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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틸킴 Jul 02. 2017

우리의 마라톤왕



할아버지가 트랙으로 들어온다. 하얗게 센 머리, 한때는 튼튼했을 두 다리, 마른 팔, 이제는 엉성해진 관. 할아버지의 등장에 스타디움 전체가 박수를 보낸다.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게 신이 나 트랙을 돈다. 손에선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는데, 껑충껑충 그대로 날아갈 것 같다. 얼마나 좋길래, 얼마나 신나길래. 할아버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그의 표정을 알 것 같다. 지 활짝 웃고 있다. 할아버지는 1988년의 손기정이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S-X97KfXVRw


나는 이 장면의 완벽한 서사에 소름이 돋는다. 침략국의 깃발을 달고, 인종주의 통치자의 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한 약소국의 젊은이. 그는 수많은 강대국 선수들을 누르고 보란 듯이 금메달을 따낸다. 그리고 50여 년의 세월이 흘러, 마침내 되찾은 조국을 위해 성화를 봉송한다. 그의 마음이 짐작조차 안돼, 나는 그저 눈물이난다.


황영조는 그로부터 4년 뒤에 나타났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몬주익 언덕을 치고 오르는 황영조를 보며 나는 또 울었다. 뒤로 바짝 붙은 일본 선수를 자꾸만 돌아보는 초조한 얼굴. 드디어 트랙에 들어서자, 쿵, 쿵, 쿵, 쿵 무너질 듯 무거운 한 걸음 한 걸음. 그러나 더 빨라지는 속도.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해 그대로 쓰러지는 황영조. 금메달이었다. 시상식을 마친 그는 관중석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한국의 모든 마라토너들이 평생 꿈꿔왔을 장면을 실현했다. 손기정에게 올림픽 금메달을 걸어주는 일. 스타디움에 울리는 애국가는 황영조가 손기정에게 바치는, 후손들이 역사에 올리는 제의였다. 그 후로 한국은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마라톤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손기정이 시작한 마라톤 드라마의 영웅은 황영조가 이어받고, 그것으로 완결되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Ym2SE_dd4p4


재능, 타이밍, 조력자, 적절한 시련, 기적 같은 우연. 세상은 때로 이 모든 걸 세트로 갖춰 영웅을 준비한다. 그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건 오직 한 사람이다. 그 밖의 등장인물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1936년 손기정과 함께 시상대에 오른 조선 청년 남승룡처럼.

손기정의 뒤에 남승룡이 있었다면 황영조의 뒤에는 이봉주가 있었다. 황영조와는 70년생 동갑내기, 비슷한 시기에 마라톤을 시작했던 젊은 봉주. 영조가 몬주익에서 전설에게 금메달을 안겨주는 걸 보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황영조가 일찍 은퇴한 덕에 출전한 96년 올림픽에서 고작 3초차로 은메달에 그쳤 , 그리고 그 다음 번 올림픽, 이번에야말로 이봉주가 금메달을 가져올까, 온 나라의 관심이 집중됐을 때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 이주봉, 이주봉 뒤쳐지나요. 아니 아 이봉주.”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마라톤을 나는 동생과 생중계로 보다. 그건 내가 처음으로 본 마라톤이었다.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이봉주 선수의 이름을 잘못 말했다. 나는 이주봉이라는 이름에 한번, 이봉주라는 이름에 또 한 번, 그리고 아나운서의 미안하고 민망한 말투에 또 한 번, 깔깔대고 웃었다. 이주봉 아니 아 이봉주. 이봉주는 국민들의 바람과 달리 순위권에도 들지 못했고, 아빠는 에휴, 봉달이라고 욕했다.
 
황영조는 이름도 영웅적이지만 이봉주는 이름마저도 '이주봉 아니 이봉주'였다. 얼굴이나 체격, 그 어디에도 영웅적인 면모는 없다. 그나마도 짝발이었다. 올림픽에서 그는 단 한번도 영웅적인 퍼포먼스를 내지 못했다. 어떤 드라마도 없었고, 몬주익의 영웅과 같은 멋진 별명도 얻지 못했다. 그는 그저 국민 봉달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던 그 순간에도.


비록 영웅은 되지 못했지만, 이봉주는 그 어떤 마라톤왕보다 오래 뛰었다. 44번의 마라톤에 참가해 41번 완주했는데, 이건 최정상급 마라토너 중에서도 거의 유일한 기록이다. 우리나라 마라톤 신기록 역시 이봉주가 세웠다. 그의 은퇴는 그렇게 황영조보다 한참 뒤에 왔다. 은퇴한 후에도 여전히 각종 지역 대회에서 뛰고 있다. 한국 마라톤의 역사는 손기정과 황영조를 주인공으로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라톤의 신이 있다면 분명 이봉주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것이다. 고맙구나, 봉주야. 계속 달려줘서. 누구와 비교하 않고, 계속 달리기를 좋아해줘서 고맙구나.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h1TOp742k3E


라톤은 지독한 스포츠다. 룰은 그저 쉼 없이 뛰는 것. 집념이나 독기 없이는 완주할 수 없는 게임. 장대 하나로 하늘을 날고, 자기보다 더 큰 거인을 한으로 이기거나, 어마어마하게 무거운 바벨을 순식간에 들어 올리는 마법은 없다. 그저 한발 한발 끝까지 달리는 게 전부다. 다른 스포츠들이 초인적인 노력을 뒤에 감추고 있는 것과 달리 마라톤은 그것을 숨기지도 않는다. 성취의 순간에 이르는 모든 인내와 고통을 여과 없이 중계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교한다. 인생이라는 달리기는 언제나 1등을 가리는 싸움처럼 보인다. 가장 좋은 대학, 가장 좋은 집을 가장 빨리 얻는 싸움. 하지만 영웅의 자리는 언제나 소수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휘황찬란한 목표 앞에 공황장애를 앓게 된다. 주인공이 될 수 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2등이나 3등밖에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이럴 때 나는 이봉주의 달리기를 생각한다. 달리는 것 자체로 너무 기쁜, 달리는 나 자신을 깊이 사랑하는 달리기.

그래, 어떤 프로 러너들에게는 이봉주가 좋은 롤모델이 아닐지도 모른다.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달린 끝에 '마침내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는 결말이 없으니까. 하지만 달리는 목표가 결승선 하나일 필요는 없다. 달리는 그 순간이 그저 좋은 달리기야말로 값지다고 나는 생각한다.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멋진 서사를 갖지 못해도, 그 누구도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누가 어떻게 놀려도, 뛰는 것 자체가 좋아서 그냥 웃으면서 계속하는 달리기. '달리는 자신'이 온 인생의 목적이 되는 것. 어쩌면 그게 가장 어려운 달리기 아닐까.

나는 이봉주의 달리기가 좋다. 영웅이 아니면서,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서. 그게 참 기뻐 보여서. 그렇게 모두에게 기억되어서. 마라톤 왕, 이봉주. 나는 그를 이렇게 쓴다.






더 보시면 더 재미있습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3567094&cid=59118&categoryId=59118

http://www.nextdaily.co.kr/news/article.html?id=20170206800031


쓰다보니 알게됐는데, 지식채널E에서도 멋지게 만들어주셨군요!

https://www.youtube.com/watch?v=0j89_6esJ3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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