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론적 세계관과 전체적 움직임
내향적 펼쳐짐 : 테일러-쿠에트 실험
봄은 안으로 향하는 내향적 펼쳐짐(enfoldment)과 바깥으로 향하는 외향적 펼쳐짐(unfoldment)의 총합을 ‘전체적 움직임(holomovement)’으로 개념화한다. 내향적으로 펼쳐져 들어왔다가 다시 외향적으로 펼쳐져 나가는 움직임의 총합이 곧 우주의 ‘근본적인 실체(primary reality)’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이 인식하는 사물, 대상, 형태, 입자 등등은 이러한 전체적 움직임의 결과에 따라 떠오르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Bohm, 2005, p.12).
어떤 물질적 실체나 독립적 입자로 드러나는 모든 것의 본질은 사실 끊임없이 흘러가는 전체적 움직임이다. 이러한 ‘흐름’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때에는 미립자나 사물 등 고정된 실체로 우리에게 드러난다. 그것은 마치 소용돌이(vortex)가 하나의 고정된 ‘실체’인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데, 사실 그 본질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전체로서의 ‘유체의 흐름’인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점에서 지나스가 말한 ‘소용돌이로서의 나(I of the vortex)’의 개념은 의미심장하다. 앞에서 살펴본 의식 역시 일종의 소용돌이와 같다.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처럼 보이지만 사실 소용돌이의 본질은 내향적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내재적 질서다. 우리는 각자 자기 자신을 하나의 고정된 실체처럼 느끼지만, 사실은 끊임없이 내향적으로 펼쳐지며 흘러가는 내재적 질서다. 하나의 별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미립자도 그렇다. 이 세상 모든 존재가 그렇다.
우주의 기본질서는 내향적 펼쳐짐인데, 봄은 이를 ‘내재적 질서’라 부른다. 여기서 ‘내재적(implicate)’은 라틴어에 뿌리를 둔 말로 ‘안으로 접혀 들어간다’는 뜻이다.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 속으로 접혀 들어간다. 전체로서의 우주가 하나의 부분으로 접혀 들어가며, 다시 하나의 부분이 전체로서의 우주로 접혀 들어가면서 펼쳐진다. 외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사물들로 구성된 것처럼 보이는 세계는 이러한 깊은 내재적 질서로부터 생겨난다.
한편 서로 외적인 관계를 지닌 독자적인 사물로 된 세계는 외향적 펼쳐짐을 하는 세계이며, 이를 외재적 질서(explicate order)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외재적 질서는 본질적으로 내재적 질서인 전체적 움직임의 일시적이고도 특수한 형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전자는 특정한 위치에서 에너지 덩어리인 배경으로부터 외향적 펼쳐짐을 통해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내향적 펼쳐짐을 통해 배경으로 들어갔다가 또다시 근처 다른 곳으로 펼쳐져 나왔다가 다시 배경으로 들어가기를 반복한다. 이때 드러나는 존재에만 초점을 맞춰서 그 미립자를 하나의 독립적 실체로 바라본다면 마치 하나의 전자가 궤도를 따라 돌다가 중간 이동 없이 다른 궤도로 마술처럼 건너뛰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이것이 전자의 ‘불연속성’이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체가 아닌 미립자에 불과한 전자도 내향적-외향적 펼쳐짐의 반복을 통해서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생산’ 또는 ‘자가복제’를 한다고 봐야 한다(Bohm, 2005, p.15). 이러한 관점이 기계론적 세계관에 대비되는 유기론적 세계관이다.
유기론적 세계관은 우주를 커다란 하나의 덩어리로서의 전체로 파악한다. 그 덩어리는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를 포함한 전체다. 밤하늘에 보이는 수많은 별이나 우리가 보거나 만질 수 있는 물질들은 우주라는 커다란 에너지 덩어리에 군데군데 생겨난 예외적인 구멍에 불과하다.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대상은 ‘현상(figure)’에 불과하고, 그것들을 존재하게끔 하는 전체로서의 ‘배경(background)’이 존재한다.
