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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나남은에어팟 Jun 13. 2021

2. '건강하게만 자라다오' 시절

Under 8


언제부터 언제까지일까, 건강하게만 자라는게 부모님의 만족도를 가득 채우는 시기는. 


나는 많이 아프던 아이였다고 한다.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할 정도로 밤에 열이 내리지 않는 적이 많았고 체하기도 많이 체했다. 갓난 아기였을때는 밤에 열이 나서 거품을 물고 눈이 뒤집히기도 했다. 엄마, 아빠도 고작 20대 후반의 초보 부모님이었으니 엄청난 난이도 였을 것이다. 


당시 내가 그렇게 자주 발작을 일으키던 첫돌을 맞기전에 우리집은 아버지 직장의 동료들이 모여서 관사에 살았었다. 그곳에서 내가 뒤집어 질때마다 엄마 아빠는 자동차가 있는 선배 집 대문을 두드렸다고 한다. 그 새벽에 선배 집 대문을 두드리는건 지금의 부모님 성격에 상상도 가지 않지만, 그만큼 절박 했던 것 같다. 거품을 물고 있는 갓난애기를 들고 선배 집 앞에서 서서 발을 동동 구르는 젊은 시절의 엄마,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느 정도 갓난아기 타이틀을 떼고 나서는 열이 많이 나던 시기가 기억이 나는데, 새벽에 열이 나면 나는 안방 문을 열고 열이 난다고 칭얼댔다. 그러면 아빠는 화장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찬물로 목욕을 시켰다. 자다 깬 새벽에 찬물로 목욕을 하면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울었다. 너무너무 추웠고 괴로웠는데 그래도 신기하게 그렇게 찬물로 씻고 나면 푹 잘수 있었던 것 같다.  


고열과 더불어 한동안 나를 괴롭혔던 건 체하는 것이었다. 어쩜 그렇게 쉽게 체하는지 스무살 넘어 술 마시다 토하는 것보다 어릴때 토한게 더 많았다. 급히 먹다가 체하기도 하고 더워서 물을 크게 삼키고 체하기도 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체하고 나면 한동안 그 음식을 못먹긴 했는데, 쉽게 까먹고 그 뒤로도 덥석 덥석 입으로 집어 넣곤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은, 그때도 어느덧 나는 체해서 화장실에서 '으으 토할 거 같다' 라고 혼자 있는데 엄마가 동생이랑 라면을 끓여먹었다. 라면냄새가 너무 맛있게 느껴지는데 체해서 토는 나는 상황이 너무 싫어서, 그리고 아들이 토하는데 라면을 끓여먹으면서 TV를 보는 엄마와 동생의 모습에서 가열찬 배신감을 느끼던게 아직도 기억난다. 아마 나는 그당시에 '나는 주워온 아이일거야'라는 생각에 가득차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제 열도 잘 나지 않고, 잘 체하지도 않는 어엿한 어른이 되었다. 잔병치레도 많지 않고 딱히 큰 병도 없이 건강하다. 그저 건강하게만 자라달라는 엄마, 아빠의 소원 정도는 이룬거 같아서 머쓱하긴 하지만 뿌듯해 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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