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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시누 Apr 19. 2017

허황된 말로 포장된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영화 리뷰: 파운더


   존경받는 경영자는 어떤 사람일까? 지난 수년간 우리는 다양한 종류의 경영자를 볼 수 있었다. 사실 우리가 이름을 알 정도라면 대체로 성공한 경영자일 것이다. 하지만 성공한 경영자라고 반드시 존경을 받는 것은 아니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머쥐거나 노동자들의 피를 짜내 성공적 경영을 이룬 사람들은 때때로 여론의 비난을 받기도 한다. 사람들은 경영자가 성공한 방식과 그들의 철학, 그리고 이루고자 하는 목적을 보기 때문이다.


   여기 맥도날드라는 프랜차이즈를 성공시킨 사람이 있다. 영업맨으로 평생을 뛰어다니다 늦은 나이에 대부호가 된 레이 크록. 맥도날드 형제가 개발한 스피디 시스템을 바탕으로 브랜드 가치를 어마무시하게 상승시킨다. 그렇다. 그는 성공한 경영자가 확실하다. 이 성공이 영업맨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든, 혹은 타고난 역량이 뒤늦게 발휘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경영자는 흔치않다. 그렇다면 그는 존경받아 마땅한 경영자인가? 이 질문의 갈림길에서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난다.



   레이 크록은 끈기를 가지고 밀어붙이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신념이 있다. 매일 끈기에 대한 레코드를 들으며 자신을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그는 아직까지 자신의 노력이 빛을 보지 못한 것이라고 믿으며 새로운 아이템에 도전하고, 또 도전한다. 하지만 그의 사업은 번번이 실패하고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비웃음이나 당하는 처지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맥과 딕이 운영하는 맥도날드라는 음식점을 방문하게 되고 이 곳에 길이 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그는 어렵사리 맥도날드 형제를 설득해 프랜차이즈에 돌입하고 엄청난 속도로 사업을 확장한다.


   하지만 여기서 의견 충돌이 발생한다. 맥과 딕은 자신들의 사업이 가족적이며 공동체 윤리에 부합하는 회사로 성장하길 바란다. 그렇기에 그들의 패밀리 네임인 ‘맥도날드’로 상호명을 정한 것이다. 하지만 레이가 추구하는 것은 단순한 성공이었다. 끈기와 도전정신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철학이었을지언정 그에게는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적이 없었다. 그의 철학은 방법론적인 것에 불과했고 가치가 부재했다. 그렇기에 레이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어떠한 방법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긴 인생에서 이슬처럼 나타난 한줌의 성공은 그를 도취하게 만든다. 그는 어떻게든 이 존경과 성취의 단맛을 이어가고자 한다. 맥도날드 형제는 좋은 아이디어 제공자였지만 이젠 걸림돌이 되어 버렸다. 그는 자신만의 팀을 새롭게 꾸리고 맥도날드를 탈취할 방법을 모색한다. 사전에 작성한 계약을 피해 요리조리 편법을 써 실질적으로 맥도날드를 장악한 레이 크록. 그는 마침내 맥도날드를 빼앗고 창립자(Founder)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대중들 앞에 서서 자신 있게 말한다. 자신의 끈기와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이렇게 성공한 경영자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누구든 그를 따르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보다 더 끈기 있고 도전 정신이 강했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맥도날드 형제다. 돌이켜보면 그들은 수많은 실패와 도전을 밑거름으로 삼고 성장해왔다. 영화관부터 음식점에 이르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사업을 이어나갔다. 창의력을 발휘해 기존 드라이브 쓰루 음식점의 문제를 개선했고 테니스 코트에 분필로 선을 그어대며 스피디 시스템을 완성했다. 감독은 극 초반에 맥도날드 형제의 성공신화를 꽤 긴 시간을 투자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들의 도전 밑에 깔린 기업 철학까지 설명해준다. 영화의 주인공 레이 크록보다 더 그럴싸한 성장 과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레이 크록이 추구하는 끈기와 도전이라는 가치는 그의 입장에서는 실패하고 답답한 인물들이었던 맥도날드 형제와 완벽하게 부합한다.      



   반면 레이 크록은 경영은 우유가 들어가지 않은 밀크셰이크와 같다. 그는 냉동고 운영비를 아끼기 위해 물에 가루를 타 밀크셰이크라 판매한다. 우유가 들어가지 않는 밀크셰이크. 성공이라는 번지르르한 외형에만 신경을 쓰고 핵심이 되어야 할 가치를 잃은 레이 크록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맥도날드가 친가족적인, 공동체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친가족적이라는 이름을 내건 회사의 설립자는 자신을 오랜 세월 지지해준 아내를 버리고 남편이 있는 여성에게 접근해 자신과 상대의 가족을 모두 파멸시킨다. 열정이 있는 여자가 필요했다는 게 그의 변인데, 결국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렇기에 맥도날드라는 상호명도 의미가 퇴색된다. 맥도날드 형제는 가게의 이름에 자신의 패밀리 네임을 넣어 그 가치를 중요시했다. 하지만 레이 크록은 말미에 화장실에서 맥도날드라는 이름이 성공할 수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꼭 가지고 싶었다고 밝힌다. 그에게 맥도날드라는 이름은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고 보편적인 미국 가치에 부합하는 ‘브랜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결국 이 브랜드는 앙꼬 없는 찐빵으로 변해버렸다.


   이 영화는 성공한 경영자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성공이 얼마나 텅 빈 것인지도 보여준다. 그는 성공한 경영자였지만 존경받을만한 경영자는 아니다. 영화의 제목인 “Founder(설립자)”도 사실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인가. 그가 맥도날드라는 브랜드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맞지만 본인을 설립자라고 칭하는 그 뻔뻔함이 놀라울 뿐이다. 맥도날드 형제가 없는 맥도날드. 가족이 파괴된 친가족적 기업. 우유가 없는 밀크셰이크. 골든 아치를 중얼거리며 황금을 쫓던 아메리칸 드림의 부끄러운 민낯. 이게 감독이 말하고자 한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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