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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하귤 Oct 20. 2017

쌍둥이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발등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놀란 눈으로 아무 말도 못 한 채 내 발밑에 깨진 접시와 식탁에 앉아 날 바라보고 있는 동생을 번갈아 쳐다봤다. 동생은 아무런 죄책감도 들지 않는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고, 우리 사이엔 정적만 흘렀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리에 놀란 부모님께서 달려 나와 다치지 않았냐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어봤다. 하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식탁을 떠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는 동생을 보고만 있었다. 


내 동생. 세상에 1분 먼저 태어난 이유로 난 형이 되고, 내 동생은 동생이 되었다. 우리의 사이는 나쁘지 않았지만, 동생은 항상 자신보다 날 먼저 챙기는 부모님을 보고, 내가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래서 질투하는 그래도 이런 일이 벌어질 정도로 우애가 나쁘진 않았다. 서로 티격태격하긴 했지만, 같이 잘 놀면서 웃고 울며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았다. 하지만 그 일이 있고 난 후 동생은 완전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변했다. 애기 때부터 난 동생이랑 모든 걸 함께하는 것이 좋았다. 동생이 울면 같이 울기도 했고, 동생이 먹는 속도에 맞춰 밥을 먹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은 이런 내가 귀찮은 듯이 날 피해 다니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난 동생에게 집착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그 일이 일어난 날에도 난 싫다는 동생을 붙잡고 뒷산에 올라갔다. 


 "빨리 가자, 오늘은 뭐 하고 놀래?" 


우중충했던 날씨가 오랜만에 맑아진 날이었기에, 난 더욱 신이 나서 동생에게 물었다. 하지만 동생의 반응은 나와 정반대였다. 동생은 계속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내가 묻자 화난 듯 나에게 소리쳤다.

 

"난 집에서 장난감 가지고 놀고 싶다니까." 


난 못마땅한 표정을 하고 심술이 잔뜩 나 있는 동생을 억지로 끌고 산 정상까지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하자마자 난 놀 생각에 신나 이리저리 둘러보면서 놀 거리를 찾고 있었다. 동생은 그런 내게서 도망치듯 잡고 있던 손을 뿌리치고 큰 느티나무가 자라 있는 언덕 위로 올라갔다. 


 "빨리 내려와. 내려와서 우리 전쟁놀이하자. 내가 나쁜 팀 할게." 

 "싫어, 형 혼자 놀아. 난 저쪽으로 가서 혼자 놀 테니까." 


동생은 그렇게 말하곤 곧바로 뒤돌아 걷어갔다. 난 동생과 함께 놀고 싶을 뿐인데 그걸 몰라주는 동생에게 화가 났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뛰어가 동생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겼다. 


"어? 어?" 


내가 동생을 잡고 끌어당기는 순간, 동생은 당황한 듯 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뒤로 떨어졌다. 난 손쓸 틈도 없이 굴러 떨어지는 동생을 보며 당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난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언덕 밑으로 시선을 돌리자 동생이 바닥에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동생은 꽤 크게 다쳤는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난 놀라 바로 동생에게 뛰어갔다.


  “야, 괜찮아?? 정신 차려봐!”


동생을 흔들어 깨워보려 했지만, 동생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때가 돼서야 난 큰일이 일어났다는 걸 깨닫고, 동생을 업고 집으로 무작정 뛰어갔다. 어린아이가 같은 나이의 아이를 업고 뛰는 건 쉽지 않았다. 그것도 산길을 내려가는 건 정말 힘들었다. 다리가 아파서 주저앉고 싶었지만, 업혀있는 동생을 생각하니 쉴 수도 없었다. 난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겨우 집 앞에 도착했다. 흐르는 땀이 시야를 방해했지만, 난 땀을 닦을 겨를도 없이, 동생을 조심히 내려놓은 다음 있는 힘껏 문을 두드렸다. 


 "엄마! 엄마!" 


곧이어 문이 열리고 엄마가 웃으며 날 반겨줬다. 


 “귀여운 우리 첫째, 잘 놀다 왔니?”


난 엄마를 보자마자 주저앉으며 울기 시작했다. 


 "동생이…. 동생이 다쳤어요." 


