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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Aug 18. 2021

내부감각훈련과 명상 (3/7)

몸과의 내면소통

정서조절 장애와 만성통증의 극복을 위하여

통증에 대한 추론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은 감각 정보를 통증으로 해석해내는 자동화된 습관이 뇌 작동 방식에 생긴 상황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습관적으로 특정한 감각에 더 집중하고, 건강한 사람이었다면 그냥 흘려버리거나 무시했을 그 특정한 감각을 통증으로 해석해내는 예측 오류의 메카니즘을 발달시켜놓은 상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예측오류"는 의식이라는 상위 레벨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하위 레벨인 뉴론 단위에서 이상이 생긴 것이다. 추론 시스템에 이상이 생겼다고 해서 우리가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 정확한 "추론"을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측오류의 습관이라는 것은 신경 시스템 자체에 장착된 것이기에 특정한 의도나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 바꿀 수 있는 차원의 습관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개입이나 변화의 노력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다만 예측 오류는 직접적이고도 의도적인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몸의 신경시스템에 자동적으로 작동되고 있는 추론 시스템의 변화는 간접적인 방식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정서조절 장애나 만성 통증은 지금 여기서 환자의 신경시스템의 추론 시스템의 이상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는 일이다. 이것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봄의 생성질서의 한 형태다. 분명 원인이나 계기는 있었겠지만, 과거의 그 원인이나 계기가 지금의 모든 현상을 다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과거의 원인이나 계기를 정확히 밝혀내는 것은 현재의 문제 해결을 위해 어느 정도 유용한 정보는 될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해결책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지금 여기서 벌어지는 문제의 해결책은 지금 여기서 찾아야 한다. 

