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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율 Jun 22. 2023

불안-알랭드보통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진작부터 집에 몇 권 있었다. ‘여행의 기술’,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등 제목만 들어도 흥미가 느껴지고 책도 두껍지 않아 선택한 책들이다. 하지만 전부 앞부분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포기했었다(이번에 읽은 ‘불안’ 역시 그중 하나였다). 이번 달 독서 모임의 책으로 선정된 후, 이번에야 말로 제대로 한번 읽어보리라 마음 단단히 먹고 책을 손에 들었다. 그런데 전과 달리 의외로 첫 장, 불안에 대한 원인을 지위에서 찾아가는 내용 전개부터 내 관심을 끌었다. 물론 저자 특유의 딱딱한 문체는 여전했고, 한 두 번의 고비(?)도 있었지만 앞부분을 그런대로 넘긴 후부터는 비교적 수월하게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들도 충분히 납득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을 전개해 나가는 이 책이 꽤 마음에 들었고, 다른 책마저 찬찬히 읽어 보고 싶다는 생각에 까지 이르게 만들어 준 책이 되었다. 


저자는 불안의 원인에 대해 서두에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가 사다리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우리의 자아상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는 내용은 예전에도 많이 들어보았던 상투적인 이야기를 책에서는 절대 감정적이지 않은, 내가 논문을 읽고 있는 게 아닌지 착각할 만큼 건조한 문체로 이에 대한 이유를 역사적인 사례들 들어가며 하나하나 풀어내다. 책 내용 전반에 걸쳐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논리적 구성이 무척 흥미롭다. 


첫 번째 불안을 느끼는 원인으로 저자는 ‘사랑결핍’을 들었다.  


- 이 세상에서 힘들게 노력을 하고 부산을 떠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탐욕과 야망을 품고, 부를 추구하고, 권력과 명성을 얻으려는 목적은 무엇인가?....(중략)…. 다른 사람들이 주목을 하고, 관심을 쏟고, 공감 어린 표정으로 사근사근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알은체를 해주는 것이 우리가 거기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고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칭찬을 받고 싶은 마음을 사랑 결핍이라 진단하고, 이 때문에 모든 권력과 명성을 얻고 싶은 마음이 생기며, 그래서 불안을 느낀다고 한다. 이 부분부터 고개가 끄덕여지고 계속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두 번째 원인은 속물근성이다. 


- 자신의 자리에 확신을 가지는 사람은 남들을 경시하는 것을 소일거리로 삼지 않는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전래의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이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먹고 살만큼의 돈 이상의 부와 명예와 권력을 좇는 이유를 무시하고 외면받지 않기 위함이라고 한다. 오히려 남들과의 비교로 열등감이 생기는 사람들이 남을 더 비난하고 무시한다는 직설적이고 시원한 지적에 가슴이 뜨끔해지기도 했다.    


세 번째 원인은 기대감이다. 


-우리가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일 때 받는 그 느낌-이야말로 불안과 울화의 원천이다. 


-가장 견디기 힘든 성공은 가까운 친구들의 성공이다. 


재벌가들과 사업가들의 성공담은 나와 상관없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내 동료, 내 주변 지인들은 나와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되고, 그런 사람들 중 누군가가 더 나은 조건의 직업을 갖거나 돈을 더 많이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힘들어진다고 한다.  


네 번째 원인은 능력주의이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어떤 동지애가 이룩된다 해도, 노동자가 어떤 선의를 보여주고 아무리 오랜 세월 일에 헌신한다 해도, 노동자들은 자신의 지위가 평생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 그 지위가 자신의 성과와 자신이 속한 조직의 경제적 성공에 의존한다는 것, 따라서 자신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 감정적인 수준에서 변함없이 갈망하는 바와는 달리 결코 그 자체로 목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늘 불안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이렇게 불안의 원인을 규명한 저자는, 이에 대한 해법을 제시한다. 특히 예술과 기독교가 왜 불안을 줄여주는지에 대한 저자의 논리가 나로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부분이라 무척 신선하고 흥미롭다. 예술과 거리가 멀고, 기독교에 깊이 있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새로운 시각으로 예술과 기독교를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첫 번째 해법으로 철학을 이야기한다. 


-칭찬을 받고 싶다는 유혹에 빠지지 말고, 모욕을 당했다고 괴로워 움츠러들지 말고, 자신이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출발하여 자신을 파악하라고 권한다.


철학은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아닌 나 스스로를 관찰하고 나를 파악해서 나를 다스리는 학문이기 때문에 불안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두 번째는 예술이다. 


-위대한 예술은 삶의 가장 깊은 긴장과 불안에 해법을 제공하는 매체다. 예술은 무엇보다도 존재의 부족한 부분을 해석하고 그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을 다시 잡아주려고 노력하기 마련이다. 


-오스틴은 설교사처럼 퉁명스럽게 진정한 위계의 개변을 설파하지 않는다. 그녀는 위대한 소설가 특유의 기예와 유머로 우리가 진정한 위계에 공감하고 그 반대의 위계에 혐오감을 느끼도록 이끈다. 