엄마는 내 말을 듣고 나서야 아무 말 없이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동생을 발견했다. 그리고 놀라 큰 소리로 아빠를 불렀다. 그리고 다시 날 이리저리 살피며 물었다.

 

"넌 어디 다친 데 없지?" 


 "네" 


엄마가 날 한창 달래고 있을 때, 아빠가 나와 쓰러진 동생을 보고 놀라 바로 동생을 들고 차로 향하면서 말했다. 


 "둘째는 내가 데리고 갈게요. 당신은 첫째 데리고 들어가 좀 달래고 있어요. 도착하면 전화할게요." 


엄마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내 손을 잡았다. 난 힘없이 멀어져 가는 동생을 바라만 봐야 했다. 차가 떠나고 엄마는 날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날 침대에 뉘고,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봤다. 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엄마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다, 내가 잠들 때까지 옆에 있어 주었다. 난 동생이 괜찮길 바랐다. 그리고 내가 눈을 감았다가 뜨면, 동생이 평소처럼 툴툴거리며 내게 말을 걸고, 난 그에게 장난치길 바라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 난 며칠 동안 동생을 볼 수 없었다. 

동생이 없는 하루하루는 정말 지옥 같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도 맛이 없었고, 재미있게 보던 만화영화도 재미가 없었다. 동생이 없으니 모든 게 재미가 없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달에게 동생을 돌려달라는 소원을 빌었다. 그리고 드디어 달이 내 소원을 들어준 걸까. 난 한 달이 조금 지난 후,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날 아침엔 엄마가 깨우지 않았는데도  번쩍 눈이 떠졌다. 그리고 난 눈을 뜨자마자 침대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난 매일 동생이 돌아오길 바랐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동생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난 오랜만에 동생을 만난 게 너무 기뻐 동생을 끌어안으며 동생에게 물었다. 


"너 이제 괜찮아? 이제 안 아픈 거야?" 


하지만 동생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날 빤히 보다가 대답 없이 방을 나갔다. 나는  이상했지만, 침대에 앉아 나가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난 계속 동생을 볼 때마다 계속 말을 걸었지만, 동생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내가 들을 수 있는 소리는, 동생에게 묻는 내 목소리와 작은 시곗바늘이 움직이는 소리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내 앞엔 웃고 있는 동생이 아닌, 접시를 내게 던지고 말없이 돌아선 동생만 있었다. 난 처음에 동생이 서로 오랜만에 만나서 어색한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처럼 투덜거리며 나랑 같이 놀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의 동생은 내가 알던 동생관 너무 달랐다. 그래도 난 동생의 작은 복수라고 생각했다. 나 때문에 심하게 다쳤으니 심술이 난 거라고 그렇게 여겼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다시 웃으며 장난치고, 싸우기도 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난 몰랐다. 접시는 시작에 불과했다는 걸. 


동생이 다시 온 뒤, 오랜만에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할 때였다. 우리는 별다른 이야기 없이 먹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식탁은 고기를 써는 소리와 어디 있을지 모를 쥐구멍에서 들려오는 찍찍 소리뿐이었다. 난 스스로 고기를 썰어 먹는 게 아직 익숙지 않아서 애를 먹고 있었고, 동생도 서투른 칼질로 고기를 썰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불만이 가득 차 있었다. 동생은 점차 신경질적으로 고기를 썰기 시작했고, 결국 왼손으로 쥐고 있던 포크를 식탁 아래로 떨어트렸다. 동생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포크들 다시 집어 들기 위해 식탁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가 포크를 다시 짚고 일어섰을 땐, 포크와 함께 다른 것 하나가 손에 잡혀있었다. 그것은 동생 손에서 빠져나가려는 듯이 발버둥을 치며, 찍찍 소리를 냈다. 그때까지 난 동생이 어떻게 그리고 왜 생쥐를 잡아들어 올렸는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동생을 쳐다보자, 동생은 갑자기 접시 위에 놓고 생쥐를 놓고 포크로 마구 찍기 시작했다. 생쥐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마구 울었고, 그것을 지켜보던 나에게 피가 조금 튀었다. 난 온몸에 소름이 쫙 돋았고 크게 소리쳤다. 엄마는 소리 지르는 내게 달려와 얼른 수건으로 묻은 피를 닦아주었고, 가장 멀리 앉아있던 아빤 놀란 표정으로 날 보았다. 난 여전히 동생에게 시선이 고정된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는데, 그런 내 모습이 즐거운지 생쥐를 마구 찌르던 동생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했을 때와 같은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고 있는 그의 표정이, 내겐 이미 죽은 듯 조용한 생쥐보다 더 소름 돋았다. 