바이러스가 원인이 되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앓게 되지만, 앓는 내용의 본질은 내 몸의 면역시스템이 내 몸의 여러 장기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 자체가 환자를 아프게 하고 죽게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감염에 대한 내 몸의 면역시스템이 지금 현재 내 몸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정서조절 장애나 만성 통증이 지금 진행되고 있다면 그것의 계기가 무엇이었든 간에 지금 그러한 통증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환자의 신경시스템이 무의미한 감각정보들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여 부정적 정서나 통증으로 해석해냄으로써 환자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지금 이 현상을 완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핵심은 무의미한 감각정보에 대해 과도한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을 확대 해석하는 신경시스템의 추론 "습관"을 바꾸도록 하는데 있다. 모든 내부감각정보에 너무 많은 중요성을 부여하는 신경시스템의 습관을 바꾸는 것인데, 말하자면 감각정보들의 볼륨을 약화(attenuate)시키고 잠잠하게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프리스턴은 이것을 주의력의 재배치(redeployment of attention)라고 부른다(Friston, 2017a). 통증이나 부정적 정서와 관련된다고 해석할 수도 있는 쓸데없는 감각정보에 대한 주의를 거둬들이고 다른 곳으로 분산시켜서 평소 알아차리지 못했던 몸 이곳 저곳에서 올라오는 감각정보에 주의를 보내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늘 아픈 만성통증 환자에게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이 신경시스템의 주의력 재배치다. 다시 한번 강조해두지만 여기서의 "주의력(attention)"은 우리의 의식 차원에서의 주의력이 아니다. 내가 어디에 주의를 집중해야겠다는 "의도"를 통해 바꿀수있는 주의력이 아니다. 의식이나 의도보다는 더 아래 차원에서의 문제인 것이다. 즉 내가 지닌 해석과 추론의 습관이라기보다는 나의 뇌와 몸의 신경계에서 나의 의식과는 상관없이 작동하는 자동적인 능동적 추론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뜻이다. 프리스턴이 말하는 주의력의 재배치는 우리가 굳게 마음 먹는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인 방식의 훈련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의력 재배치 훈련의 대표적인 것이 전통적인 사띠 명상이다. 흔히 알아차림(mindful awareness) 훈련이라 불리우는 사띠 명상은 지금 여기서 내 몸이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내외부 감각 정보에 대해 실시간으로 최대한의 주의를 주는 훈련이다. 내 몸의 감각 정보를 실시간으로 느끼는데 있어서 가장 효율적인 가이드가 바로 호흡이다. 호흡은 늘 지금 여기서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또한 호흡에 집중한다는 것은 결국 호흡이라는 행위가 내 몸에 어떠한 느낌이나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면밀히 마음의 눈으로 관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내부감각(interoception)에 관한 능동적 추론 모델은 내부감각 자료가 감정과 자아의식을 만들어내는 근원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웬 등은 신경계와 관련된 여러가지 질환이나 통증의 문제뿐만아니라 몸과 마음의 여러가지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내부감각에 대한 뇌의 능동적 추론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우선적으로 고려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Owens et al., 2018). 물론 내부감각 예측 오류는 상방향으로 올라오는 자극 정보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는 단편적인 문제만을 지칭하지는 않는다. 불안이나 우울 등의 정서장애와 만성통증은 자동적이고, 메타인지적이며 운동 항상성과 관련된 알로스태시스 시스템 전반의 작동 방식과 폭넓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만성 통증 환자 스스로가 이렇게 하면 나으리라고 굳게 믿는 행동을 하는 것은 통증 완화에 많은 도움이 된다. 약에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고 먹는다든지 혹은 효과가 있으리라고 믿는 "치료행위의 의례(ritual)"를 치루게 되면 뇌는 약간의 내부 감각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것을 "통증의 완화"라고 해석하게 되며 따라서 고통이 사라지게 된다 (Von Mohr & Fotopoulou, 2018). 환자의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몸으로부터 올라오는 내부 감각 자료를 해석해내는 내부생성모델이다. 어떠한 의례나 치료행위 혹은 약물복용 등을 통해서 내부감각정보를 통증이 아닌 것으로 해석해낼 수 있는 새로운 예측 모델을 심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 예컨대 트라우마나 우울증 불안장애가 있는 환자의 경우에는 치료행위 자체에서 유발되는 약간의 통증관련 감각이 오히려 과거의 고통과 연관된 기존의 사전 믿음을 더 작동시킬 위험성도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여러가지 새로운 "생성모델"을 테스트해보는 것이 필요하다. 예컨대 두려움이나 공포반응과 관련된 근육의 긴장이 주는 감각 정보는 통증의 해석을 촉발시킬 가능성이 높으므로 근육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행위가 유용할 것이다. 

결국 문제는 뇌에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새로운 예측 모델을 심어줄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감각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 감각정보를 건강한 방향으로 해석하고 예측해낼 수 있는 해석의 틀(interpretive guidelines) 혹은 맥락적 정보(contextual information)제공하는 것이 유용할 것이다(Von Mohr & Fotopoulou, 2018). 보다 구체적으로는 지금 하는 운동 명상이나 움직임 처방이 안전한 것이며, 현재 조금 힘들더라도 꾸준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는 과정에 대한 믿음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불안장애, 공황장애, 우울증 혹은 트라우마 등의 정서조절 장애 역시 만성통증과 마찬가지로 감각정보에 대한 추론과정에서의 오류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감정에 대한 인지는 우리 몸 내부로부터 올라오는 여러가지 감각정보에 대한 추론의 결과다. 즉 내부감각에 의한 예측적 추론의 결과가 감정이며, 특정한 감정을 경험한다는 것은 곧 내부감각의 원인에 대한 뇌의 추론 결과다(Seth, 2013). 이 추론 과정에 문제가 생겨 노이즈에 불과한 별 의미없는 감각 정보에 대해서도 이를 여러가지 부정적 정서로 받아들이는 상태가 곧 감정 조절 장애다. 

