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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14. 2023

백마리 개, 를 싫어한다.

14.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다들 놀라는 부분이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아니다. 좋고 싫음을 정해야 할 만큼 중요한 대상이 아니다. 다들 의아해한다. 좋아하지 않는 개를 백마리나 돌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다. 모르겠다. 10년이 지났지만 모르겠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확실하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은 할 수 없다.




이불 한 장이 사람보다 많은 위안을 개에게 준다.


물을 끓이고 얼그레이 한 스푼을 티포트에 담는다. 우려내는 시간은 6분이 적당하다고 한다. 기다리지 못한다. 물 색상이 누렇게 변해가는 것만 확인하고 큰 컵에 따른다. 집에 있는 유일한 유리컵이 하필이면 큰 컵이다. 손잡이에 손가락을 걸어 꽤나 힘을 주어야 한 모금 마실 수 있다.


뜨겁다. 다시 잔을 내려놓고 생각에 잠긴다. 많은 이들이 묻는다. 훗날 내 몸이 아파지면 이 많은 개들을 어떻게 할 것이냐고. 혹은 내가 늙으면 그때는 또 어떡할 것이냐고. 진심 어린 걱정에 입을 다문다. 걱정을 하는 척 다문 입 너머 여운을 남긴다.


설득할 수 있을까? 아무 걱정이 없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까? 정말이지 훗날 일어날 일에 대해 조금도 걱정이 없다. 아프면 못하는 것이고, 늙어서 힘들면 그만둘 뿐이다. 여태껏 원 없이 해왔다. 미련이니 그런 것이 있을 리 없다.




우측 상단에 어제 온 개가 앉아있다.


적당히 식은 컵을 잡아 드디어 한 모금 했다. 커피를 처음 마시던 순간처럼, 담배를 처음 빨아대던 그때처럼 아직 쓴 맛뿐이다. 우습게도 얼그레이라는 글자가 예뻐서 골랐다. 뭐든 입에 머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쓰다 못해 떫은맛의 한 모금을 입에 머금은 이유는 한 가지. 언젠가는 남들이 말하는 단맛을 기다린다.


개들 돌보는 일은 떫은 감을 입에 물고 있는 것과 같았다. 감동적이거나 혹은 보람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좋아하는 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소위 힐링이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 10년 차 부부가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며 힐링이 되는 순간만큼은 있었을 것이다.


개가 아니다. 그렇다고 책임져야 할 무거운 짊도 아니다. 개 관련 서적을 나만큼 많이 본 사람은 드물 거다. 영어는 둘째치고 독일어까지 뜯어보며 찾았었다. 개 한 마리를 잘 키우기 위한 방법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없었다. 결국 개를 키우면서 내가 불편함을 겪지 않을 방법뿐이었다.




쓰다.


얼그레이 차가 식어간다. 컵에 남은 누런 물을 한입에 비웠다. 입안에 혀를 놀려도 쓴 맛이 가시지를 않는다. 뱃속에 뭔가 유익한 것이 들어갔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해가 뜨기 전이라 키보드 앞에서 시간을 더 보내야 한다. 개들 걱정이 앞서지만 그래도 추운 것은 싫다.


열한 번째 겨울이다. 작년 겨울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니 분명한 사실일 거다. 추위를 버텨낼 또는 이겨낼 노하우는 축척되지 않았다. 고민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이다. 물론 남은 것은 있다. 작년 겨울을 버티고 아직 살아 있다는 것. 개들이 1년을 더 살아 있다는 것이 지난 1년의 모든 이야기다.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 말하고 싶었다. 몇 단락이면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뇌수막염으로 얼마 전 퇴원한 개 한 마리가 난로 앞에 토를 한다. 글을 쓰던 중에 일어나 개의 상태를 살핀다. 토사물을 치우는 것은 급하지 않다. 무엇을 부정하려 했던 것일까?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라 말하고 싶었을까? 텅 빈 물그릇을 기웃거리는 개에게 가봐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나는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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