이날의 기억은 오랫동안 날 괴롭혔다. 꿈속에서도 계속 맴돌아 나는 쉽게 잠을 자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난 부모님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 그래도 그 기억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날 괴롭혔다. 전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던 생쥐들의 울음소리가 절규처럼 들렸고, 그 이후 동생을 만나기가 무서워 얼마 동안은 동생을 피해 집 밖으로 나가 시간을 보냈다.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베티와 더 친해졌다. 베티는 언제나 내가 집 밖으로 나오면 내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와 비비적거렸다. 난 그런 베티가 싫지 않았고, 베티도 날 좋아하고 잘 따랐다. 베티와 놀면서 나는 점점 생쥐에 대한 일을 잊어갔다. 가을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여느 때처럼 베티와 한참 놀아 준 다음 집 근처에 있는 놀이터에 갔다. 놀이터는 항상 아이들 소리로 북적거렸는데, 날씨가 서늘해진 탓인지 그날따라 조용하기만 했다. 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그네에 앉아 지친 몸을 흔들었다. 또래 친구들과 노는 것도 즐거웠지만, 베티와 놀고 나면 피곤해져서 또 놀기는 힘들었다. 그래서 한가한 놀이터가 더 좋다고 느껴졌다. 사실 평소라면 베티와 놀고 집에서 자거나,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쉬었겠지만, 동생을 피하려다 보니 이렇게 놀이터라도 와서 잠깐 쉬는 게 좋았다. 그네에 앉아서 멍하니 있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난 편안했던 그네에서 천천히 내려와 다시 집으로 향해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은 느리기만 했다. 집 앞에 도착한 난 집에 들어가기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일부로 발걸음을 돌려 집 주변 골목을 맴돌았다. 그렇게 집 근처를 돌면서 해가 지길 기다리고 있을 때,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퍽 퍽 깨갱


난 순간 불안해졌다. 그 불길한 소리는 집에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들렸고, 나는 초초한 마음에 최대한 빨리 달려 대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베티와 피가 묻은 막대기를 든 동생이었다. 난 한차례 비명을 지른 뒤, 재빨리 쓰러져 있는 베티에게 다가가 그를 안아 들고 이리저리 살폈다. 생각보다 크게 다쳤는지 이곳저곳이 터지고, 여러 곳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베티는 내 덩치와 비슷했기 때문에 내 옷은 베티의 피가 묻어 빨갛게 물들었다. 하지만 난 더욱 베티를 놓치지 않으려 더 꽉 안아 들었다. 베티는 내가 힘을 주자 아픈 듯이 낑낑거리며, 두려움이 가득 찬 눈으로 날 바라봤다. 난 그런 베티의 모습에 너무 슬프고 화가 나서 동생에게 소리쳤다. 

 

"왜! 도대체 베티를 이렇게 만든 거야!"


동생은 내 울음 섞인 외침에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은 채 그냥 뒤돌아 사라졌다. 난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생을 보면서 한참 동안 베티를 잡고 울었다. 얼마 뒤 그런 내 울음소리를 들은 것인지 엄마가 문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나와 베티의 모습을 본 순간 당황스럽고 걱정된 눈으로 날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이니?"

 "베티가, 아니 동생이 베티를…"


