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환 Aug 18. 2021

내부감각훈련과 명상 (4/7)

몸과의 내면소통

명상 - 정서조절 능력 회복을 위한 효과적인 훈련법

내면소통 명상은 어떤 신비로운 경지에 다다르기 위한 특별한 노력도 아니고, 세상을 등지고 비현실적인 자기만의 세계를 추구하는 것은 더욱더 아니다. 내면소통 명상은 마치 운동과도 같다. 꾸준히 운동하는 것이 몸의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명상하는 것은 마음의 건강에 큰 도움이 되며, 나아가 마음근력 향상을 위한 좋은 훈련이 된다. 

우리나라는 명상을 특정한 종교와 결부시켜서 바라보는 선입견이 강해서 여전히 명상을 신비주의적이고도 비과학적인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의 명상이 널리 보급된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한국에서는 명상에 대해 많은 오해와 편견이 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명상 보급은 물론 연구나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뒤쳐져 있다. 종교적인 편견 없이 마치 몸의 건강을 위해서 운동하듯이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명상을 하는 문화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명상 문화가 이제 막 시작되는 시점인듯 하다. 하지만 아직은 요가나 필라테스처럼 누구나 쉽게 어디서나 배우고 일상생활 속에서 실천하기가 힘든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에 대한명상의학회가 창립된 것은 뜻깊은 일이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은 명상이 환자 치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의사들이 명상에 대해 과학적인 연구를 하고 임상 현장에 응용하기 위한 노력이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환자의 치료를 위한 명상 프로그램이 의료보험 지원 대상이 될 수 있도록 과학적인 명상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요가도 마찬가지다. 원래는 종교 수행 방법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종교 활동의 일환으로 요가를 수행한다. 그러나 미국으로 넘어가면서 요가의 일부가 몸의 건강을 위한 스포츠로 바뀐다. 종교적 의미를 벗어버리고 운동 프로그램으로 전환됨으로써 널리 확산된 것이다. 전세계 요가학원에 다니는 사람들을 모두 힌두교도라 할 수는 없다. 하타 요가 전통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여러 동작과 자세들을 현대화하여 새롭게 만든 프로그램들이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요가"인 것이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요가의 특정 동작이나 호흡법들은 특정 종교적 전통에서 가져다 쓴 것이지 그 자체에 어떤 종교적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힌두교가 "호흡"을 종교적 의식에 사용하고 일본 불교가 "걷기"를 종교적 명상으로 사용한다고 해서 우리가 "호흡"이나 "걷기"라는 행위 자체를 모두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는 없다. 호흡이나 걷기 자체에는 어떠한 종교적 의미도 없다. 특정 종교적 전통에서 호흡이나 걷기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해서 종교적 색채를 입힌 것 뿐이다. 

각종 명상 훈련 역시 마찬가지다. 불교 등 여러 종교 전통에서 명상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해서 가져다 쓴 것 뿐이다. 그래서 비슷한 효과를 가져오는 유사한 명상기법들이 여러 종교나 문화에 따라 서로 다른 개념으로 이해되고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하지만 명상은 명상일뿐이다. 종교를 좋아하는 사람은 명상에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면 되고 몸과 마음의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명상의 건강효과를 잘 살펴보면 된다. 종교적인 명상을 마음근력 훈련을 위해 가져다가 사용하자라는 것이기보다는 오히려 수천년동안 여러 종교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어 왔던 명상 훈련들을 과학적인 관점에서 마음근력 향상을 위한 훈련방법으로 가져다 쓰자는 이야기다. 