정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건강하다는 것은 내부감각이나 고유감각을 포함한 여러가지 감각정보와 그것이 유발하는 다양한 예측 오류 정보에 대해 제대로 가중치를 배분하고 중요한 것에 선택적 주의를 둘 수 있다는 뜻이다. 건강하지 못한 병적인 상태는 수 많은 감각 정보 중에서 의미있는 중요한 것과 노이즈에 불과한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해낼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특히 중요하지도 않고 의미도 없는 감각정보에 대해 과도한 가중치의 주의를 두는 것이 문제다. 

정서조절장애나 만성통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동적 추론 과정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특정한 감각 정보를 저절로 일정한 방식으로 (통증이나 불안이나 트라우마로) 자동해석해내는 시스템에 변화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탑다운 프로세스인 예측오류의 피드백을 주는 에이전트의 활동 방식과 해석의 패턴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에이전트를 무력화시키고 새로운 에이전트를 일시적으로나마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돌이켜보는 과정 즉 자기참조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최면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최면은 해석을 하는 내부상태의 에이전트가 외부에서 들려오는 암시(최면술사의 말)가 되는 상태다. 기존의 에이전트가 일시적으로 무력화되어 최면술사의 암시를 그대로 내부에이전트의 스토리텔링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이 사물을 바라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몸을 통해서 올라오는 감각정보 자체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감각정보에 대한 능동적 추론 과정의 결과로서의 해석에 의한 것이다. 따라서 "덥다"라는 암시를 주면 최면에 걸린 사람들은 실제로 땀을 뻘뻘흘리면서 더워하게 되고 춥다라고 하면 한여름에도 온 몸을 부들부들떨면서 추워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에이전트의 강한 힘은 플라시보 효과를 통해서도 알수 있다. 흔히 자기암시로 알려진 이러한 현상은 전형적인 내면소통의 한 형태다. 


감정 인지와 내부감각

우리는 지금까지 정서 조절 장애나 만성통증은 기본적으로 내부감각 신호에 대한 추론과정의 오류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살펴보았다. 불안장애, 우울증, 트라우마(PTSD) 등으로 고통을 겪는 환자들 뿐만아니라, 일상 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스트레스나 분노, 무기력, 다양한 형태의 통증 등으로 불편을 겪는 일반인들도 모두 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내부감각에 관한 추론과정에서의 문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주의해야할 중요한 사실은 만성통증뿐만 아니라 정서의 문제 역시 "몸"에 관한 증상이라는 것이다. 분노, 짜증, 공격성, 불안, 공포, 우울, 좌절, 무력감, 역겨움 등의 "감정"은 몸이 내부감각을 통해  뇌로 올려보내는 다양한  감각신호를 바탕으로 내부모델이 생산해내는 것이다. 이 점에서 통증과 감정의 기본적 메카니즘은 동일하다. 감정조절 장애의 원천은 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마음이 아파서 몸이 아픈 것보다는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픈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만약 허리가 아프다면 우리는 허리를 주무르거나 펴거나 하여 몸을 다스리려 한다. 그러나 불안이나 우울로 시달리는 경우에는 그러한 감정의 근본 원인이 되는 몸을 다스리려 하지 않는다. 그냥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이나 의도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려는 오류를 범한다. 감정을 마치 생각의 일종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다. 아직 데카르트적인 심신이원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허리 통증이 사라지지 않듯이 생각을 바꾼다고 해서 불안이나 우울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생각이나 의도를 통해서는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다.

물론 불안장애나 우울증에 시달리는 경우에는 움직이기조차 쉽지 않다. 그래도 움직여야 한다. 간단한 스트레칭이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것마저 어렵다면 바디워크라도 받아서 내몸에 무언가 새로운 내부감각이나 고유감각을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 마음이 아플때에는 무언가 몸을 통한 해결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근본 원칙이고 기본적이 방향이 되어야 한다. 

