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백일이 갓 지난 우재와 함께 싱가포르에 돌아오는 날에 맞추어 라니는 우리 집에서 일을 시작하기로 했다.
2018년 싱가포르에 처음 넘어갈 때 살고 있던 집에서 우리는 계속 살고 있었기 때문에 늘어나는 식구와 함께 공간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처음 넘어갈 때만 해도 나 혼자였고, 낮 동안 회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내게 집값 비싼 싱가포르에서 방 두 개는 사치였다. 결혼을 하게 되면서는 둘이 살기에 딱 좋은 공간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 아기와 이모까지 네 식구가 되었으니 공간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원래도 비쌌던 싱가포르의 집값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원래 살던 집의 비슷한 크기에 계속 사는 데에도 오히려 두 배 가까이 월세를 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방을 하나 더 늘리는 것은 쉽지 않았을뿐더러, 애초에 빈 집 자체가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았다.
그럼 라니 이모는 어디에서 지내야 할까? 대부분의 싱가포르 집에는 대피소 기능을 갖춘 작은 창고(쉘터)가 하나 딸려 있다. 지금은 크게 와닿지 않을지 모르나 말레이시아와의 군사적 긴장이 상당했던 시기에 집집마다 의무적으로 갖추게 된 것으로 보인다. 두꺼운 철문에 단단한 벽을 가진 쉘터가 우리 집에도 부엌 안에 있었는데 그때까지는 짐을 쌓아두는 창고로 사용했다. 작은 환기구만 하나 있을 뿐 창문 하나 없으며 싱글 침대 하나가 들어가면 꽉 차는 크기의 공간을 사람이 거주하는 방으로 쓸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도 안에는 전등과 콘센트가 있었고, 거실과 단절되어 있는 부엌을 쉘터문만 열면 같은 공간처럼 쓸 수 있었으며, 부엌은 밝은 빛이 들어오는 발코니와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곳을 잘 청소하고 꾸며 라니의 공간으로 주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천장이 높은 쉘터의 공간은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이 층침대를 놓아서 위에는 수납장처럼 쓰자는 아이디어도 아내가 알려주었다.
MOM의 교육 내용 중에는 헬퍼가 거주할 수 있는 숙소의 조건에 대해서도 안내되어 있었다. 그 최소한의 조건보다는 (정말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보호와 비를 피하는 수준의) 그래도 제법 나은 게 아닐까 스스로 합리화했다. 헬퍼를 고용하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정식 침실을 헬퍼에게 제공하지는 않는다는 주위의 이야기도 있었다.
라니 이모를 맞이하기 전 창고를 싹 비우고 열심히 청소를 했다. 조립식 이층 침대를 사고 벽을 깨끗하게 칠할 페인트도 준비해 두었다. 땀 흘려 짐을 옮기고 청소를 하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내가 거기에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싶은 이중성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침대의 조립은 이모가 오고 나면 하기로 했다.
대망의 입주일, 나는 다시 예의 중개소에 가서 라니를 처음 만났다. 작은 캐리어 하나를 들고 의자에 앉아있던 라니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 옆에는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이 몇 명 더 앉아있었다. 미스 리는 나와 함께 남은 서류 작업을 마치는 동안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계속 헬퍼들의 기강을 잡았다. 더욱 가관은 내 옆에 이모를 앉혀 놓고 여기서 남자친구 만들지 마라, 임신하면 안 된다, 낮 동안 핸드폰 쓰지 마라, 필리핀에 있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계약 기간에는 돌아갈 수 없다 등…계약 조건 등을 상기시키는 것이었다. 물론 미스 리는 에이전트로서 고용주인 나를 ‘위해’ 일을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복종적인 태도를 내면화시키고 고용주에게 ‘귀찮을’ 문제들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다짐을 받아두는 것이고. 누가 손 붙잡고 싱가포르로 끌고 온 것도 아니고 계약서에 강제로 서명을 시키는 것도 아니니 이런 대화가 필요한 것이라고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나는 조용히 생각하고 있었다. 라니는 말대답 하나 없이 모든 대답을 마치고 계약서에 서명했다. 미스 리에게 남은 수수료를 주고 나는 라니를 데리고 사무실을 나왔다.
당장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러 가기 위해 나와 라니는 어색한 걸음을 옮겼다. 우리가 다른 사무실을 지나갈 때마다 저 친구는 누구랑 가나 쳐다보는 헬퍼들의 호기심과 부러움 어린 눈빛이 잔뜩 꽂혔다. 자신들의 차례는 언제 오는 것일까 싶은 눈으로. 같은 쇼핑몰 안에는 우리와 같은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모든 걸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는 가게가 있었다. 돈은 걱정하지 말고 필요한 걸 다 사라는 내 말에 라니는 가장 값싼 물건들로 정말 최소한의 것들만 집어 들었다. 필요한 게 이게 다가 정말 맞느냐는 내 질문에도 재차 그렇다고 하기에 내가 몇 가지 더 골라 담았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랑 우재와 반가운 첫인사를 나눴다. 그 쇼핑몰에서 나온 것만으로도 라니는 표정이 한결 편안해 보였다. 편하게 씻고 핸드폰도 필요에 따라 편하게 쓰라고 한 뒤 나는 침대 조립을 시작했다. 그 침대 조립은 지금까지 내가 세상에서 해본 가장 어려운 조립이었다. 완성된 침대가 창고 벽으로부터 사방 10센티미터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꽉 차는 크기를 창고 안에 들어가 몇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고 내 몸을 비틀어가며 조립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내게 필요한 연장을 건네주던 라니의 표정이 나는 잊히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침대 조립을 마치고 가지고 온 짐도 다 풀고 부엌과 발코니를 포함한 공간이 제법 구색을 갖추자마자 부지런한 라니 이모는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바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집에 처음부터 있었던 사람처럼 어디를 어떻게 청소해야 할지 알고 있었다. 멀뚱멀뚱 바라보는 우재는 처음 보는 이모를 만나고도 울지 않았다. 원래 잘 울지 않는 아기이기도 했지만.
청소를 마친 라니는 매우 조심스럽고 능숙하게 우재를 품 속에 안아 분유를 먹였다. 우재도 이모의 품속을 거부하지 않고 쏙 안겨 젖병을 빨았다. 이모가 우재에게 준 첫 데데였다.
이전 글 다시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