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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06. 2023

백마리 개, 홍역의 추억

12. 나도 홍역이었다.

홍역 판정을 받았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다. 쓰러지는 개들을 눕혀 링거를 놓았고, 죽어나가는 개들은 화장터로 옮겼다. 추위에 두 시간을 기다려 약을 얻고, 연탄불이 꺼질라 3시간마다 알람을 맞추었다. 잠이 든 기억 없는 잠에서 깨어나 주사기부터 챙겨 들고 깨달았다. 내 안경 어디 있지?



울산으로 데리러 갔었던 그 개이다. 당시 이름은 ‘로드’였다.


괜히 갔었나 싶다.


홍역에 걸리면 죽는다. 한두 마리 살리는 것은 가능할지도 모른다. 어린 강아지라면 가망이 없다. 홍역은 반드시 후유증을 남긴다. 틱 장애는 홍역 탓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그런 홍역이 나에게 찾아왔었다. 몇 년 전 이야기이다. 당시에는 백 마리가 아닌 백오십 마리가 있었다. 그중 40마리가 죽었다.


울산이었던 것 같다. 새벽에 전화 한 통을 받고 시동을 걸었다. 하반신 마비인 시츄 두 마리를 맡아달라는 요청이었다. 사연이 있었겠지만 기억나지 않는다. 세상 모든 개들을 살리겠다며 전국을 누비던 시절이었다. 아마 영웅이라도 된 듯 그 먼 거리를 달려갔었을 것이다.


차 뒷좌석을 펼쳐 두툼한 이불을 깔아 개 두 마리를 태웠다. 돌아오는 길이 멀었지만 개들은 지겨워하지 않았다. 오는 내내 잠들어 있었다. 사흘이 지났다. 한 마리가 기침을 시작했다. 병원을 다녀왔지만 나아지지 않았다. 다시 사흘이 지나고 새벽에 홀로 죽었다. 슬픔에 이유를 붙이기도 전에 갑자기 그랬다.


일주일이 지나자 거의 모든 개들이 기침을 했다. 추운 겨울이었지만 수십 마리가 기침을 하는 경우는 없었다. 불안감이 엄습했고 최악의 상황이 드러났다. 검사 결과 홍역이었다. 홍역을 끝으로 문을 닫거나 분해되는 시설이 종종 있었다. 알아도 대응하기 어려운, 이 분야에서는 최악의 사태였다.



지금은 다른 이유로 애니멀호더라고 불린다.


애니멀호더


창고로 쓰던 컨테이너를 비우고 연탄난로를 설치했다. 이불을 깔고 쓰러진 개들을 눕혔다. 전염성이 강하기에 동물병원 입원은커녕 방문도 허락되지 않았다. 홀로 찾아간 동물병원에서 다행히 대응책을 마련해 주었다. 뒤바꿀 수 없는 상황,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 차도를 보일 때까지 주사약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때가 좋지 않았다. 마침 한 달 전 40마리가 들어왔었다. 건강하게 살던 개들이 아니었기에 홍역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걱정은 기우로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사태는 예상치 못한 곳으로 번졌다. 개도 사람도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SNS 상에서는 애니멀호더로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애니멀호더로부터 개들을 구조하겠다는 사람들이 몰려왔다. 아침마다 경적소리로 깨워주니 다행이었다. 시간을 놓쳐 연탄불을 꺼뜨리거나 링거가 말라버리면 큰 일이었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빼앗긴 물건을 되찾은 듯 냉정하게 돌아서는 그들에게 교통비 보태라며 5만 원을 쥐어 주었다.


예기치 못한 구조활동은 며칠을 가지 못했다. 찾는 이가 없는 개들은 여전히 쓰러진 채로 매 순간을 버텨냈다. 하루가 멀다 하고 개들은 죽어나갔다. 40마리로 기억한다. 한 마리당 평균 장례비가 50만 원이었으니 통장 잔고는 물론이고 끌어 쓸 돈까지 동이 났다.




내가 넘기지 않아도 힘든 순간들은 넘어가더라. 시간이 흘렀고 홍역은 잠잠해져 갔다. 버티지 못한 개들은 떠나고, 남겨진 개들은 몸살을 앓듯 한 달을 더 버텼다. 나도 그 쯤 정신이 돌아왔던 것 같다. 큰 일을 치르면 주변이 또렷이 보인다고 했던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다 떠나갔다. 갈 곳 없는 수십 마리 개와 사람 한 명만이 그 자리에 남겨졌다.


그날이 나와 여기 녀석들의 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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