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강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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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칼이 뻗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일종의 강박과 같다. 완벽하게 똑같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아침 양옆의 대칭을 맞추려 노력했다. 최근엔 숏펌을 하는 바람에 일이 더 어려워졌다. 준비가 끝났다! 하고 돌아서다가 거울로 한쪽 머리가 뻗쳐있는 걸 보면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고데기를 들었다. 모든 게 일시적인 균형이지만, 나에겐 그 ‘일시’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며칠 전, 시간에 쫓겨 드라이기를 급히 사용했다. 균형이고 뭐고 바쁜 와중이니 머리칼을 털어 말리듯 열을 가했다. 거울을 보니 엉망진창이었다. 여기저기 뻗치고 뒤집히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었다. 한숨을 내쉬고 손으로 머리칼을 빗었다. 그런데 웬걸 뻗쳐있던 머리가 차분하게 말려 들어갔다. 애써서 말리고 정리할 때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생각했다.
억지로 노력한 것보다 내려놓고 편하게 한 게 훨씬 좋네.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는 아니었다. 며칠째 같은 패턴으로 마음에 드는 아침을 맞이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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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단점 중 하나는 쓸데없는 완벽 추구였다. 뭔가를 시작하고자 할 때 완벽한 상태로 준비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았다. 일단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눈에 보이는 부족함을 그냥 넘길 수 없었다. 대표적인 예로 글을 쓸 때 전체적인 구성이나 핵심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으면 첫 단어를 쓸 수 없었다. 충분히 생각하고 전체적인 구성을 그린 뒤에야 그림을 그리듯 글을 쓰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더 이상 남의 배를 불리지 않겠다, 이젠 내 살길을 찾겠다는 이기적인 생각과 완벽한 내 취향의 ASMR이 듣고 싶다는 목적으로 개설한 채널이었다. 문제는 첫 영상이었다. 이미 녹음된 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들어보니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생겼다. 고치고 또 고치는 상황이 반복됐다. 그러다 문득 이대로는 아무것도 올리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그냥 포기할까, 싶기도 했다. 아니다 싶었다. 시작도 못 하는 건 말이 안됐다. 무작정 링크 트리를 만들고 SNS에 계정을 공유해버렸다. 선포 후 수습. 입만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순 없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첫 번째 영상을 나와의 타협으로 완성했다. 집에 가는 길 거리의 소리에 집중한 ASMR이었다.
감성을 물씬 살려 제목도 넣었다. 썸네일도 만들어 넣었다. 영상을 업로드 한 후 야심 차게 테스트로 재생했다. 그러나 몇 초 만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찾아냈다. 영상을 내리고 다시 제작을 해서 올려야 할지 이대로 갈지 한참을 고민했다. 다시 제작을 하다보면 분명 음원 자체를 갈아엎어야 할 것 같은데. 그때 정신이 들었다. 선수친 게 있으니 일단 올려야 했다.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다. 부족함은 첫 경험의 상징으로 남겨두자.
사람도 완벽할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어젠 마음에 안 들었던 게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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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했다면 완벽 여부와 관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만 했다. 물론 완벽하면 좋겠지만 콘텐츠의 완벽은 상대적이고 개인적이다. 내가 생각하는 완벽이 대중의 생각과 일치할 수 없다. 완벽한 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사람은 그만큼 다양하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도 없으니까. 중요한 건 나만의 색깔이다. 그 색깔을 토대로 나를 브랜드화하는 데 필요한 건 완벽이 아니라 끈기였다. 천천히 나를 쌓는 일. 일희일비하지 않고 내가 가장 잘하는 것,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만이 현답이었다.
(그리고 이 글은 깨달음을 빙자한 적극적 홍보이자 불특정 다수를 향한 나의 약속이다. 같은 패턴으로 중도 포기를 할 수는 없지)
소박한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