참고로 "요가"하면 스트레칭이나 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인데, 요가는 명상과 거의 동의어라 보는 것이 타당하다. 요가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특정한 자세(아사나)를 통해 수행하는 것을 하타 요가라고 한다. 전통적인 하타 요가의 일부 동작들이 일종의 스트레칭 운동으로 변형되어서 널리 보급된 것이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가"다. 하타 요가 이외의 대부분의 요가들은 마치 참선하듯이 가부좌 틀고 앉아서 명상하듯이 수행한다. 예컨대 박티 요가는 헌신, 봉사, 연민을 수행의 방법으로 강조한다는 점에서 자애명상에 가깝고, 라자 요가는 스스로를 더 나은 자아 (higher self)로 발전시켜가는 것에 중점을 두는 수행이며, 카르마 요가는 자신의 행위에 집중하는 수행이다. 크리야 요가는 이러한 여러가지 요가들을 다 제외하고 남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순수 의식으로서의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명상 수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요가들에서도 특정한 자세나 움직임이 강조되는 경우도 있으나 이는 보조적인 수단일 뿐이다. 물론 쿤달리니 요가처럼 여러 명상 기법과 다양한 움직임을 통합적으로 적용해서 크리아 요가를 지향하는 요가도 있다. 

세계의 많은 나라에서 이제 명상은 일반인을 위한 마음건강 훈련프로그램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전세계 휴양지의 모든 럭셔리 호텔이나 리조트에서는 거의 반드시라 할 정도로 각종 요가나 명상 프로그램이 제공된다. 서구에서는 명상을 한다고 하면 고학력자와 고소득자의 이미지가 있다. 실리콘 밸리의 IT 기업들은 거의 모두 회사 차원에서 명상을 적극 권유한다.  

명상의 급격한 확산은 조깅 문화와 비교해볼 수도 있다. 일반인들이 헬스장에서 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30-40년 전만 하더라도 일반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규칙적으로 운동해야 한다는 문화는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운동화신고 길거리를 달리는 사람이 있다면 전문적인 운동선수라고 여겨졌지 일반인이 건강을 위해서 조깅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것이 겨우 수십년전의 일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은 운동선수나 하는 일로 생각했다. 모든 사람이 건강을 위해 일상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은 전세계적으로도 수십년이 채 안된 일이다. 나이키 같은 운동화 만드는 회사가 조깅 문화 확산을 위한 적극적인 캠페인을 벌인 것도 달리기의 일상화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요가 문화가 확산이 되면 돈 버는 것은 요가 강사가 아니라 요가복이나 요가 매트를 생산하는 요가관련 용품 생산자다. 조깅문화가 확산되면 돈 버는 것은 러닝 코치가 아니라 운동화 생산자다. 마찬가지로 명상 문화가 확산되면 돈 버는 것은 방석, 매트, 명상복, 앱, 좌종 등 명상 관련 용품 생산자다. 혹은 명상 용품 생산자가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기 시작하면 마치 조깅문화처럼 명상문화도 일반인들에게 널리 확산될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제 다양한 종류의 마음근력 훈련도 널리 퍼지리라 예상한다. 실제로 마음챙김이나 명상 훈련은 서구에서는 이미 널리 확산되기 시작했다. 여전히 한국에는 명상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이 널리 퍼져있긴하지만, 종교적 색채와 신비주의를 걷어내는 순간 급속히 확산되리라 예상한다. 

불교는 명상의 다양한 기법들을 2,500년간 발달시켜 왔다. 19세기 빨리어 경전이 영국 독일 등 서구 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이래, 유럽과 미국은 불교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발전시켰고, 1960년대 이후에는 동남아권의 테라와다 불교 전통의 명상과 인도의 요가 명상이 미국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달라이 라마의 망명 이후에는 티벳 불교도 널리 소개되었다. 수십년전부터 미국과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아시아의 전통적인 명상 수행을 알아차림 명상 (mindfulness meditation)이라는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정신질환자들의 치료뿐만아니라 일반인들의 스트레스 관리 프로그램으로 개발해왔다. 구글스칼라 사이트에서 학술자료 검색을 해보면 "mindfulness"로 검색되는 논문이나 학술자료가 무려 55만 3천건이 나온다. 

