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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물딱진 박똥글 Dec 22. 2021

찐 ENFP 혼자 여행 가면 생기는 일

힐링이 아닌 개고생하고 온 제주여행


만남 없는 이별 이후 혼자 제주도에 여행을 갔다.

( 그 이유는 이전 글을 보면 알 수 있어요!)

https://brunch.co.kr/@higprud/10


 제주도 여행을 가기 전 내가 세웠던 계획표는 이렇다.

ㅋㅋㅋ 정말 이렇게만 짜고 갔다.


이걸 보고 ISFJ 철저한 계획형인 언니는 말했다.

“이건 계획표가 아니라 메모지!”


 난 정말 이렇게만 들고 갔다. 어차피 혼자 힐링할 목적으로 가는 여행이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의 계획이 있어야 진짜 힐링, 편안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첫째 날 숙소에 도착해서 뭘 해야 할지 그제야 유튜브를 보면서 알아보았다. 유튜브에 어찌나 친절하신 분들이 많은지 코스까지 짜주고 맛집도 딱딱 찍어준다. 그래서 몇 개 돌려보다가 맘에 드는 코스를 발견해서 고대로 따라 하기로 했다.


 첫 번째 코스는 서귀포에 동백꽃을 볼 수 있는 카멜리아 힐이었다. 입장권을 끊고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눈비가 내리다가 우박이 내렸다. 날씨도 너무 추워서 꽃이 다 피지도 않았었다.

입장료 내고 결국 이런 처참한 꼴만 남기고 왔다..

 너무 춥고 축축해서 얼른 다음 코스인 카페를 가려고 네비를 찍어보니 몽. 땅. 휴. 무.

 제주도의 카페는 각 운영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알아보고 코스를 짜야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유명하다니 무작정 가려고 했던 것이었다. 정말 알아본 카페 중 하나도 연 곳이 없어서 그대로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어이가 없는 마음에 일단 씻고서 제주시에 있는 유명한 고깃집을 가려고 했는데 대기만 2시간이었다. 다행히 어플로 줄 서기가 가능해서 기다렸지만 하루 종일 아무것도 못 먹고 첫끼로 먹어야만 했다.


 그렇게 둘째 날이 되고 오름 투어를 하려고 가까운 곳의 오름들을 알아보다 송악산이 마음에 들어 출발했다. 이곳은 서귀포로 숙소와 좀 멀었지만 그래도 대성공이었다. 2시간 동안 슬슬 걷고 넓게 펼쳐진 오션뷰를 보니 너무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이 좋았다. 역시 이게 힐링이지! 또 이곳이 노을 맛집이라고 한다. 그래서 노을 보려고 기다렸는데 역시나 흐린 날씨 때문에 제대로 못 봤다. 근처 유명하다던 보말 칼국수 집에 갔더니 노을 보려고 기다리던 시간 동안에 영업 마감으로 문을 닫았다. 먹고 노을을 기다려도 됐을 텐데 바보같이 어제와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결국 또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근처 칼국수집에서 노멀 칼국수를 먹었다. 그래도 내일 한라산을 가기로 했으니 짐을 잘 챙겨 일찍 잠에 들었다.


 한라산을 처음엔 혼자 가려했으나 무서워져서 제주도 비행기를 타면서 카페를 통해 일행을 구했었다.

 일행과 카톡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새벽 6시까지 1100 고지에 만나기로 했다.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있는 한라산 일행들


 그다음 날 눈이 많이 와서 열릴까 했던 한라산의 문이 열리고 새벽에 1100고지까지 겁도 없이 경차를 끌고 꽁꽁 언 그 길을 올라갔다.  

 새벽이어서 춥고 눈발이 날리고 있어 매우 길이 미끄러웠는데 가벼운 경차를 끌고 갈 생각을 하다니 미친 거다.(심지어 한라산 문이 열렸다며 신나 하며 출발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 생각해도 죽으려고 환장을 한 짓이었다. 당연히 미끄러져서 안 올라가고 사방은 새벽이어서 칠흑 같은 어둠으로 한 치 앞도 안 보여서 너무 무서웠다.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면서도 내려가는 게 더 무서워서 꾸역꾸역 올라갔다. 진짜 몇 번을 미끄러져 죽을 뻔했다..

 그렇게 겨우 도착해서 일행을 만났다. 일행 분들은 다행히 너무 좋은 분들이었다. 깜깜한 눈길에 앞서 가이드도 해주시고 서로 으쌰 으쌰 해서 한라산에 무사히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리곤 같이 해물탕 찌개를 먹고 헤어졌다. 그분들과는 아직까지 연락하며 지내고 있다.

 

 마지막은 숙소 근처에서 해안가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냈다. 생각해보니 내가 잡은 숙소는 제주시였는데 3일 내내 모든 코스가 서귀포여서 계속 20-30분을 차를 타고 이동했었다. 그렇게 동선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그래도 해안가를 돌면서 사람들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해서 인생 샷도 남기고, 카페에 앉아서 책도 읽고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일기들을 적어 내려갔다.

 

 여행할 때 주의점도 적어보고, 다음번엔 이렇게 해야지 생각도 해보고, 그 소개남은 왜 그랬을까 생각도 하고 1년을 돌아보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간들이 너무 행복했다.

 결국 마지막에 ‘고생은 좀 했지만 행복한 여행’으로 마무리된 나 혼자 제주여행이었다.



 평소에 이렇게 계획성 없고 충동적인 결정으로 개고생을 할 때면 ‘나는 인생을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이번 여행만 해도 미리 짜두면 편안한 진짜 힐링여행이 되었을 텐데..

 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실수 속에서 깨달음도 많이 얻었다. 이제 혼자 여행가도 잘 다닐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이렇게 지나고 나니 웃을 수 있는 추억거리가 많으니 즐겁고 좋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들도 하니 나쁘지 않았다.

 또 금세 작은 소확행으로 큰 기쁨을 얻는다는 것과 이전 고생은 금방 잊어버린다는 것도 나의 장점이다.

 그리고 성격상 안정적이고 평온함은 맞지 않는다. 스트레스는 견뎌도 노잼은 못 견딘달까?

 그래서 조금은 보완이 필요하지만 스펙터클한 내 삶을 사랑하기로 했다. 그 장점 그대로, 약함 그대로 모두 내 즐거운 인생이다. 또한, 실수들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느끼기에 만족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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