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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성 Nov 30. 2023

백마리 개, 뾰족한 말

22. 휘갈겨 내뱉었다.

유기견이란 단어에 행복을 떠올릴 수 있을까? 편안함, 안락함 그리고 즐거움을 이을 수 있을까? 어려운 일이다. 긴 시간 다듬어진 결과 불행과 동의의가 되었다. 주어를 유기견으로 시작해서 행복으로 끝맺음하면 이유를 묻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유기견이 행복해졌냐고 묻는다.




유기견은 개다. 개와 다른 동물일리 없다. 개와 유기견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이를 우리가 만들었다. 유기견으로 태어나 죽는 일 따위 없다. 개로 태어나 유기견 신분이 되어갈 뿐이다. 세상 어떤 개도 버림받은 개로서 태어난 적 없다.


사람들은 열광한다. 약하고 무능력한 개 한 마리의 구원자가 되려 한다. 직장을 다니며 사회생활에 충실한 사람들을 얕잡아 본다. 가족을 돌보며 가정생활에 전념하는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남보다 나은 사람이란 사실을 확인받고 싶어 한다. 세 살짜리 아이도 이보다 영리하게 떼쓰지 않을까?


유기견 활동이 곧 자격이 되었다. 남들은 하지 못하는 숭고한 일이기에 보다 높은 지위를 득했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면 착각이 아니라 무지하다. 유기견을 구조하는 이유를 묻지 않았으니 알리도 없다. 스스로 깨닫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학습량이 필요하다. 라이온킹의 아기 사자 등장신처럼 유기견 하나 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바쁘다.




고비를 겪으며 문을 닫게 된 보호소가 생겼다. 남은 개들은 20여 마리 남짓이다. 돌볼 사람도 여력도 없는 곳이다. 손을 내밀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못할 일도 아니었다. 과연 그들이 내 손을 잡았을까? 아니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 유기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수의 유기견을 돌보는 일에 심취한 사람들이다. 남보다 나은 사람이어야 하는 이들이다. 유기견이 없는 보호소에서는 할 일이 없다. 아픈 유기견을 돌보거나 혹은 남은 유기견을 입양 보내려는 노력을 위해서는 유기견이 필요하다. 그것도 불쌍한 유기견일수록 환영받는다.


두 번째, 지위를 잃기 싫어한다. 유기견 활동을 위한 채팅방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이미 유기견 활동가가 되어버린다. 놀라울 만큼 떠들어댄다. 사진 몇 장에 풀어내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환심을 사는 일에 중독되었다. 때마다 유기견으로 인한 우울증을 고백하고, 몸져누워 링거 맞는 사진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유기견 활동을 '후원하는 이'와 '후원받는 이'로 구분된 세상으로 이해한다.




추상적인 활동이다. 유기견 활동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쉽게 답하지 못한다. 세계 평화를 기원하지만 방책은 모르는 것과 같다. 후원하는 것도 유기견 활동이고 밤 중에 산을 너머 개 한 마리 훔쳐오는 것도 유기견 활동이다. 남보다 나은 활동이 있을 리 없다. 유기견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는 말도 결국 추상적이다.


답은 없다. 지나가는 길고양이에게 과자 한 봉지 던져주는 것도 답이다. 세상을 등지고 남에게 미친 사람 소리 들어가며 유기견 활동에 뛰어들어도 답이다. 그저 가만히 생각만 하는 것도 답이다. 남보다 올바른 일을 찾는 것은 집념이지만, 남보다 높은 일을 찾는 것은 집착이다. 경계가 모호하지만 집착에 가까울수록 답은 멀어져 갔다.


뾰족하다. 말에 가시가 있는 것처럼 글을 적었다. 세상에 비치는 유기견 활동에 진절머리가 난다. 보이는 것과 실제로 일어나는 일에 차이가 크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대중이 알게 된다면 어떨까? 더 이상 유기견 구조를 명분으로 학대를 멈추라 말하게 될 것이다. 난 단언컨대 확신한다. 동물에게 가장 잔인했던 시대로서 훗날 사람들은 오늘을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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