전세계적으로 2000년대 이후 명상에 대한 학술 논문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아래 그림 참조). 1970년대부터 마음챙김이나 명상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하는 학자들은 극소수 있었으나 2000년대 중방 이후부터는 명상이 매우 폭넓게 연구되는 주제로 자리매김했다. "Mindfulness"라는 제목의 권위있는 학술지도 2010년에 등장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명상이나 마음챙김에 대한 관심이나 연구의 수준은 아직도 미미하다. 구글트렌드를 비교해봐도 알 수 있듯이, 전세계적으로는 마음챙김에 대한 관심의 수준이 2010년 이후부터 급속히 증가하고 있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오히려 계속 감소하고 있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명상 수행이 아시아의 힌두교와 불교에서 비롯된 전통임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인 명상법과 이론을 배우기 위해 수십년전부터 인도, 동남아, 티벳 등 아시아 각국에서 여러 해를 머물면서 수행하고 연구했다. 전통적인 명상법에서 종교성과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명상 프로그램들을 만들어내어 일반인과 환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다. 그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존 카밧친이 1970년대에 개발한 알아차림 기반 스트레스 감소 (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MBSR) 프로그램이다. MBSR이 크게 성공하자 이를 기반으로 인지치료와 명상을 접목시킨 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도 개발되었다. 존 테스데일, 진델 시겔, 마크 윌리암스 등에 의해 개발된 MBCT 외에도 많은 명상프로그램이 다양한 방식으로 개발되어 특히 정신의학과에서 치료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MBSR과 MBCT 등의 프로그램은 한국어로 번역되어 사용되고 있다. 

MBSR을 개발한 카밧친은 사티 수행 중심의 동남아시아의 테라와다 불교 뿐만아니라 한국과 일본의 대승불교 전통의 명상에까지 두루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특히 70년대에는 미국에 거주하던 우리나라 숭산스님에게 참선을 배우기도 했다. 숭산스님에게서 배운 카밧친이 만든 MBSR을 이제 한국에서 역수입해서 번역하여 사용하기에 이르렀으니 아무래도 뭔가 아쉽기는 하다.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명상은 크게 보아서 동남아 테라와다 불교의 사티 명상, 인도의 요가 (베단타 철학) 기반의 명상, 티벳 불교 명상, 일본의 자젠 (조동종의 좌선) 등이다. 중국이나 한국 불교 전통의 참선이나 화두선은 거의 보급되지 않았다. 테라와다 불교나 티벳 불교 전통이 동북아 불교에 비해 훨씬 더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그 지역 출신의 훌륭한 명상 지도자들이 정치적 이유 등으로 자신의 나라를 떠나서 세계 각국으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다는 이유도 있다. 그에 반해서 동북아의 불교는 적극적인 국제화는 외면한채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기 테두리 안에 안주하면서 현대화, 과학화, 대중화에도 성공하지 못해 마침내 점차 쇠락해가고 있는 듯해서 안타깝다. 이제부터라도 종교적 권위나 신비주의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오랜 세월의 전통을 지닌 우리나의 명상 문화를 과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고 일반인들의 마음건강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발전시키는 움직임이 널리 확산되기를 기대해본다. 수천년된 우리의 명상 수행 전통을 이대로 폐기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특히 IT 기술과 한국의 다양한 수행 전통을 접목시켜서 다양한 디지털 기기와 데이터에 기반한 마음근력 향상 솔루션들을 개발해낼 수만 있다면 전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건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내면소통과 알아차림 명상 (awareness meditation)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보통 스스로가 어떤 내면소통을 하고 있는지를 의식하지도 못한채 살아간다. 내면소통을 통해서 마음근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을 하려면 내가 어떤 내면소통을 하고 있는지를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내면소통 훈련의 핵심이자 첫걸음이다. 지금 나의 내면에서 흘러가고 있는 생각들이 무엇인지,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은 어떠한 것인지, 지금 나의 몸 상태는 어떤지 등등에 대해 알아차리는 것이 곧 알아차림 (awareness)이다. 나의 생각, 감정, 행동 등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이미 살펴보았듯이 일종의 강력한 자기참조과정 (self-referential processing)이며 전전두피질 중심의 네트워크를 활성화시킨다. 

미국에서 명상 1세대라 불리울만한 사람이 감성지능(emotional intelligence)으로 널리 알려진 다니엘 골먼이다. 그는 하버드 대학 심리학 박사이며 박사과정 중에 명상과 요가 심취해서 인도에 다녀오기도 했다. 하버드 대학 심리학과 박사과정의 후배였던 리차드 데이빗슨 역시 명상에 심취했다. 1970년대만 해도 심리학의 주류는 여전히 "행동"만을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뇌는 그저 속을 들여다볼 수 없는 블랙박스로 치부하고 특정한 자극이나 조건에 대해 어떠한 행동 반응을 보이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심리학의 기본이었다. 사실 이러한 학문적 전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0 여년간 심리학은 인간의 심리를 정면으로 연구한 적은 거의 없으며, 주로 "행동"만을 연구대상으로 삼아 온 학문이다. 