두려움이나 분노를 느끼는 경우에는 그러한 감정의 원인이 되는 내부감각 신호를 올려보내는 몸을 다스려야 한다. 배럿 교수의 말처럼 부정적 정서의 기본은 두려움이다. 두려움에서 분노가 나오고, 좌절감이 나오고, 무기력감이 생겨난다. 신체의 위협이 되는 상황이라고 판단되었을 때 편도체가 활성화된다. 물론 여기서 편도체의 활성화라는 것은 일종의 상징적인 표현이다. 편도체는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복잡한 기관이고, 기억이나 주의력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다. 행복감을 느낄 때 활성화되는 편도체 부위도 있다. 그러나 편도체는 일차적으로 위기 상황에서 우리 몸 전체에 알람을 울리는 기능을 담당하는 존재다. 

생존에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편도체는 급격하게 활성화되며 이 때 즉각적으로 다양한 신체 기관들이 반응하게 된다. 이 작용은 편도체와 몸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주로 대뇌 피질의 작용에 의해서 생겨나는 인간의 의식이 관여하거나 개입할 수 있는 작용이 아니다. 편도체의 활성화 자체가 우리 의식에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편도체의 활성화 자체는 인간이 직접적으로 인지하지 못한다. 다만 편도체 활성화에 따라서 몸의 여러 부위들이 상태가 변화하게 되고 그러한 변화들의 결과가 내부감각 신호를 통해 의식을 관장하는 대뇌 피질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우리의 의식은 내부감각 신호들을 해석하고 능동적으로 추론해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편도체의 활성화와 그에 따른 몸의 변화들 자체가 감정인 것이 아니다. 그러한 변화들이 가져오는 내부감각 신호들을 의식이 종합적으로 "해석"하고 추론해서 일정한 감정으로 받아들이는 것 뿐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될 때 흔히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는 다음과 같다. 우선 심장박동과 호흡이 불규칙적으로 변하고 거칠어진다. 턱, 얼굴, 어깨, 목 등의 근육들의 수축되고 소화기와 순환기 전체에 긴장이 증가한다. 이러한 변화는 알로스태시스의 교란을 가져오게 된다. 뇌의 예측모델과 몸이 올려보내는 내부감각 데이터 사이에 불균형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정상인의 뇌는 이러한 불균형에 대해 약간의 불쾌함을 느끼거나 혹은 이러한 내부감각 신호를 일종의 노이즈로 처리하여 무시하게 된다. 그 결과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별다른 감정의 동요 없이 평온하게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감정조절능력이 높고 마음근력이 강한 상태다. 

감정조절능력이 약한 경우에는 내부감각이 올려 보내는 약간의 불균형의 신호에 대해서도 그것을 과도하게 불쾌한 감정으로 해석하거나 혹은 통증으로 느끼게 된다. 대부분의 불안장애나 우울증은 그래서 늘 "신체증상"이라는 불리우는 다양한 통증이나 신체 기능 장애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다. 


정서조절 능력과 마음근력 

마음근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편도체를 안정화시키고 전전두피질을 활성화시키는 훈련을 해야한다. 편도체는 우리가 "편도체를 안정화시켜야지"라는 의도를 갖고 노력한다고 해서 조절되지 않는다. 내 몸의 일부이지만 내 뜻대로 통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 몸의 많은 기능들은 의도와는 관계없이 주어진 프로그램대로 저절로 작동한다. 그러한 자율신경계의 일부가 편도체다. 어떤 특정한 생각을 하거나 굳게 마음 먹고 노력한다고 해서 편도체를 직접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편도체를 안정화시키는 것은, 즉 부정적 정서를 가라앉히는 것은, 의식적인 생각이나 결심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편도체를 포함하는 변연계는 우리의 의식 저 밑바닥에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자동시스템이기 때문이다. 

