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옥탑 작업실 앞으로 눈이 수북이 쌓였다.
빗자루로 눈을 쓸어내며 아버지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도 눈이 내릴까. 어느덧 내일이면 그가 떠난 지 1년이 된다.
1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은 오늘처럼 춥지도, 눈이 오지도 않았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몇 가지 서류를 제출해야 해서 누나와 함께 '혜화동주민센터'에 가야 했다. 자주 걷던 길이었음에도 다니는 버스며, 간판의 색깔, 거리의 소음까지 생경했다. 누나는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했으니, 이제는 편히 보내드리자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숨을 쉴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
1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날의 시린 공기가 느껴진다. 살아계실 땐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뵈었는데, 돌아가시고 난 뒤엔 매일 기억에서 아버지를 만난다. 그 기억들 중엔 그와 같이 눈을 쓴 기억도 있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독립해서 나갈 때까지, 우린 자주 같이 눈을 쓸었다.
어릴 땐 눈을 치우는 일보다 놀고 싶어서 따라나섰다. 집 앞을 다 쓸고 나면 가족끼리 편을 나눠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도 만들었다. 눈사람을 네 개 만들었는데 가장 큰 건 아빠, 그 다음은 엄마, 나와 누나의 눈사람은 아이 주먹만큼 작았다. 지금도 초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아파트를 떠올리면, 입구에 나란히 서있던 눈사람이 그려진다.
내 몸집이 아버지보다 커지고 난 뒤엔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선 날이 더 많았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 눈을 쓴 기억 속엔 아버지의 앞모습보다 뒷모습이 더 많다. 생각해보면 그는 '왜 눈을 쓸어야 하는지' 같은 말은 한 적이 없다. 그저 눈이 오면 의레 나가 비질을 했고, 다음날이면 사람들은 눈이 치워진 길을 걸었다. 돌아보면 그 뒷모습을 보며 자연스레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사는 법을 배웠던 것 같다.
눈이 오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고, 사람이 늙고 죽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란 걸 안다. 다만 그걸 받아들이는 마음이 부자연스러울 뿐이다. 내 몸은 시간 속에 살아서 끊임없이 앞으로 밀려가지만, 마음은 자주 과거의 공간에 머물러 있다. 나는 여전히 아주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의 죽음을 겪고도 꿋꿋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놀랍다. 그나마 위안인 건 나의 아버지 역시, 당신의 부모님을 보낸 후에도 제 몫의 삶을 사셨다는 것이다. 그 사실은 지금 내리는 눈처럼 내게 위로가 된다.
원래는 돌아가신 날짜에 맞춰 내일 성묘를 가려했지만, 눈 쌓인 길을 가는 게 위험해서 다음 주로 미뤘다. 그때까지 아버지 묘에 눈이 쌓여있다면 치워드려야겠다. 아버지가 계신 곳에도 눈이 오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