명상에 관심이 많았던 리처드 데이빗슨은 인간의 마음과 뇌를 연구주제로 삼겠다고 결심하고 뇌파와 인간의 감정 상태와의 관련성을 살펴보는 실험을 시작한다. 지도교수는 물론 주변에서 모두들 말렸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인간의 감정이나 뇌는 주류 심리학에서 다룰만한 주제가 아니라고 여겼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이빗슨은 뇌파를 이용한 감정에 관한 연구를 계속해서 긍정적 정서가 유발되면 특히 좌측 전전두엽 쪽이 더 활성화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하지만 당시 주류 심리학에서 외면하던 "감정"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갖는 바람에 데이빗슨은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얻고도 메이저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하고 뉴욕 주립대의 자그마한 캠퍼스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판 덕분에 그는 이제 뇌과학분야의 대가가 되었다. 특히 달라이 라마와 꾸준히 교류하면서 1990년대 fMRI 연구 초창기에 티벳 고승들의 뇌를 촬영한 연구로 더 유명해졌다. 데이빗슨은 뉴로사이언스를 이용하여 명상의 효과를 밝히는 연구를 수십년간 지속해온 덕분에 이제는 100명이 넘는 연구원을 거느린, 미국에서도 가장 큰 뉴로사이언스 랩을 운영하는 위스컨신 메디슨의 저명한 뇌과학자가 되었다. 

다니엘 골먼 역시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박사 학위 취득 후에도 명상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시간 강사 등을 하며 명상 연구를 계속 했다. 그러다가 결국 대학 교수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뉴욕타임즈 등에 과학 관련 글을 기고하는 과학 기자가 되어 결국 세계적인 과학 저널리스트가 되었다. 특히 감성지능(EQ)을 다룬 책으로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었다. 그의 감성지능의 핵심 개념들은 모두 오랜 명상 수행 경험의 결과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1970년대에 리치드 데이빗슨이나 다니엘 골먼 보다 조금 더 일찍 요가와 명상 수행을 하고 있었던 것은 MIT에서 분자생물학 박사학위를 마친 존 가밧친이었다. 마침 숭산 스님은 그 당시 하버드대와 MIT가 있던 캠브릿지에서 명상센터를 운영중이었고 카밧친은 여기서 숭산 스님에게 명상을 배우게 된다. 숭산 스님의 명상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던 데이빗슨은 존 카밧친에게 명상을 배우기도 했다.

뛰어난 과학자이면서도 명상에 깊은 조예를 갖고 있었던 또 한 사람은 프란시스코 바렐라다. 칠레 출신으로 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바렐라는 자기 조직화, 체화된 인지. 행위기반 지각(enactive perception) 등의 개념을 통해 생물학의 새로운 관점을 연 천재적인 과학자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명과 인간존재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생물학을 통해 철학을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인지에 몸이 기반이 된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인지과학에 새로운 장을 열었으며, 특히 지각 과정 자체에 행위의 가능성이 전제된다는 "행위기반 지각"을 통해 인공지능의 발전 방향과 관련해서도 깊은 통찰을 주었다. 

바렐라는 불교와 명상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나가르주나(龍樹)의 중관론에 기반하여 생명현상과 인지에 대한 구성적 관점을 제시하였다. 하나의 생명체는 고정된 실체라기보다는 환경의 여러요소들과의 상호작용의 결과로서 스스로 조직화된 것이다. 생명과 그 생명의 환경에는 모두 원래 주어진 고정된 실체가 없으며 오직 다양한 원인들이 인연을 맺어 생명체라는 실체가 구성된다는 관점이다(Varela, Thompson & Rosch, 2016). 바렐라의 생명현상에 대한 기본 이해의 바탕에는 이처럼 나가르주나의 공사상이 깔려 있다. 가히 중관론의 공(空)사상과 12연기론의 생물학적 버전이라 할만하다. 

