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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관우 Jun 07. 2022

용산보다 먼 의정부보다 가까운…

결혼이란 주제에 조금 민감해진 데에는 요즘 제작하는 팟캐스트도 한몫하고 있다. 팟캐스트 「박지윤의 욕망래이디오」는 결혼 생활과 육아에 대한 고민 상담의 탈을 쓴 수다 방송인데, 청취자 층 대부분이 주부들이다보니 참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공중파 라디오보다 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사연들을 보고 있자면 아는 사람 얘기도 아닌데 속상해질 때도 참 많다. 결혼이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불행과 가까워지게 했는지…. 그렇다고 모두가 불행한 건 아닐 것이다. 원래 행복한 얘기는 라디오 사연으로 잘 들어오지 않는다. 행복한데 무슨 고민이 있다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일상을 구구절절 얘기하겠나. 온다 한들 소개하기 애매하기도 한데, 친구의 행복도 배가 아린 마당에 아예 모르는 남의 행복까지 축하를 해줄 여유는 종전 이후의 대한민국에 단 한 번도 없지 않았을까. “늦둥이 셋째가 건강하게 태어났어요.”란 사연에도 건강해서 다행이란 말보다 “부모가 나이가 많아서 나중에 학부형 모임은 어떻게 나가려고 하느냐….”란 댓글이 먼저 달릴 테니까. 


몇 달 후 결혼을 앞둔 이 커플의 고민은 예식 시간이다. 양가 부모님과 상의해서 오전 예식으로 예약했는데, 시모의 친구들이 태클을 걸었단다. 오전이라니. 그렇게 일찍이면 버스를 대절해야지 어떻게 오전 시간대에 의정부에서 용산까지 도착할 수 있겠냐고. 시가 식구들이 생각해 보니 하객들도 생각해야겠다며 시간을 미루던지 아예 날을 다시 잡는 쪽으로 권유를 했다는 것이다. 친구들 성화에 못 이긴 시어머니가 식사 자리에서 얘길 꺼냈으리라. 양가 부모 중 한쪽이라도 마음이 불편하다면 버스를 대절하던, 시간을 변경하든 그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겠냐만…. 참 결혼식이란 게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구나 싶다. 식장을 잡고 나서 큰 짐을 덜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텐데 이 부부에게 또 다른 미션이 기다리고 있을 줄이나 알았을까. 결혼식이 어른들의 이벤트라고 체념하고 양보하기엔 우리 인생에 단 한 번뿐인 순간이다. 아, 다시. 우리의 ‘첫 번째’ 결혼식이 어른들의 이벤트라고 체념하고 양보하기엔 인생에 몇 번은 없을 소중한 순간이다. 결혼식장에서 이 노래를 축가로 아내에게 불러주리라 고등학생 때부터 한 노래만 목 터져라 연습해 온 남자, 자신이 입을 웨딩드레스는 직접 디자인 하리라 수백수천 장의 시안을 그렸던 여자. 결혼식은 꼭 햇살 아래 초록 잔디 위에서, 웨딩카는 꼭 오픈카로, 손님은 가장 가까운 지인 열 명 정도만 모인 스몰 웨딩으로…. 각자 생각해 온 결혼식의 판타지는 현실을 맞닥뜨린 순간 서핑 보드위에 처음 올라선 초보 서퍼처럼 볼품없이 고꾸라진다. 꼬르르…. 그리고 나중이 되면 결혼식이란 게 있기는 했었나 싶을 만큼 기억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곤 한단다. 마치 파도가 쓸어간 것처럼. 사르륵….


가족뿐 아니라 하객 1, 2, 3까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대형 이벤트를 성공시키겠다는 다짐하기보다는 두 사람이 그려온 그림에 조금이나마 가까이 가보겠다며 안간힘을 써보자. 상대가 그런 사람이라면 앞으로 닥쳐올 어떤 불행도 조금은 덜 두렵지 않을까. 결혼식을 준비하며 너무 힘든 나머지 삐져나온 미운 말과 행동에서 불안한 촉을 느꼈다면 못 본 척 눈을 감아서도 안 될 것이다. 촉이 섰다면 반드시 이유가 있을 테니까.

 

그리고…. 주말에 의정부에서 용산까지 가는 길은 지하철이 가장 빠르다.


** 독립출판으로 발행 이후 정식 출간된 에세이 <저 결혼을 어떻게 말리지?>의 일부 에피소드를 브런치에 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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