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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졸 Feb 14. 2022

연필로 세상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다

똥 손의 그림 도전기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미술 시간이 제일 싫었다.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그린다고 그렸는데. 선생님들은 항상 "다시 그려와"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면 가슴이 너무 답답했다. '아니 최선을 다해 그린 건데..' 입으로는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작게 생각했다. 지금 나이를 먹고 생각해봐도 억울하다. 나는 그 뒤로 그림 그리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그림에 흥미가 생긴 건 군대에서 동기들과 그림 시합을 할 때였다. 시합, 내기라는 단어들은 20대 남자들의 마음에 불을 지피기 충분했고. 그림을 잘 그리지도 못하는 나는 뻔뻔하게 참가장을 내밀었다. 나는 자주 하는 게임의 캐릭터를 우스꽝스럽게 그렸다. 동기들은 다들 내 그림을 보고 박장대소를 터트리며, "내가 발로 그려도 그거보단 잘 그리겠다"라고 말했다. 내기는 졌지만 '내 그림도 충분히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겠구나.'를 느꼈다. 그 후 가끔씩 친구들이나 동기들에게 그림을 그려줬다. 그림을 주면 돌아오는 건 상대방의 환한 웃음이었다. 그림이 재밌어 웃는 표정. 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때부터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이 그림을 받고 재밌어서 웃는 게 아닌, 기뻐서 웃는 표정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미술학원을 다녀보자!라는 생각을 하곤 네이버 지도를 켰다. 집 주변에 가까운 취미 미술학원이 있었다. 상담 예약을 잡기 전 '비싸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하지만 '일단 학원 선생님하고 얘기나 해보자!'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다. 


그렇게 크진 않은 학원, 한 타임에 6명 정도의 학생들. 그리고 친절한 선생님. 모두 맘에 들었다. 그리고 대망의 가격은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한 달에 9만 원이었다. '휴.. 생각보다 안 비싸네.. 다행이다. 무조건 다녀야지!' 그 자리에서 바로 등록을 했다. 선생님께서 나에게 물어보았다.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세요?" 나는 고민을 하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제가 그림을 진짜 못 그려서요.. 완전 처음부터 그리는 사람은 뭐 먼저 배워야 할까요?" 선생님께선 연필소묘를 추천해주셨다. 설명을 듣고 다음 주 수업부터 참여하기로 했다.


그 후 집에 돌아와 인터넷에 연필소묘를 검색해보았다. 엄청 잘 그린 그림들이 쏟아져 나왔다. 연필로 그린 인물화를 보며. "와 이게 연필로만 그린 거라고..?" 연필소묘의 매력은 무궁무진했다. 검은색과 흰색, 단 두 가지 색상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명암 차이로 여러 가지를 표현할 수 있었다. 빨리 학원에 가고 싶었다. 내가 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 날이 오다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미술학원에 가는 날이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학원 문을 열었다. 선생님께서 인사로 맞아주셨다. "안녕하세요~" 첫날이라 이젤 사용법, 연필과 지우개 위치, 연필 잡는 법 등등 기초를 배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만 보던 이젤을 처음으로 사용해보았다. 이젤을 세팅하고, 종이를 놓고 연필을 잡고 앉으니 화가가 된 기분이 들었다. 얼른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다. 첫날은 연필소묘의 기본인 명암 넣는 연습을 했다. 네모를 세로로 쭉 그려놓고, 톤 변화를 주기 시작했다. 슥슥 연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듣기 좋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톤이 쌓여갔다. 다 했다고 생각했는데 텅 비어 보였다.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절반을 채워주셨다. 나머지 절반은 내가 다시 열심히 톤을 넣었다. 연필을 사용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힘을 뺀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생각보다 진한 색깔이 나오고. 힘을 준다고 생각하고 썼는데 생각보다 연한 색상이 나왔다. '그림을 잘 그리려면 연필하고 좀 더 친해져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2시간이 후다닥 지나가버렸다. 아쉬웠다.



완성시킨 그림을 집에 가져왔다. 스카치테이프로 벽에 붙여놓았다. 지나가며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미술은 생각보다 흥미로운 취미였다. 얼른 다음주가 왔으면 좋겠다. 나는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게 될까? 나도 시간이 지나면 멋있는 그림으로 친구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브런치에서는 글로 나를 표현한다. 그림은 나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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