편도체를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은 간접적인 방법 뿐이다. 편도체가 활성화되었을 때의 몸 상태와는 반대되는 상태로 만들어서 뇌에 긴장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신호를 주어야 한다. 편도체가 활성화되면 두려움이나 분노 등의 부정적 정서가 유발되고 이에 따라 몸 여기 저기의 근육이 수축되기 시작한다. 특히 이를 악물때 사용되는 턱 근육, 얼굴 표정 근육, 목과 어깨 부위의 승모근, 복부 등에 긴장이 발생하고 호흡은 불규칙해진다. 한마디로 이를 악물고 어깨를 잔뜩 움추린 상태로 거칠게 호흡하는 것이 편도체가 활성화된 전형적인 상태다. 이때 활성화되는 부위들이 주로 뇌신경계와 관련되어 있으며, 교감신경계도 활성화되어 호흡도 가빠지고 심장 박동에도 불규칙한 변화가 온다. 우리가 의도를 갖고 편도체를 직접적으로 가라앉힐 수는 없지만 의도적으로 턱이나 어깨 근육의 긴장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수 는 있다. 얼굴 근육의 긴장도 풀고 표정도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 호흡도 깊고 천천히 쉴 수도 있다. 이처럼 몸을 이완시키면 편도체도 그에 따라 어느정도 안정화된다. 즉 뇌신경계와 관련된 부위들을 의도적으로 이완시킴으로써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 우리가 의도적인 방법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통로다.

분노나 두려움이 발생하면, 심장 박동이 빨라질뿐만아니라 매우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한다. 즉 심박변이도가 급속히 증가한다. 심장 박동에 변화가 오면 우리의 뇌는 두려움을 느낀다. 반대로 두려움을 느껴도 심장박동에 변화가 온다. 불안감과 심장박동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하나의 현상이다. 지속적인 불안감이 계속되면서 심장박동에 변화가 오는 것이 불안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불안장애의 하나인 공황발작이 일어나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마치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할때처럼 심박수가 최고조로 빨라지기도 한다. 공황발작을 겪는 사람들은 자신의 심장에 이상이 생겼다고 확신하게 되며 곧 심장이 멎을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공포감에 휩싸이게 된다. 불안장애를 겪는 환자에게 공통적으로 처방되는 기본적인 약이 바로 심장을 천천히 뛰게하는 일종의 심장약이다. 심장을 통제해서 불안감을 잠재우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심장 박동에 대해 내 뜻대로 개입할 수가 없다. 스스로 자기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거나 규칙적으로 뛰게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심장박동은 자율신경계에서 통제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내장운동도 마찬가지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의 장은 꾸준히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장운동에 의도적으로 직접 개입할 수는 없다. 개입은 커녕 장이 지금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조차 느끼기 힘들다. 장 역시 자율신경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편도체를 안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이러한 자율신경계에 어떻게 해서든 개입을 해야한다. 

우리 몸에는 자율신경계에 의해서 철저히 지배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의식적인 개입이 가능한 기능이 딱 하나 있다. 호흡이다. 호흡은 심장박동이나 장운동처럼 우리가 의식하지 않아도 잠을 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저절로 일어나는 기능이다. 자율신경계의 지배를 받아서 심장박동처럼 필요에 따라 저절로 빨라지기도 하고 느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심장박동과는 달리 의식적인 개입이 가능하다. 숨은 잠시 멈출수도 있고, 크게 내쉬거나 들이쉴 수도 있다. 우리 몸의 기능중에서 완벽하게 자율신경계에 의해 지배를 받으면서도 또 동시에 의도적으로 통제가 가능한 기능은 호흡 밖에 없다. 호흡은 자율신경계에 관여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호흡은 우리의 마음 저 깊은 곳, 저 무의식의 심연으로 내려갈 수 유일한 통로라 할 수 있다. 

