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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Mar 28. 2023

납땜하는 여자-7화 외모에 대한 단상 2

-네일케어 


요즘은 네일케어도 일상이 되었다. 오히려 하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게 더 어려울 정도이다. 네일숍에서 손톱을 예쁘게 모양을 내어 다듬고 컬러를 입하고 그 위해 여러 가지 장식물을 올려서 손을 꾸미는 일은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다. 특히, 여름에  샌들을 신을 때, 드러나는 발톱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내 발을 보면 왠지 초라해 보이고, 이런 모습으로 어디 가기가 부끄러워지는 느낌이 들곤 한다. 


예전에 이런 네일숍이 없었을 때는 각자 매니큐어를 사서 손톱을 색칠했다. 손가락이 가늘고 긴 언니가 매니큐어를 바르고 나면 참 예뻐 보였던 기억이 난다. 그에 비해, 손가락이 굵고 짧은 난 매니큐어를 발라도 언니만큼 예뻐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래도 한 번씩은, 가끔씩은 매니큐어를 바르곤 했다. 


어느 날, 납땜을 하는 중이었다. 매니큐어가 칠해져 있는 한 손으로 납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인두기를 들고 있었다. 납이 녹아 연기가 피어오르고 몇 번의 인두질 후에는 면봉을 잡고 세척액을 묻혀 기판을 닦는다. 다시 인두기를 들고 납땜. 몇 번의 과정을 반복하던 중 어느 순간부터 자꾸 손톱에 눈이 간다. 그날따라 유난히 밝고 튀는 형광색의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톱을 보다가 문득 이 손톱은 내 업무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성 들여 예쁘게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은 그만큼 아끼고 보호해줘야 하는데 납땜하는 환경에서는 전혀 그럴 수가 없다. 매니큐어에 흠이 생기고 새척액에 의해 벗겨질까 봐 신경이 쓰여 제대로 업무에 집중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복장 불량이 있는 것처럼 이건 손톱 불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니큐어 바른 손톱으로 인두기를 잡는 건 너무 안 어울리는 것 같았다. 집에 가서 당장 매니큐어를 지웠다. 그 뒤부터, 난 평상시에는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았다. 


여름에 맨발로 샌들을 신는 건 괜찮다. 아니 예쁘다. 하지만 맨발인 채로, 시제작실로 들어가기 위해 제전화를 갈아 신으면 발 모습이 어색해진다. 진한 갈색, 또는 검은색의 전형적이 아저씨 스타일 제전화 위에 예쁜 컬러가 칠해진 발톱이 보이면 둘의 조합이 어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아무 컬러가 없어 건조함이 팍팍 느껴지는 맨발로 제전화를 신으면,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건 기본이고, 시각적으로도 음… 뭐라고 표현할 말이 없다. 그냥 안 어울릴 뿐이다. 프로가 아닌 거 같다.  


-헤어스타일


난, 유난히 머리숱이 많은 데다 반 곱슬까지 더해진 머리를 가졌다. 70 넘으신 엄마도 여전히 많은 머리숱을 자랑하고 있고, 90이 넘어 돌아가신 외할머니도 그 연세까지 머리숱이 풍성했었다.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가 부럽다고, 숱이 너무 많아 아침마다 머리 말리기도 힘들고, 부해 보여서 싫다고 불평할 때마다 엄마는 나이 들어 그게 얼마나 큰 복인지 모른다며 날 위로하곤 하셨다. 그럼 난 나이 들어 좋으면 뭐 하냐고, 지금 좋은 게 더 중요하다고 맞받아치곤 했다. 외가 쪽 유전자 덕에, 길게 머리를 길러보진 못하고 단발과 조금 더 긴 단발, 그 어느 사이의 머리 길이만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날이 좋거나 기분전환하고 싶은 날은 한 번씩 머리를 풀고 휘날리고 싶은 날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인두기를 잡지 않는 날에만 가능하다. 머리를 풀고 오면 머리가 내려와 납땜을 하기에 불편하고 신경 쓰이며, 가끔씩은 인두기에 머리카락을 태워먹기도 하기 때문이다.    


-옷


대학교 때는 치마를 입고 다닌 적이 없다. 학교가 멀어 대부분 운동화나 키높이용 통굽을 신었고 스스로가 뚱뚱하다는 생각에, 치마 입기가 부끄럽고 어색했다. 회사에 와서 몇 년을 지난 후, 긴 바지만 입기 너무 더운 어느 여름날 무심코 치마를 한번 입어보니 입고 벗기 너무 편하고 시원했다. 치마의 맛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한 번씩 치마를 입기 시작했다. 


하루는 치마를 입고 스타킹을 신은 채 시제작실에서 납땜을 하던 중이었다. 납땜은 한두 번 하면 인두기를 톡톡 쳐서 인두기에 묻은 잔여 납을 떨어내고 사용한다. 하필 그날따라 털어낸 납똥이 내 허벅지 끝 무릎부위에 튀었다. 


물론 제전복을 입고 일을 하기 때문에 납이 튀어도 대부분은 제전복에 묻어 안전하다, 하지만 이 제전복은 엉덩이 덮을 정도의 길이라서 온몸을 다 가려주진 않는다. 그래서 가끔 청바지에 납이 튄 적도 있다. 그럴 땐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납이 굳으면 떼어내곤 했었다. 그런데 이 날은 하필 스타킹에 납이 떨어진 것이다. 뜨거운 납 조각 덕분에 스타킹 위에 커다란 구멍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손톱보다 작은 구멍이 생겼지만 몇 번 움직이다 보니 스타킹 특성상 올이 쭉 타고 올라가 결국 다리를 세로로 두 동강 내는 줄이 만들어졌다. 그 뒤부턴 치마와 스타킹도 안녕이다. 


제전복과 제전화와 인두기를 늘 가까이해야 하는 여자 엔지니어에게 예쁜 옷을 입고 머리를 단장하고 외모를 꾸미는 일은, 동경하고 하고 싶은 일인 동시에 내가 하는 일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상반된 행위이다. 


내가 한창 꾸미고 가꿀 나이에 얼마든지 예쁘게 하고 다닐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는 건, 내가 감각이 부족하고 관심이 부족하고 말 그대로 잘 못하는 데, 그걸 인정하고 잘하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자존심 때문에 내가 잘 못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으니, 외모를 신경 못쓰고 다닐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좋은 핑곗거리를 찾은 게 아니었을까. 제대로 노력도 해보기도 전에 좋은 핑곗거리를 찾았으니 오히려 이 핑계 뒤에 숨은 채, ‘원래 이 일을 하려면 어쩔 수 없어. 그건 직업에 대한 예의가 아니야.’라는 말로 외모를 꾸미는 일에 대한 게으름을 만회하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글을 쓰는 지금 현재, 우리 회사 직원은 80명이 넘는다. 그중 여자 엔지니어도 몇 명 있다. 푸릇푸릇 20대의 이 친구들은 머리도 길고, 화장도 잘하고, 옷도 예쁘게 잘 입고 다니면서도 일도 열심히 잘한다. 나는 비록 그렇지 못했는데, 외모를 가꾸는 것과 자기 일을 다 잘 챙기며 생활하는 이 친구들이 부럽고 예뻐 보이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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