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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졸 Jan 16. 2022

요리 똥 손은 요리하면 안 되나요?

하마터면 요리 장비를 사는데 100만 원을 쓸 뻔했다

보글보글 끓고 있는 김치찌개, 집안에 아스라이 떠다니는 맛있는 냄새. 어릴 적 엄마가 요리를 해줄 때. 내가 기억하는 장면들이다. 우리 엄마는 밥을 항상 차려주셨다. 내가 요리를 하려고 하면 불이나 칼은 위험하다며 나를 말리곤하셨다. 그래서 그럴까. 나는 23살까지 계란 프라이 한번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내가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뭘까? 그건 바로 '자취'이다. 본가에서 나와 혼자 자취하게 된 나는 이제 혼자서 밥을 해먹어야했다. 그래서 요리를 배우기위해 유튜브를 보았다. 고기 남자, 요리하는 남자, 육식맨 등등 요리하는 영상들을 봤는데 그들의 요리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칼질을 하는 모습, 고기를 굽는 모습, 소중한 사람들에게 요리를 만들어주는 모습. 요리할 때 누구보다 즐거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자취요리를 배우려던 내 원래 목적은 사라지고. '나도 요리 잘하고 싶다! 나도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다!'로 바뀌었다.


요리를 하기 위해 재료와 기구를 사야 했다. 기본이 되는 칼, 냄비도 없었다. 그래서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며 무엇을 살지 골라봤다. 수비드 머신, 오븐, 에어 프라이어, 셰프용 칼. 멋진 장비들이 많았다. 쿠팡 장바구니에 넣어봤더니 총 가격 100만 원.. '헐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돈이 많이 나왔지..?' 오븐, 수비드 머신 이런 걸 다 넣으니 가격대가 너무 올라가버렸다. 나는 결제 버튼 앞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요리하고 싶다며, 하는 김에 장비 다 사자'


'처음 하는 거잖아, 재미없으면 어떡하려고 100만 원을 써?'


고민하는 시간은 길어졌고 혼자서 생각해도 답이 안나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았다. 그들은 만장일치로 다이소에서 기본 기구만 사서 해보고, 재밌으면 100만 원 치 사라는 답을 주었다. '음 그래 너무 급하게 할 필요는 없지'라고 인정하고 다이소에 가서 요리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건들만 샀다.


나의 첫 번째 요리는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겉바속촉 통 삼겹구이였다. 일단 유튜브와 네이버를 돌아다니며 레시피를 긁어모았다. 그런 다음 마트에 가서 재료를 샀다. 버터, 마늘, 로즈마리, 후추 등등 레시피에 나와있는 대로 구매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고기를 사러 갔다.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서 고기를 사러 와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정육점 사장님에게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머뭇거리다가 대뜸 유튜브 화면을 내밀었다. "이.. 이걸로 주세요!" 아저씨는 눈을 크게 뜨시곤 화면을 몇 초간 들여다보셨다. 그러곤 무심히 말했다. '삼겹살 통으로 잘라서 드릴게요." 왠지 요리란 걸 생전 해본 적이 없다는 걸 들킨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손을 깔끔하게 씻었다. 손에 거품을 내고 씻는데. 요리에 대한 걱정도 함께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나는 재료는 샀으니까 반은 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며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했다. 고기에 소금을 뿌리고. 키친타월로 물기를 닦아냈다. 그리고 프라이팬을 예열시킨 후 기름을 뿌렸다. 그 후 대망의 고기를 집어넣었다. '치이익' 그래 이 소리지. 고기 굽는 소리가 조용했던 집안의 사운드를 채워줬다. 모든 면을 번갈아가며 구우니, 겉면이 바삭바삭 해졌다. 집안이 고기 냄새로 가득 차 창문을 열었다. 온 동네에 '저 고기 먹어요!'라고 소문이라도 내듯 냄새는 창문 밖으로 흩어졌다.


불을 약불로 줄이고 뚜껑을 덮었다. 겉면을 바삭하게 구운 뒤 속은 내부의 수분으로 천천히 익히는 방식이었다. 중간에 모든 면이 골고루 익게 돌려줬다. 미리 사놓은 요리용 온도계로 고기 온도를 재 보았다. 57도 정도 되었다. '조금만 더.. 60도까지 하라 했으니깐.' 나는 처음 해보기 때문에 레시피에 있는 그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내부 온도가 60도가 되었다. 마늘과 로즈마리를 넣고 고기에 향을 입혔다. 그리고 꺼냈다. 완성이다. 겉바속촉 통 삼겹 구이. 내 손으로 처음 만든 요리였다.



잘 익은 삼겹살과 밥을 같이 먹었다. '와.. 진짜 맛있다..' 겉은 바삭바삭해 식감이 좋았고, 그 속은 수육처럼 촉촉했다. 말 그래도 겉바속촉이었다. 과장 살짝 보태서 식당에서 구워 먹는 삼겹살보다 맛있었다. 다른 반찬 없이 밥이랑 고기만 먹었다. 그래도 질리지 않았다. 처음 해본 요리라서 맛이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레시피대로 하면 요리 맛은 보장되는구나 생각했다.


다 먹은 뒤 이제 치울 시간이 되었다. 완성된 요리는 손바닥만 했는데. 뒤돌아보니 사방에 튄 기름에, 널브러져 있는 요리 도구들, 재료를 손질할 때 사용했던 도마와 칼, 그리고 고기를 구운 냄비까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했다. 이래서 집에서 삼겹살을 안 구워 먹는구나 생각했다. 기름이 묻어있는 곳을 다 키친타월로 닦았다. 키친타월은 기름기도 잘 제거해주었다. 주방에서 키친타월은 물기도 제거해주고, 기름도 제거해주고 만능이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사용했던 기구들을 설거지하고, 주변 정리를 하며 뒷정리를 마무리했다. 요리는 확실히 재밌었다. 하지만 치우는 과정의 귀찮음이 요리의 재미를 이기지 못했다.


부모님이 23년간 당연하게 해온 일들이 얼마나 위대한지 다시금 깨달았다. 다음에 본가에 내려갈 때에는 양손 가득 요리 재료를 들고 갈 예정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하나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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