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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진 Jan 07. 2021

첫눈

관계


첫눈



                첫눈이 내렸다. 첫사랑의 정의가 재각각이듯 나에게 첫눈이란 천지가 새하얗게 뒤덮여 설경이라 일컬을 수 있는 풍광을 뜻한다. 아스라하게 낙하하는 힘없고 유약한 결정들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서정적인 무언가를 안겨준다. 첫눈의 추억. 내 연식이 30년을 조금 넘었으니 그 사이 서른 번의 첫눈과 조우했으리라. 고작 첫눈 오는 날도 전부 기억하지 못하니 멈춰지는 날에 가져갈 수 있는 추억거리는 기껏해야 손가락 안이다. 선택받지 못하는 수많은 평범한 나날이 있었기에 고작 일순간의 추억만으로도 생의 끝자락을 후련하게 보내 줄 수 있음을 나는 알고 앎에 감사하다.


 그러고 보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태어난  얼마나 감사한지. 동생은 인적이 없는 비탈길에서 친구들과 썰매를 탔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영상  동생과 친구들은 바지가  젖고 오돌오돌 면서도 어찌나 소년 같은지. 서른 번의 추억중 동생에 대한 추억도 하나 있다. 이제  걷기 시작한 동생을 대리고  앞에 나온 적이 있다. 춤을 추듯 떨어지는 눈을 보며 이리저리 손을 휘젓거나 천천히 손바닥으로 담기도 했다. 손바닥 안에서 사라져 버리는 눈을 보며 동생은 제법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다시 고개를 들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떨어지는 눈을 쥐다가 멈춰서는  아니겠는가. 한참을 뭐하나 하고 봤더니 눈동자를 한대 모아 자신의 입김을 관찰 중이었다. 하악~ 하악~ 자신이 무슨 드래곤이라도   알고 브레스를 계속 뿜으며 입안에서 발사되는 허연 연기를 계속 보고 있었다.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핸드폰이 있었다면 동영상으로 남겼을 건데 아쉽지만 나의 마음속만 영원히 저장되어있다.  없이 맑은 눈동자.  묻지 않은 눈동자가 나는 잊히지 않는다. 옆에 촐싹거리며 눈사람을 만들던 누나가 말했다. '? 너도 그랬는데' 나도 이런 눈망울을 지녔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노력하지 않더라도 첫눈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타임머신이 되어준다. 저 멀리 첫사랑과 빈틈없이 끌어안던 골목 길안을 비춰주기도 하고, 강아지 같은 아이들은 눈사람이 추울까 봐 부모 몰래 집안에 가져와 농 안을 물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엄마는 웃었고 아이는 울었다. 시험에 낙방하여 첫눈 핑계 삼아 술을 진탕 마시고 경찰차를 타고 귀가한 적도 있다. 첫눈 오는 날 아무도 밟지 않은 땅을 같이 밟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사랑했던 연인과 이별의 고배도 마신적이 있다.


지나고 보면 달던 쓰던 그게 다 그리움이더라.


 선택되는 기억에는 모든 순간이 누군가와 함께 했고 추억이란 혼자만으로는 성립이 되는 단어가 아니다. 그렇기에 고독하게 태어났지만 칠흑 같은 나의 세상에 기꺼이 누군가를 들이는 행동을 멈춰서는 안 된다. 과정이 고통스럽고 아프더라도 관계란 나만의 행복을 위한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굳은살이 밴만큼 타인에게 온정을 베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어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삶이 조명되고 있는지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바람과 함께 자란 아이가 건강하듯 적당한 시기에 인해 속에 빠져 사는 삶도 필요하다. 물론 글을 빌려 쓰는 반성문이다.


 작년에 엄마와 같이 담근 레몬청을 16온스 키스 해링이 레터링 된 머그컵에 담는다. 뜨거운 물을 적정선까지 담고 아몬드 빼빼로 하나를 물고는 줌을 켜고 출근을 마무리한다. 오늘은 조깅을 생략하고 집에서 눈 덮인 세상을 본다. 레몬티를 다 마시는 동안 시간여행을 다녀왔다. 줌으로 출근하기 시작한 동료들에게 반갑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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