2001년에 데이빗슨이 있는 위스컨신 매디슨을 달라이 라마가 방문한다. 명상에 대한 과학적 연구 결과 논의하기 위한 행사로 바렐라가 성사시킨 모임이었다. 하지만 MLI에 핵심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이러한 모임을 성사시킨 바렐라 자신은 참여하지 못했다. 간암 말기로 투병중이었기 때문이었다. 파리에 있는 집에서 와병 중인 바렐라는 비디오 화상 통화를 연결하여 달라이 라마와 대담하였고, 이로부터 며칠 뒤 바렐라는 사망했다. 

뉴욕에서 허드슨 강을 끼고 차로 한시간 쯤 북쪽으로 달리면 아름다운 강변에 고풍스러운 수도원 건물이 있다. 원래 카톨릭 신학교였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하여 2003년에 현대식 명상 수행 센터로 변신한 개리슨 인스티튜트다. 2004년 여름에 이곳에서 리차드 데이빗슨과 존 카밧친을 비롯하여 명상을 연구하는 100 여명의 과학자와 대학원생들이 모여서 5박6일간 집중적인 명상 수행과 학술발표를 하는 기념비적인 모임을 최초로 갖는다. 매년 여름 명상을 과학적인 연구 주제로 삼는 세계 각국의 학자들이 매년 모여서 교류하고 명상 수행을 하는 서머리서치 인스티튜트 (Summer Research Institute: SRI)가 시작된 것이다. SRI에서는 매년 유망한 젊은 학자들을 선정해서 명상에 관한 과학적 연구를 위해 바렐라의 이름을 딴 연구 기금을 지원한다.  

나는 2018년에 SRI에 시니어 인베스티게이터(senior investigator)로 참여했다. 세계 39개국에서 온 40명의 학자들과 80명의 대학원생과 함께 5박6일 동안 고풍스러운 수도원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있는 개리슨 인스티튜트에 머물면서 매일 새벽에는 기공 수련과 명상, 일과 시간에는 학술 발표와 토론, 세미나, 저녁에는 요가 클래스와 명상 등 빡빡한 일정의 수행과 학술행사에 참여했다. 하루종일 명상과 묵언 수행을 하는 날도 있었다. 참석한 학자들은 명상 연구가이면서 대부분 오랫동안 명상 수행을 해온 사람들이어서 서로간에 강한 동료 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 설명: 개리슨 인스티튜트의 모습. 카톨릭 신학교의 현판이 여전히 걸려있고 건물 위에는 십자가도 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부처님이 앉아계신다. 내부에는 성당의 스탠인드 글라스가 그대로 있는데 가운데 바닥에는 의자 대신 명상 방석이 쫙 깔려 있다.) 


