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ADHD는 성인까지 이어진다.
"엄마 요즘 성인 ADHD 환자가 되게 많데.
근데 나도 성인 ADHD가 아닐까?"
그날 저녁, 저녁식사를 하면서 엄마에게 넌지시 얘기를 꺼내봤다.
"네가? 너는 왜?"
엄마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아니.. 일할 때 집중도 잘 안되고 자꾸 까먹고 그러는 것 같아서"
"△△도(남동생) 그러더니 왜 너까지 ADHD라는 거니? 아휴 참..."
확실히 진단을 받았다고 한 것도 아닌데 엄마는 속상한 표정을 지으셨다.
괜히 말을 꺼냈나 싶은 마음에 그냥 내가 생각나는 것 적어갈 걸 이라는 후회가 들었다.
그래서 더 이상 말을 말려던 찰나 이어서 엄마가 말했다.
"근데 생각해 보니 너도 어렸을 때 산만해서 학교 선생님이 ADHD를 진단받아보라고 했었어. 근데 △△가 하도 유난해서 아니라고 생각했었지."
처음 들어 본 사실이다. 나는 학창 시절 꽤나 조용했던 아이였기 때문이다.
반면 ADHD를 어렸을 때부터 진단받았던 남동생은 달랐다.
어린이집 때부터 어린이집 탈주, 친구들 때리기, 떼쓰기 등 꾸준하게 문제행동을 보였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고 남동생은 나와 5살 터울로 같은 초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하였다.
하지만 학기 초부터 남동생의 담임선생님은 두 손 두 발 다 들고 나를 점심시간마다 소환하였다.
소환 미션은 남동생 가만히 앉혀 점심먹이기.
남동생은 점심시간 때마다 점심은 먹지 않고 온 교실을 뛰어다녀서 급식 봉사를 해주시는 학부모님들도 감당이 안되었던 것이다. 그나마 무서웠던 누나인 내 말은 통했기 때문에 남동생을 붙잡아 내 옆에서 점심을 먹였다.
그렇게 1년간 귀여운 1학년들 사이에서 남동생과 같이 밥을 먹었다.
이처럼 남동생이 보통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ADHD의 전형적인 과잉행동 충동성을 보여준 탓에
조용히 산만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ADHD가 아니라고 묻혔던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 행동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생각나는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은 이렇다.
엄마는 맏이였던 나에게 심부름을 별로 시키지 않았다. 왜냐하면 심부름을 시키면 돈을 잃어버리던가 물건을 잃어버리고 왔기 때문이다. 심지어 제 때 오지도 않았는데 심부름을 나갔다가 딴 길로 새서 엄마가 찾으러 다녀야 했다.
그리고 실내화주머니와 실내화는 매번 찾으러 다녔다. 버스에 놓고 내리고, 놀이터에 놓고 오고, 문방구에 놓고 오고. 게다가 아예 잃어버려서 한 달에 한두 번 꼴로 샀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정말 다양하게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준비물을 자주 깜빡하고 준비해 가지 않았다. 부모님은 어렸을 때부터 맞벌이를 하셔서 세세하게 학교준비를 챙겨주지 못하셨는데, 내가 스스로 준비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엄마가 애써 챙겨줘도 매번 놓고 가기 일쑤였다.
그리고 학교나 학원 일정 등을 깜빡해서 늦거나 안 갈 때가 많았고 약속한 내용도 자주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부터 건망증이 심한 아이라고 생각했고 스스로 '치매에 걸렸나?'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나는 지금 생각해 보니 꽤 예민했다. 특히나 소리에 예민해서 작은 소리에도 주의가 뺏겼다.
학창 시절에 한창 백색소음으로 뇌파를 깨워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mc스퀘어가 유행이었다. 부모님께 논리적인 협박을 하며 조르고 졸라서 갖게 되었으나 얼마 못 가 친구에게 되팔았다. 뇌파를 깨워준다는 빛과 소리 자극이 오히려 나의 집중력을 더욱 흐트러뜨렸기 때문이다. 특히나 흥미를 오래 지속하지 못하던 나였기에 '갖고 싶은 것을 가졌다'는 사실만으로 관심은 끝난 후였다.
촉감각에도 예민했기에 스킨십을 선호하지 않았다. 감촉놀이 등은 잘 즐기지 못하였다. 아토피로 인해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손에 물이 닿는 것, 손으로 무엇을 집어 먹는 것 모두 좋아하지 않았다.
맛에도 예민했는데, 어렸을 때부터 간을 잘 봤다. 조금이라도 양념이 덜되거나 맛이 부족하면 잘 먹지 않았다. 그래서 할머니는 나에게 입맛이 청와대라며 구박하셨었지만 매번 나에게 간을 보게 하시고 내 입맛에 맞춰서 음식을 해주셨다. 그게 좋아서 요리사가 꿈이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손에 물이 많이 닿아 음식손질하는 것을 힘들어했고 뒷정리도 잘 못해서 금방 그만두었다.
추가로 엄마는 내가 3~4살부터 산만했다고 한다. 장난감이 있으면 조금 가지고 놀다가 휙 치워버리고 다른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 놀이뿐만 아니라 공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학창 시절에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이 과목 했다가 저 과목 했다가 이런 식으로 자주 바꿔가며 공부를 비효율적으로 했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보면 잘 잃어버리고 잘 잊어버리고 예민하게 굴었던 특성 때문에 많이 혼났던 기억만 떠오른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많이 혼났고 다니던 교회에서도 정말 많이 혼났다.
그렇지만 나쁜 기억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호기심이 왕성해서 이것저것 해보고 탐색해 보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다. (그 호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교회선생님과 언니들은 많이 혼내기는 했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많다고 아이디어뱅크라며 칭찬을 많이 해주었다.(아이디어 내고 시작은 잘하였으나 끝마무리가 안되어 뒷수습은 그들의 몫이었다.)
밝은 에너지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었다.(점점 기가 빨린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처럼 좋으면서도 안 좋은 것 같은 양면과 같은 나의 모습들은 학생을 졸업하고 사회인이 되었을 때 더 큰 문제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