권력과 명예를 좇는 세상사람들이 인식하고 있는 기준으로 성공한 사람이 아닌, 조금 부족하거나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들도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소중한 존재임을 인식시켜 주는 역할을 문학작품을 포함한 예술이 하고 있다. 거기서 끝이 아니라 부당함이나 또 사회의 문제나 부당함을 직설적 화법이 아닌 문학 특유의 기법으로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게 표현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에 더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 



-세상의 선은 역사적으로 거창하지 않은 행동들 덕분에 확장되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나 더 나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반은 드러나지 않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지금은 사람이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덕이다. 


평범한 사람들의 중요성을 이 문장 하나로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에게 닥친 것과 비슷한 상황이 닥쳤을 경우 자신도 언제든지 파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겸손해진다. 비극을 본 관객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 일에서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진다. 


비극 작품을 언급하면서는, 비극 작품의 존재 이유와 그 의미를 설명하며, 평범한 사람들을 존중한다. 예술 작품이 줄거리를 넘어 이런 의미가 있다는 주장이 무척 신선했다.  



풍자만화에 대한 기능도 이렇게 설명한다.


-마음이 상냥한 만화가들은 지위로 인한 우리의 근심을 보고 우리를 조롱하는 것이 아니라 놀린다. 그들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전제 하에 우리를 비판한다. 


세 번째는 정치이다.


-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 이데올로기적인 진술의 핵심은 높은 수준의 정치적 감각이 없으면 그 편파성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자신이 편파적인, 어쩌면 비논리적이고 부당할 수도 있는 방식으로 세상에 접근한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자신은 그저 오래된 진실을 이야기할 뿐이며, 오직 바보나 미치광이만이 여기에 반대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관념이나 제도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할 때는 고통의 책임을 아무에게도 묻지 못하거나 고통을 겪은 당사자에게 묻게 된다. ‘나를 비난하다니 다른 사람들이 틀렸거나, 부당하거나, 비논리적인 것이 아닐까’는 제도, 관념, 법은 어리석고 편파적이라는 인식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지배 계급이 추구하는 이념이 옳은 것이고 그 외에는 옳지 않다는 관념을 정치는 심어준다. 이 이념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제도로부터 피해를 받는 개인들은 이를 제도의 문제가 아닌 개인의 문제로 돌리는 지배자들 때문에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또, 이런 부당한 제도나 관념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정치의 역할 중 하나이다. 자기들끼리의 권력다툼과 싸움으로 쳐다보기도 싫었던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만드는 부분이었다. 


네 번째 해법은 기독교이다.


-죽음에 대한 생각의 가장 큰 효과는, 우리가 당장 일어나고 있는 일로부터 가장 중요한 일로 시선을 돌리게 해 준다는 것이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덜 의존하게 해 준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소멸을 생각하다 보면 우리가 마음속을 귀중하게 여기는 생활 방식을 향해 눈길을 돌리게 된다.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들, 우리가 기리는 기념비나 행령이 없다 한들, 얼마 전 모임에서 아무도 우리를 보고 웃음을 짓지 않았다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인가? 어차피 모든 것은 사라질 운명이며, ….(중략)… 영원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우리를 흥분시키는 것들 가운데 중요하다 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 자신이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은 우리 자신을 더 중요한 존재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자신이 하찮은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불안의 좋은 치유책은 세계의 거대한 공간을 여행하는-실제로 또는 예술 작품을 통하여-것일 수도 있다. 


남과 누가 더 나은지 비교하는 행위는 우리들보다 엄청나게 크고 절대적인 존재에 비하면 아무 의미 없고 부질없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런 절대자의 역할이 신이고 광활한 자연이고 죽음이다. 그래서 신을 믿고, 거대한 자연을 자주 접하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다면 지금 사소한 문제와 관계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다섯 번째로 보헤미안으로 사는 것이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보헤미안이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물질적 성공보다는 예술과 감정에 충실한 사람들, 품위라는 부르주아적 개념에 들어가지 않는 광범위한 사람들을 말한다. 세상 사람들이 쫓는 물질과 권력 추구만이 정답인 삶이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그 예로 모른 물질을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서 생활했던, 지난달에 읽은 책의 저자 소로우를 언급한다. 


-보헤미안들은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고르는 데 특히 주위를 기울였다. 소로우 같은 사람들은 아예 사람을 부패시키는 사회의 영향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은 뜻이 맞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이루고, 학교나 가족이나 일터에서 어쩔 수 없이 어울리게 되는 사람들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이뤄지기 마련인 사교생활을 거부하려고 노력했다.     


-지위에 대한 불안의 성숙한 해결책은 우리가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데서 시작한다.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의 의지에 따른 자유로운 선택이다.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는 지위의 위계를 없애려 하지 않았다. 패자나 이름 없는 사람이라는 잔인한 규정과는 다른 규정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정당성을 얻는 데 도움을 주었다. 이들 덕분에 우리는 삶에서 성공을 거두는 데는 하나 이상의 길, 판사나 약사의 길과는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며 위로와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평범한 나의 삶이 소중하고, 이런 평범한 삶이야말로 존중받아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남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누가 알아주기 기대하지도 말며, 오롯이 나만의 길을 나만의 만족감을 가지고 충실히 살아가면 된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썩 괜찮은 사람이고 괜찮은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는 노력은 하겠지만,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불안 해소와 마음의 편안함은 결코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기에 꽤 괜찮은 우리가 사는 지금 현재 삶에서 만족을 얻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라 결론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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