SRI는 마인드앤라이프 협회 (Mind and Life Institute: MLI)가 후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담 엥겔이라는 사업가는 1987년에 프란시스코 바렐라와 달라이 라마, 리차드 데이빗슨과 다니엘 골먼을 모두 한데 모이게 해서 MLI를 지원하였다. MLI는 명상과 과학을 통합함으로써 모든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번영을 도와주자는 취지로 시작되었다 (Goleman & Davidson, 2017). 매우 대승불교적인 취지를 지닌 명상 협회라 할 수 있다. MLI는 SRI 이외에도 2년에 한번씩 수천명이 참여하는 국제 명상 학술대회를 개최하는등 명상의 과학화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젊은 시절 명상에 심취해 있던 골먼은 자신의 첫 책을 "다양한 명상 경험"이라는 제목으로 1977년에 출간하였다. 후에 제목만 바뀌어서 "명상의 마음"이라는 이름으로 1988년에 재출간된 이 책은 작지만 상당히 야심찬 책이다 (Goleman, 1988). 마치 명상의 모든 것을 간략하게 정리해서 한번에 가르쳐주겠다는 듯한 저자의 젊은 혈기가 느껴진다. 앞부분에서는 불교 명상의 기본 교과서라 할 수 있는 위숫디막가(Visuddhimagga: 청정도론)의 복잡한 내용을 알기 쉽게 핵심 정리해놓고 있다. 그리고는 이어서 힌두교의 박티 명상, 유대교의 카발라 명상, 기독교의 헤시카즘 명상, 이슬람교의 수피 명상, 초월 명상, 파탄잘리의 요가, 인도 전통의 쿤달리니 요가, 티벳 불교 명상, 일본 좌선 등 다양한 명상 전통의 주요 내용과 방법을 잘 정리해놓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명상이 힌두교나 불교 등 특정 종교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여러 문명 속의 거의 모든 종교에서 명상 수행이 공통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것을 보면 명상 자체에 어떤 특정한 종교성이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각 종교에서 명상 수행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형해서 사용해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힌두교의 박티 요가를 살펴보면 대승 불교의 자비 명상과 매우 유사하며, 유대교의 카발라 명상은 한국의 간화선과 통하는 점이 많다. 카발라의 생명의 나무 체계도는 위숫디막가의 선정의 단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카발라 명상의 핵심은 기도문이나 생명의 나무 체계의 한 요소에 온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인 수행법은 흔히 하는 기도문에서 한 단어나 주제를 골라서 거기에만 온 마음과 정신을 다 바치는 집중적 헌신(kavvanah)을 하는 것이다. 마치 간화선에서 화두 하나에 엄청난 집중을 계속 하듯이, 카발라에서도 한 단어나 개념을 골라서 그것에만 헌신적으로 집중한다. 이러한 집중이 계속되면 수행자의 마음 상태는 결국 그 단어를 통해서 그 단어를 넘어서게 된다. 하나의 평범한 단어가 수행자의 마음을 초월적인 상태로 고양시켜주는 도구의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화두의 역할과 매우 비슷하다. 이러한 집중 수행을 하기 위해서는 카발라의 수행자는 우선 일상적인 자기 자신의 활동(Yesod)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수행자는 자신의 에고(eog)를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는 관찰자의 상태(Tiferet)에 도달하여야 한다. 이러한 개념들은 사티 명상 수행의 개념과 매우 유사하다. 결국 이러한 수행의 종착역은 깨달은 사람(Zaddik)이 되는 것이다. 개인적인 자아의 굴레를 벗어나 자유롭고, 평온하고, 오직 신과 함께 존재하는 성인이되는 것이고, 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아라한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깨달은 상태에 도달하게 되면 더 이상 토라를 공부할 필요가 없다. 그 자신이 바로 토라가 되기 때문이다(Goleman, 1988). 깨달음에 관한 개념 역시 불교의 열반과 매우 유사하다. 

위숫디막가는 5세기 경에 스리랑카의 붓다고사가 상좌부 불교의 수행 방법을 정리한 것인데 현대 동남아 중심의 테라와다 불교 수행의 기본적인 텍스트다. 위숫디막가 역시 고타마 사후 천년이나 지난 후에 나온 것이어서 초기 경전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으면서도 후세에 추가적으로 더해진 새로운 해석과 더 복잡하고 체계적이면서도 세밀한 수행의 여러 단계와 방법이 정리되어 있다. 

위숫디막가는 수행의 출발점으로 다섯가지 계율을 강조한다. 살생을 금한다 (폭력 억제), 주지않는 것을 갖지 않는다 (소유욕 억제), 음행을 삼간다 (감각적 쾌락 억제), 거짓말을 삼간다 (비도덕 억제), 술을 삼간다 (중독물질 억제) 등이다. 계율이라는 것은 인간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비도덕적인 행위를 금지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도덕적 행위들을 하게되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고 편도체가 활성화되므로 이를 억제하는 규칙을 준수하는 것으로 수행을 시작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라 할 수 있다. 다섯가지 계율이란 결국 수행을 위해 편도체를 가라앉히고 전전두피질을 활성화할 수 있는 기본 조건 만들기라 할 수 있다. 비도적적 행위를 금지하는 것 역시 거의 모든 종교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전전두피질의 뉴럴 네트워크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마음근력 훈련을 위해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이러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될만한 비도덕적인 행위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엄격한 규율 속에 평온한 자유가 있다. 이것은 불교 뿐만아니라 스토아 철학의 기본 입장이기도 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