난 울음이 터져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엄만 날 잠시 지긋이 바라보다가 날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곧장 내 방 침대에 날 눕히고 토닥이면서 말했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었어. 그냥 악몽이야. 자고 일어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엄마는 내게 계속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면서 날 진정시켜줬다. 난 베티가 계속 떠올랐지만, 이내 엄마의 부드러운 손길 속에서 잠이 들었다.엄마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말하지만, 난 한동안 베티 생각에 아무것도 먹기가 싫었다. 아빠는 시무룩한 나에게 베티가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 베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시간이 지날수록 동생을 보기가 점점 더 싫어졌다. 내가 잘못하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복수하는 건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난 동생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동생은 그전부터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기에, 우린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가 더 안 좋아졌다. 난 내가 동생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동생도 더는 나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생의 복수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내가 동생을 무시하기 시작하자, 내 생각과는 다르게 동생은 자그마한 일들로 더 많이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내가 그렸던 그림들에 낙서를 하고, 내 침대에 오줌을 싸고, 심지어 내가 정말 아끼던 신발을 신고 돌아다녔다. 그러다 내 옷까지 입자, 난 정말 화가 나서 동생에게 달려들었다. 동생이 입고 있던 옷을 벗기고, 그 자리에서 찢어버렸다. 분명 아끼던 옷이지만, 동생이 그 옷을 아무렇지 않게 입고 있었던 사실에 너무 화가 났다. 내가 소리치며 옷을 찢는 모습을 엄마가 발견하고 말리지 않았으면, 동생과 분명 주먹질을 하면서 싸웠을 것이다.

그 뒤로 몇 차례 작은 소동이 지나고, 겨울이 왔다. 베티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았고, 날씨가 점점 더 쌀쌀해져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날씨가 추워져서인지 아니면 동생도 지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날 괴롭히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래도 난 마음이 놓이지 않아, 항상 동생만 보면 화난 얼굴로 동생을 쳐다봤다. 그리고 내가 그럴 때마다 부모님은 날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크리스마스를 얼마 남기지 않고, 엄마가 병원에 자주 가기 시작했다. 동생이 다치고 나서 가끔씩 병원에 가긴 했지만, 날 두고 병원에 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아빠가 집에 있을 때가 아니면 절대 날 혼자 두고 병원에 가지 않았다. 하지만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몸이 더 안 좋아진 것인지, 날 두고 병원에 가는 날이 많아졌다. 난 집에 동생과 둘이 남아있어야 한다는 게 끔찍했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별다른 일 없이 흘러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일주일 앞둔 날, 난 뒤척이다가 잠에서 깼다. 시간은 한밤중이었고, 난 화장실 생각에 방문을 나섰다. 아래층에서 부모님이 대화하는 듯 한 소리가 들렸고, 난 일단 급한 볼일을 해결하고 나서야,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첫째가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

 "내 생각도 그래, 저번 일도 그렇고 그 저번 일도…"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일단 둘째부터 어떻게 해봐야지. 더 이상 이쪽에 있는 건 그 아이에게 좋을 게 없을 것 같아. 다른 곳을 알아봐야겠어."

 "하지만, 그럼 멀리 떨어져야 될 텐데 괜찮겠어요?"

 "첫째도 그렇지만, 둘째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지 않겠어?"

 "일단 같이 알아봐요.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이쪽에서 보내는 게 어떨까요?"

 “하긴 첫째도 이젠…”


난 부모님의 대화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대화 내용에 가슴이 철렁했다. 다시 동생과 떨어져 있을 수도 있다는 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시 동생을 만나고 동생이 밉기도 했지만, 그래도 다시 혼자가 되는 건 싫었다. 접시도, 생쥐도, 베티 일도 너무나 무서웠지만, 다시 동생과 떨어지고 싶진 않았다. 지금은 밉고 한편으론 조금 무섭지만, 내 기억의 동생은 여전히 같이 있으면 즐거운 친구였고, 동생이 없던 하루하루는 지옥이었기에, 동생과 헤어진다는 건 정말 싫었다.


