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른여덟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흐를일별진 Mar 12. 2024

안녕, 나의 첫 사람

찐찐찐최종






혼자 회사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을 어쩌질 못해 글을 한 편 써내고도 쉬이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밖으로 나섰다. 회사 근처에 있는 또 다른 독립 책방을 찾았다. 그곳에서 익숙한 작가의 책을 발견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비둘기>


짙은 풀색의 양장본 버전이었다. 옛날 생각이 났다. 파트리크 쥐스킨트를 떠올리면 많은 이들이 <향수>를 언급할 거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로 제작될 만큼 유명한 작품이었으니까. 그러나 나는 그의 이름을 들으면 <좀머씨 이야기>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언제였던가. 내 이십 대 시절의 연인이 <좀머씨 이야기>를 선물했다. 그 책은 내 기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첫 책이었다. 그러나 책이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글의 재미와는 관계없었다. 책 내용은 기억나지도 않는다. 명확히 기억나는 건 책 앞장에 쓰여있던 그의 손 글씨. 짧은 내용의 글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먼 훗날 우리가 어떤 관계로 남아 있더라도,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좋았던 우리를 떠올렸으면 좋겠어.




그는 말을 참 예쁘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의 글에는 말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삐뚤빼뚤 예쁘지 않은 손 글씨로 그 사람은 낭만을 썼다. 난 그의 편지를 정말 좋아했다. 편지 한 장이면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어떤 선물도 필요없었다. 그의 마음, 그거면 충분했었다. 사랑 받는다는 느낌이 얼마나 귀한 지 알고 있기에, 난 그에게 더는 원한 게 없었다.






언젠가 누가 그랬다. 왜 계속 옛날이야기를 하냐고. 뭐 애초에 경험이 많지 않으니 그런 거기도 하지만 딱히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고 속으로 생각했다. 뭔가를 시작할 때의 기억은 온몸에 각인되는 법. 특히 시작한 무언가가 나라는 사람의 감성적, 문화적 기준을 세웠을 경우엔 그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처음 배운 한글을 기억하듯 처음 받은 사랑을 기억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가 내게 알려준 건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거였다. 그와 있으면 내가 뭐라도 된 것만 같았다. 나를 향한 그의 사랑이 느껴지니 내가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면에서 내 첫 사람의 의미는 기준 이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언젠가 전해 듣기로 그가 그랬다더라. 나로 인해 진짜 사랑을 알았다고. 서로가 서로에게 진짜 사랑을 알려준 사이. 뭐, 그거면 됐지 싶다.


사실 며칠 전, 꿈을 하나 꿨다. 검은 코트를 입고 내가 좋아하던 뿔테 안경을 쓴 그가 나왔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나또한 그가 좋아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다른 게 있다면 이제 안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꿈은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다. 그는 나를 향해 밝게 웃으며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중경삼림에 나온 안경과 비슷한 뿔테 안경을 내게 씌워주었다. 그리고는 말했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니까, 이 안경은 네 거야.



그를 보고 밝게 웃었다. 나는 안경다리를 만졌다. 잘 지내라 인사했다. 그게, 끝이었다.



사실 그날 신발을 잃어버리는 꿈을 먼저 꿨다. 좋아하던 워커를 잃어버려 찾는 꿈이었다. 그러다 꿈임을 자각하고 그냥 맨발로 걸었다. 신발이 없다는 걸 받아들였다.

나의 경우 한 번에 두세 개의 꿈을 옴니버스 영화처럼 이어 꾸기도 해서, 꿈에서 깨고 나면 전체의 의미를 파악하려 애썼다.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고 때로는 꿈에서 그 당시 내게 가장 취약한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신발을 잃고 소중한 추억과 이별함과 동시에 가장 좋은 걸 받게 된 꿈. 이제야 단 1g의 무게도 허용되지 않을 만큼 과거가 완벽한 옛일이 된 걸까. 애매한 마음 없이 뭔가를 시작할 수 있는 아주 깨끗한 마음이 준비된 걸까. 후련했다. 속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지만 공허하진 않았다. 마땅히 나야 할 자리가 이제야 생겼다는 기분이 들었다. 아주 깔끔했다.



첫 사람을 사랑했을 때처럼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요즘. 이 마음이 어떤 식으로든 나를 변화시킬 거라는 확신이 든다. 내가 평소와 다른 형태의 사랑을 하고 있는 건 일종의 과정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부작용인 욕심, 질투, 기대도 그러한 과정 중 하나일지 모른다. 그를 좋아하는 일은 모든 게 새롭게 느껴지고 있다. 그러니 이 마음을 이대로 소비해 버릴지 성장의 발판으로 삼을지 결정하는 건 나다. 시작된 마음은 어쩔 수 없고 그 마음을 접기에도 상황이 애매해져 버렸다면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사랑은 그 감정 자체로 엄청난 영감을 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두 의사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