가령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수면 위의 물결뿐이지만 그 안에는 거대한 바다가 존재하는 것과도 같다. 우주 만물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체들의 총합이 아니다. 인간이 인식하는 부분으로서의 실체들은 인간이 자의적으로 분류하고 개념화해서 추상화한 것들에 불과하다. 나아가 이러한 부분으로서의 실체들은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외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체를 이루는 부분이기 때문에 상관관계나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태양이라는 하나의 실체가 지구라는 또 다른 하나의 실체를 중력으로 끌어당기며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태양이나 지구 모두 거대한 전체로서의 우주라는 바다 표면에 드러난 작은 파도들에 불과하다. 파도가 하나 일면 그 옆에 또 다른 파도의 물결이 생겨나고 영향을 받는다. 이렇게 물결과 물결이 상호작용하며 파도를 일으키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물결들 모두가 전체로서의 바다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봄이 제시하는 전체성과 내재적 질서의 개념은 기계론적 세계관에 푹 젖어있는 사람들로서는 얼른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봄은 유체역학의 테일러-쿠에트(Taylor-Couette) 실험을 통해서 내재적 질서의 개념을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그림 6-1처럼 투명한 큰 실린더 안에 작은 실린더를 넣은 후에 작은 실린더가 큰 실린더 안에서 회전할 수 있도록 한다. 작은 실린더와 큰 실린더 사이의 공간에 점성이 높고 투명한 액체를 가득 채운다. 투명한 글리세린도 좋고 옥수수 시럽도 좋다. 이것이 테일러-쿠에트 장치다.
[그림 6-1] 테일러-쿠에트 실험을 위한 장치
그림설명: 투명한 큰 실린더 안에 작은 실린더를 넣은 후에 작은 실린더가 큰 실린더 안에서 회전할 수 있도록 한다. 작은 실린더와 큰 실린더 사이 공간에 점성이 높고 투명한 액체를 가득 채운다. 작은 실린더를 돌리면 점성이 높은 액체도 따라 돌게되는데 작은 실린더 표면에 가까울수록 상대적으로 더 빨리 돌게 된다.
이제 기다란 스포이드로 잉크 한 방울을 투명한 액체 속에 떨어트린다. 잉크는 투명한 액체에 섞이지 않은 채 마치 하나의 알갱이처럼 떠 있게 된다. 이제 서서히 작은 실린더를 왼쪽으로 회전시킨다. 그러면 회전하는 작은 실린더 표면에 가까운 액체는 실린더를 따라 많이 움직이고, 고정된 바깥쪽 큰 실린더에 가까운 액체일수록 덜 움직이게 된다. 계속 돌리면 잉크는 점점 옆으로 퍼진다. 대여섯 바퀴 돌리면 완전히 퍼져서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하나의 알갱이처럼 보이던 잉크가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실린더를 반대 방향인 오른쪽으로 서서히 돌리면 원래처럼 잉크 방울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치 투명한 액체에서 입자가 갑자기 생겨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Fonda & Sreenivasan, 2017).[iii] 유체역학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테일러-쿠에트 흐름(flow)’이라고 한다. 이는 중심을 공유하는 두 실린더 사이 공간에 점성이 높은 액체를 채우고 안쪽 실린더를 회전시킬 때 나타난다.
이제 그림 6-2의 1번 그림처럼 빨간색, 녹색, 파란색 잉크 각각 한 방울씩 넣고 돌려보자. 그러면 2번 그림과 같이 독립된 입자처럼 보이던 세 개의 잉크 방울들이 완전히 섞이게 된다. 입자가 마치 에너지처럼 공간에 퍼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다가 3번 그림처럼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다시 독립적인 잉크 방울들이 나타난다.
[그림 6-2] 사라졌다 다시 나타나는 잉크 방울
그림설명:
1번 – 스포이드를 사용해서 빨간색, 녹색, 파란색 잉크를 각각 한 방울씩 점성이 높은 투명한 액체 속에 넣는다.
2번 – 가운데 작은 실린더를 여러번 돌리면 독립된 입자처럼 보이던 세 개의 잉크 방울들이 완전히 퍼져서 형태를 잃게 된다.