지금 한 번 숨을 크게 들여 마셨다 천천히 내쉬어 보라. 이 단 한번의 호흡만으로도 당신의 감정 상태는 어느 정도 차분해진다. 단 한번의 깊은 호흡만으로도 편도체에는 변화가 생긴다. 그래서 인류 역사에서 마음을 다루는 대부분의 종교나 스포츠 혹은 심신 단련에는 호흡이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호흡하면서 턱과 얼굴, 목과 어깨, 복부 등의 근육의 긴장을 완화하면 편도체를 안정화시킬 수 있다. 부정적 정서는 이처럼 몸을 통해서 조절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편도체 안정화 훈련은 나의 몸 상태를 알아차리고 내 몸의 목소리를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의 의식은 보통 외부적인 사물과 사건으로 계속 향하게 마련이다. 그 의식의 방향을 180도 되돌려서 나의 내면으로 가져오는 것이 내면소통의 출발인데, 편도체 안정화는 우선 나의 의식과 의도를 내 몸으로 되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 몸이 나에게 주는 여러가지 감각을 느끼고 어디가 긴장되고 이완되었는지를 알아차리는 것과 지속적으로 계속되는 호흡이 내 몸에 가져오는 변화와 느낌들에 계속 집중하는 것이 바로 내 몸과의 내면소통이다. 

한편 전전두피질을 활성화는 의식적으로 특정한 생각을 하는 등의 직접적인 노력을 통해 가능하다. 우선 나의 생각이나 감정을 살펴보고 알아차리는 자기참조과정을 하면 mPFC 중심의 디폴트모드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또 나에 타인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되면 역시 전전두피질 중심의 다양한 뉴럴 네트워크가 활성화된다. 이것이 곧 내 마음과의 내면소통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한 부정적이고도 강박적인 사고를 긍정적인 스토리텔링의 습관으로 대체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음 근력이 약한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마음 속으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하한다.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강박적으로 비난, 비하, 혐오의 내면적인 스토리텔링을 하게 된다. 이것을 긍정적인 용서, 수용, 연민, 감사, 존중, 자애 등의 긍정인 스토리텔링의 습관으로 바꾸는 것이 마음근력 훈련의 핵심 사항이다. 

마음근력 훈련을 위해서는 편도체 안정화를 위해 몸과의 내면소통이 필요하고, 전전두피질 활성화를 위해서는 마음과의 내면소통이 필요하다. 뇌 과학자들이 최근 명상의 효과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갖고 수많은 연구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이유는 전통적인 명상 수행 방법들이 편도체 안정화와 전전두피질 활성화를 위한 훈련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잘 발전시켜 왔기 때문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보자면 다양한 명상 수행들은 특정한 종교적 체험이나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뇌과학적 측면에서 보자면 명상수행은 마음근력 강화를 위한 신경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매우 효과적인 훈련법들이다.  

전통적인 명상 수행의 핵심은 지금 여기서 경험하고 있는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감각, 나의 움직임 등을 실시간으로 알아차리는 데 있다. 지속적이고도 구체적인 자기참조과정이 곧 명상 수행이다. 이러한 알아차림의 본질은 배경자아가 활동자아의 다양한 측면을 알아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배경자아에 대한 인식이야말로 가장 깊은 자기참조과정이므로 알아차림 훈련을 하면 내측전전두피질 네트워크가 활성화되고 편도체는 안정화된다. 반대로 편도체가 활성화되고 내측전전두피질 네트워크의 기능이 저하된 상태에서는 알아차림을 하기 힘들다. 따라서 마음근력 훈련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몸에 대한 의식의 집중과 근육의 이완을 통해서, 특히 호흡에 대한 집중을 통해서 편도체를 우선 가라앉히는 훈련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통적인 명상 수행 방법 중에는 내면소통 훈련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들이 많다. 그 중에서도 뇌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편도체 안정화와 전전두피질 활성화의 효과가 입증된 명상 방법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내면소통 명상이다. 내면소통 명상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우선 명상 자체에 대해 잠시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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