난 다시 자리에 누워, 자려고 노력했지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머릿속은 온통 동생과 관련된 생각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동생과 헤어지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밤새 생각했지만 끝내 결론을 내진 못했다. 아침이 되고 난 그동안 피했던 동생을 찾아갔다. 동생은 내가 먼저 다가온 것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없는지 그냥 무표정한 눈으로 날 쓱 한 번 보곤 다시 장난감에 집중했다. 난 용기를 내서 동생에게 내가 들은 이야기를 해줬다. 하지만 동생은 아무렇지 않은 듯 그냥 고개를 한 번 끄떡이고, 다시 장난감을 가지고 놀뿐이었다. 난 그런 동생의 모습에 더 불안해졌다. 동생도 그냥 날 떠나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부터 부모님은 날 재우고 밖으로 나가셨다. 내가 잠든 것 같을 때, 조용히 집을 나섰고, 난 아빠 차 소리가 집에서 멀어질 때쯤 일어나, 동생 방으로 갔다. 그리고 동생이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고, 동생이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크리스마스이브가 되었다. 난 그동안 동생이 잠시라도 안 보이면 불안해져 온 집을 뒤져 동생을 찾곤 했다. 동생을 찾아도 불안한 건 사라지지 않고,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크리스마스이브도 별 사건 없이 흘러갔다. 여전히 엄마는 내가 잠든 모습을 보고 나가기 위해 내 곁에 앉아 동화책을 읽어줬고, 난 평소처럼 자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텼다. 하지만 그날따라 쏟아지는 졸음을 이겨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그만 깜빡하고 잠이 들었다. 내가 화들짝 놀라 일어났을 땐 이미 새벽이 다 된 시간이었다. 집 안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고, 난 불안한 마음에 동생을 찾아 나섰다. 먼저 동생 방부터 가봤지만, 동생의 침대는 깨끗하기만 했다. 부모님 또한 방에 없었기에 난 더 불안해져, 집안 이곳저곳을 뛰어다녔다. 그렇게 내가 막 집안을 뒤지던 중에 부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들은 난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렇게 애타게 찾던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난 그게 동생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야, 여기서 뭐 해?"


나는 어렴풋이 보이는 동생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부엌 분위기는 안 그래도 불안했던 마음을 더 자극했다. 동생은 그런 내 맘을 모르는지 아무 말 없이 그냥 서 있기만 했다. 난 동생에게 좀 더 다가가려고 했지만, 다리가 떨려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 한 걸음 내디뎠을 때, 날카로운 뭔가가 내 발에 닿았다. 난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악’ 하고 소리를 질렀다. 동생은 내 비명에도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난 잔뜩 찡그린 눈을 떠 바닥을 보았다. 그곳엔 낯익은 식칼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내가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부엌 창가로 환한 달빛이 가득 들어오면서 난 동생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다시 한번 악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번엔 아파서 지른 비명이 아니라, 너무 놀라서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동생의 온몸엔 피가 묻어있고, 두 팔에선 피가 흘렀다. 그 모습에 난 몸이 떨리는 걸 느꼈다. 그리고 동생을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동생을 피해 시선을 돌리는 순간, 동생 뒤로 누군가의 팔과 다리가 보였다. 그 팔과 다리가 낯설지 않았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은 추측이 머릿속을 지나갔다. 난 그 끔찍한 생각에 놀라 어쩔 줄 몰랐다. 그 순간 굳어있던 동생이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난 그런 동생을 보면서, 입을 벌린 체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공황 상태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동생은 점점 더 내게 가까워졌다. 난 동생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하자,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동생에게서 벗어나려 뒷걸음질을 쳤지만, 급하게 움직인 발이 꼬이면서 뒤로 넘어지고 말았다. 내가 넘어져 잠시 눈을 깜빡이고 앞을 봤을 때, 이미 동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난 너무 무서워 몸을 웅크린 채 두리번거리다 거실 한쪽에 놓인 전신 거울을 보고 놀라 소리쳤다. 거울 속의 난 앉아있지 않았다. 온통 피로 얼룩진 옷을 입고, 거울 밖에 있는 나를 보며 서 있었다. 나는 너무 놀라 고개를 밑으로 떨궜는데, 분명 몸을 잔뜩 웅크렸던 내가 두 발로 서있었다. 그제야 내 몸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느껴졌다. 그리고 내가 손에 뭔가 쥐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난 순간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리고 순간 다시 눈에 들어온 거울엔 내가 날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웃는 모습이 동생과 너무 비슷했다. 날 보면서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것처럼 웃었던 그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식칼을 들고 날 보며 웃고 있는 난 너무나 무서웠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여러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동생이 다치고 돌아온 다음에 기억들이 새롭게 떠올랐다. 접시가 깨지고, 생쥐가 포크에 찔려 죽고, 베티가 낑낑거리다 죽었던 기억들. 그리고 그 외에 자그마한 괴롭힘들. 하지만 그 속엔 베티도 동생도 없었다. 오직 나 혼자만 그 속에서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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