바람을 타고 지나가는 게 보였다. 대근이가 날아 오르기엔 더없이 좋은 날이었다.

엄마와 나의 목적지는 우리가 자주 가던 뒷산으로, 위치를 잘 잡으면 부산항이 내려다보였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뒷산이 바로 보인다는 점에서 대근이를 보내주기에 최적의 장소라 생각했다.


평소엔 조금만 걸어도 힘들었던 길이 전혀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람이 선선했다. 대근이는 높은 곳을 좋아했기에 우리가 주로 놀던 곳을 지나 더 높이, 숲속으로 들어갔다. 중간중간 괜찮은 곳이 보이기도 했지만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걷다 보면 느낌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대근이가 좋아할 만한 곳, 바로 여기라는 확신이 드는 곳.


산에 들어선 지 20분이 지날 때쯤, 산 높은 곳에서 아래로 향하는 강한 바람을 마주했다. 바람길을 따라 시선을 돌려보니 중간에 완벽한 장소가 있었다. 우거진 나무 사이, 마치 자연이 만들어낸 액자처럼 공간이 트여있는 지점이 있었다. 그 길 중앙에 서니 부산이 내려다 보였고 잘 찾으면 우리 집도 보일 것 같았다. 난 그곳에 서서 대근이에게 물었다. 당연히 대답은 없었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그곳은 대근이가 원하는 곳이었다.



유골함을 꺼내 봉투를 손에 쥐었다. 사람들이 다니는 길에서 벗어나 풀숲 안으로 조금 들어갔다. 산꼭대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바닷가로 향했다. 나무가 흔들리며 잎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새소리도 들렸다. 그 순간의 모든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나는 봉투 안의 뼛가루를 조금씩 오른쪽 손으로 옮겼다. 이윽고 대근이는 가루가 되어 바람을 탔다.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바람길을 따라 자연으로 돌아갔다. 일부는 바닥으로 떨어져 흙이 될 것이고 일부는 나무에 붙어 나무가 될 것이다. 비가 오면 미처 날아가지 못한 뼛가루가 땅에 스며들지도 모른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잠깐 쉬었고 바람이 불면 다시 아이를 보내주었다. 뚜껑에 붙여 두었던 수염도 바람에 날렸다. 저 풀숲 어딘가에 떨어진 수염도 언젠가는 땅으로 돌아가겠지. 유골함은 땅에 묻어두었다. 장례 담당자의 말에 의하면 머지않아 흙으로 분해될 거라고 했다.

그렇게 완전히 대근이와 이별한 후,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몇 번을 봐도 완벽한 장소였다. 숨숨집도 있고 캣타워도 있고 장난감도 있다. 볕도 있고 그늘도 있었고 온갖 자연의 향기가 바람을 타고 주변을 떠돌있다. 후회 없이 잘 보내줬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엄마도 나도 말이 없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다리가 후들거려 벤치에 앉았다. 모든 긴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문득 별 생각 없이 “모기가 많다. 대근이 물리면 안 되는데”라는 말을 하고선 울컥함을 삼켰다. 대근이에겐 육신이 없었다. 모기에게 물릴 일도 없는데 왜 그런 말이 튀어나왔을까.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모든 일이 워낙 빠르게 진행돼서 내가 이 상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온전히 슬픔에 잠기는 일도 필요한데. 아니, 대근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 병원에 있을 때 내 슬픔은 모두 소진된 건가.

나는 내 감정이 엄마아빠와 석이에게 전이되길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슬픔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예정된 이별이었다. 후회한들 소용이 없었다.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나라는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했을 거다. 혹은 어떠한 식으로도 나는 대근이를 나보다 일찍 보냈을 거다. 분명 대근이는 행복했고 나는 그걸 알았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의 루틴은 행복했다. 내 새끼는 내가 잘 안다.

아이는 내 곁을 떠나면서 내게 새로운 환경을 선물했다.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고민하던 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대근이는 불행했던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가족의 곁으로 되돌려 놓았다. 뿔뿔이 흩어져 살던 우리가 다시 모이게 된 건 대근이 덕분이었다. 우리의 마지막 교감은 충분했다. 나는 대근이에게 슬퍼하지 않겠다 약속했으니, 아이는 나와의 추억을 잊고 새로운 생을 준비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대근이가 이생에서 어떠한 미련도 남기지 않기를 원했다.


엄마가 불교 신자인 지인분께 내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동물은 자기 몸을 자주 바꾸는 게 좋다고. 말인즉슨 길든 짧든 여러 번 윤회 과정을 거쳐야 훗날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 건데, 그 말을 들은 후 나는 며칠 동안 동물의 윤회에 대해 찾아봤다. 물론 모든 걸 정확하게 이해했다곤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슬픈 마음을 다잡는 데는 도움이 됐다. (나는 기독교 신자였지만 그때만큼은 불교의 교리가 나를 더 위로해주는 기분이 들었다) 어떤 이는 소중한 반려동물이 사람의 힘든 생을 사는 게 더 싫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대근이가 사람으로 환생하기를 원했다. 사람으로 태어나 자유롭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는 정말 신사 같은 고양이였으니 꼭 사람으로 태어나 내게 돌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내가 대근이를 보는 순간 단 한 번에 아이를 알아챌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