3번 – 실린더를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여러번 돌리면 다시 독립적인 잉크 방울들이 나타난다.
*유튜브 링크: https://youtu.be/j2_dJY_mIys
만약 엄청나게 거대한 실린더에 점성이 높은 투명한 액체를 가득 채우고 수많은 잉크 방울을 넣은 후에 돌리면 어떻게 될까? 잉크 방울들은 액체 속으로 퍼져들어가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다. 액체의 양이 충분하다면 완전히 투명하게 보이게 되어 잉크 방울들이 사라진 것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반대 방향으로 돌리면 투명한 액체 속에서 갑자기 잉크방울들이 나타나게 된다.
만약 처음에 몇 방울 넣고 한 바퀴 돌리고 다시 또 몇 방울 넣고 한 바퀴 더 돌리고 하는 식으로 반복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렇게 n번을 회전시켰다면 어떤 잉크 방울은 n번, 어떤 잉크 방울은 n+1번, 또 다른 잉크 방울은 n+2번… 하는 식으로 각기 다른 ‘퍼짐 상태’가 된다. 그러고 나서 반대 방향으로 돌렸다가 또 한 번 방향을 바꿔서 돌린다면? 수많은 잉크 방울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이러한 잉크 방울들을 하나의 실체 혹은 입자라고 보는 것이다. 잉크 방울 입자들을 각기 독립적인 실체로 보고 그들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면 분명히 일정한 상관관계가 나타나게 마련이다. 1번 입자가 나온 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2번 입자가 나타난다든지, 3번 입자가 나타날 때마다 4번과 5번 입자는 사라진다든지, 혹은 6번 입자와 7번 입자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항상 동시에 나타난다든지 하는 다양한 관계가 관측될 것이다. 마치 입자들은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중첩이든 얽힘이든 불연속성이든 무엇이라고 부르든 아무튼 입자들 사이에는 다양한 관계가 관측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입자들 모두 투명한 액체라는 거대한 장(field)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것뿐이다. 이때 전체로서의 투명한 액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관찰되는 것은 잉크 방울뿐이다. 마치 관찰되는 것이 미립자나 전자일 뿐이듯이.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잉크 방울이 투명한 액체 속으로 펼쳐지는 것이 곧 내향적 펼쳐짐을 하는 내재적 질서라 할 수 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입자나 사물들은 전체로서의 우주라는 커다란 실린더에 든 잉크 방울들과 같은 것이다. 드넓은 바다 수면에 그때그때 일렁이며 나타나는 물결들과도 같은 것이다.
잉크 방울이나 물결을 하나의 독립적인 실체로 간주하고 그들 사이의 외재적 질서(잉크 방울이나 물결의 탄생과 소멸, 인과관계, 상호작용 패턴) 등도 얼마든지 계산할 수 있고 모델링할 수 있다. 그렇게 하는 것이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일상생활의 일정한 한도 내에서는 그렇게 기계론적으로 보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우주의 본질적 모습인 것은 아니다. 봄은 이러한 외재적 질서는 내재적 질서의 일부 현상을 특수한 방식으로 추상화해 인과론적으로 개념화한 것에 불과하다고 본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자면, 우주는 커다란 전체로서의 투명한 젤리 덩어리이고 입자나 사물은 그 젤리에 묻은 티끌이나 작은 흠집과도 같다. 티끌들의 움직임 혹은 상호작용은 젤리의 움직임을 반영하는 것에 불과하다.
사물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외적으로 상호작용하고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로서의 우주가 그 자신 안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것이다. 이렇게 안으로 펼쳐져 들어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극히 부분적인 현상에 대해 기계론적 관점에서 관찰하고 설명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고전물리학이 해온 일들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외재적 질서는 내재적 질서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내재적 질서는 외재적 질서처럼 보이는 것들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외재적 질서를 포괄하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내면소통은 외면소통의 반대 개념이 아니다. 내면소통은 모든 외면소통의 본질적인 모습이며 모든 형태의 소통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이러한 내면소통의 개념에 대해서는 제7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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