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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원진 Apr 20. 2021

그래 그래 피었구나

열하나

 운하의 흐름은 항상 뭔가를 반사한다. 그것은 그 본성이다. 그렇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매끄럽게 빛나는 표면은 자신이 지나는 강둑에 있는 모든 것에 관심을 품는다. 소떼 건, 잎이건, 꽃이건, 모든 것이, 따라서 그 모든 것을 반사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마크 트웨인>



작년 봄, 꽃피던 때를 기억한다.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내게 꽃이 예쁘지 않다고 했다. 인간이란 참 단순하구나 싶었다. 그녀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있지 않다 했고, 예쁜 걸 봐도 예쁘지 않다 했다. 엄마에게 남편의 부재란 그런 것이었다.

엄마는 나날이 살이 빠졌다. 30년간 비슷한 몸무게를 유지하며 사셨으나 급격히 야위여 갔고, 피부는 거칠어졌다. 오래 병을 앓은 환자처럼 눈 밑으로 검은 그늘도 생겼다. 이러다가 엄마도 떠나보내는 건 아닐까 걱정했던 게 그때쯤이며, 내가 엄마만큼 아빠를 사랑하지 않았나 생각했던 것도 그 무렵이었다. 나는 꽃이 예뻐 보였기 때문이다.  



엄마에겐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었다. 산에 가 꽃을 보면 "꽃아 안녕."하고 인사를 했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 다시 그 꽃과 만나면 "꽃아 잘 있어."라고 얘기했다. 마주 보고 있는 꽃이 보이면 "애네들 봐. 좋아해서 서로 바라보고 있어." 말하기도 했다. 나는 엄마의 그런 천진함이 좋았다. 엄마 나이까지 순수를 간직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마크 트웨인'이 운하에 대해 말한 것처럼, 엄마의 마음은 여리고 매끄러운 표면으로 세상을 반사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만 반사하는 운하와 달리 그녀의 마음은 지나간 것, 눈 앞에 보이지 않는 것, 그리운 것 또한 반사했다. 그런 까닭에 그 시기 엄마 마음엔 꽃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봄이 왔다. 꽃이 폈다. 우리는 늘 걷던 길을 걸어서 꽃 앞에 섰다. 엄마는 만개 한 꽃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눈물 나게 예쁘구나."

그 한마디엔 엄마가 보낸 1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꽃이 핀 나무와 그 앞에 선 엄마가 다르지 않다고 느꼈다. 나뭇가지에 다시 꽃봉오리가 맺히기까지 걸린 시간과, 엄마 마음에 다시 꽃이 들어설 자리가 마련되기까지 걸린 시간이 같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녀도 나무도 자라 있었다.

나는 엄마가 아빠를 이전만큼 사랑하지 않기에 꽃이 예뻐 보이는 게 아니란 걸 알고 있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 그립기에 꽃이 눈물 나게 예뻐 보이는 거라고. 그녀 마음속 반영엔 많은 꽃잎과 함께 아빠와 보낸 순간순간이 같이 맺혀 있으리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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