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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극곰 Nov 10. 2024

슬픈 선택

첫 번째 이별

"좋아." 우리는 손가락을 걸고 내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키캐와 크리스티앙이 마련해 준 아늑한 침대는 포근했지만 마음 한편이 무거워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아란, 일어나."

분명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었던 것 같았는데 어느새 잠이 들었나 보다. 크리스티앙이 나를 부드럽게 흔들며 깨웠다. 그의 목소리에 눈을 뜨고 미안한 마음에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굿모닝 크리스티앙, 키캐."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하는데 키캐가 물었다.

"아란, 오늘 정말 멜리데까지 갈거야?"

"응.. 가고 싶어."


 나는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두 사람 덕분에 순례라기보다 행복한 여행을 하고 있것 같아 감사했지만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들이 그리운 마음도 있었다. 크리스티앙과 키캐는 산티아고에 도착한 다음에도 만날 수 있지만 다른 친구를 만날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니 몸도 가벼워 45킬로 걷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이미 걸었던 전적도 있으니까.


 우리 셋은 알베르게 1층에 있는 카페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었다. 미안한 마음에 두 사람의 눈치를 계속 살폈으나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처럼 나를 대해주었다. 그 모습이 오히려 나를 더 미안하게 만들었다.


 오늘은 크리스티앙과 키캐가 같이 걷고 나는 처음 보는 스페인 출신 순례자를 만나 같이 걷게 되었다. 크리스티앙은 키캐랑 걸으면서도 가끔 뒤를 돌아보며 나를 살폈다. 내가 너무 뒤처질 때면 걸음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묻는다.


"아란, 괜찮아? 어디 아파?"  

"노. 비엔, 이 투?(난 괜찮아. 너는?)"


 엎치락 뒤치락 걷다가 '팔라스레이'에 다다를 즈음 키캐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한번 나에게 물었다.


"아란, 우리는 멜리데까지 걷지 않을 거야. 너는 정말 멜리데까지 갈 거야?"


"응. 가고 싶어." 두 사람은 내 대답을 듣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리스티앙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나에게 말했다.


"좋아. 근데 아란, 지금 이 상태로는 무리야. 우리는 정말 네가 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오늘 꼭 가야겠다면 버스를 타고 가야해."


 그렇게 우리는 팔라스데이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키캐는 마치 물가에 내놓은 아이를 걱정하듯 말했다.


"아란, 우리가 체크인하는 동안 잠깐 기다려줄래? 짐만 놓고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줄게."


 두 사람이 체크인을 하는 동안 나는 1층 로비에서 두 사람을 기다렸다. 그 순간은 그저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갑자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흘러나왔다. 다시 만날 수 있고 완전한 이별이 아니기에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다른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이 친구들을 떠난다는 게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로비에 앉아있는데 두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크리스티앙이 벌겋게 충혈된 내 얼굴을 살펴보며 물었다.


"아란, 왓 해픈?"


 그의 짧은 한마디에 나는 참지 못하고 엉엉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갑작스러운 내 눈물에 당황하며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내 옆에 앉아 내 어깨를 감싸며 부드럽게 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  콜라를 마시며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두 사람의 따스한 눈을 바보니 자꾸 눈물이 흘렀다. 미안함과 고마움의 눈물이 계속 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두 사람도 내 마음을 알고 있었나 보다.


영어를 못하는 크리스가 키캐한테 스페인어로 무언가를 묻더니 이내 나에게 말했다.


"아란, 스테이, 스테이.. Are you Sure?"


 크리스티앙은 내 손을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해서 말했다. 고개를 들어 그를 보니 그의 하늘색 눈동자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키캐에게 통역을 요청했고, 말하는 키캐도, 듣고 있는 나도, 나를 바라보는 크리스티앙도 모두 울고 있었다.


"아란, 나는 우리 셋이 산티아고에 꼭 함께 들어가고 싶어. 꼭 가야만 하는 거야? 우리랑 같이 가면 안 되는 거야? 가지 마. 아란."


 크리스티앙의 하늘색 눈동자에서 흐르는 눈물을 보며 마음이 아려왔다. 하지만 두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하다는 말뿐이었다. 우리는 눈물의 이별을 하고 두 사람은 버스정류장까지 나를 바래다주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엉켜 아무 말도 할 수 없던 나에게 키캐는 조용히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아란, 너와 함께 걷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 너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함께 했던 시간 잊지 않을게. 너의 인생의 한 조각을 우리에게 나눠줘서 정말 고마워."


 키캐와 버스정류장 계단에 앉아 우리는 다시 한번 서로를 꼭 껴안고 울었다. 크리스티앙은 잠시 사라졌다 저 멀리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늘 그렇듯이 그는 능청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아란, 하와유?"

"SAD"

"노 새드, 비 해피. 아이 원 츄 유 아 해피."



 키캐에게 배운 영어를 또박또박 말하는 그의 모습이 내 마음을 사르르 녹였다. 버스가 도착하자 우리는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크리스티앙은 버스기사에게 나의 목적지를 전해주었고 내 손목에는 작은 하얀봉지 하나를 걸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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