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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환 Dec 24. 2022

생성질서(generative order)

기계론적 세계계관과 인과론적 이야기 구조를 대체할 수 있는 패러다임

생성질서와 인과관계

기계론적 세계관의 핵심은 인과관계다. 사물들의 관계를 원인과 결과로 파악하는 것이 인과론이다. 인과론의 핵심적 아이디어는 라이프니츠의 시공간에 대한 이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라이프니츠는 시간이나 공간이 선험적으로 주어지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적 사건에 의해서 결정되는 상대적인 것이라 보았다. 

시간은 ‘연속적인 사건들의 질서(the order of sequences)’에서 나오는 것이고 공간은 ‘동시에 존재하는 것들의 질서(the order of coexistence)’에서 비롯된 것이다(Evangelidis, 2018). 시간이나 공간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사건과 사물들에 의해서 개념적으로 구성되는 질서인 것이다. 


라이프니츠의 시간과 공간의 개념들은 철저한 외재적 질서에 입각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건들의 ‘연속’이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개별적이고 독립적인 사건들을 전제하고 있다. 공간 속에 흩어져 동시에 존재하는 ‘공존’의 개념 역시 개별적이고 구분되는 독립적 사물을 전제한다. 당구대에 공들이 여럿 놓여 있는 것처럼 여러 사물이 공존할 때 공간이 구성되고, 공 하나를 쳐서 다른 공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처럼 연속적인 사건들에 의해 인과관계가 생겨나며 그에 따라 시간이라는 개념도 생겨난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는 이러한 기계론적 관점으로 살아가는 것에 별 문제점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당구를 치거나 탁구나 골프를 치거나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사물들 간의 외재적 질서와 인과관계를 통해서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더 깊은 실체의 모습이나 우주의 근본적인 작동원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때에는 기계론적 세계관이 한계를 노출하기 마련이다. 


특히 인간의 의식작용이나 소통과 같은 현상은 외재적 질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우주의 근본 질서나 양자세계 혹은 인간 내면과 의식의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외재적 질서를 포괄하는 내재적 질서의 개념이 필요하다. 내면소통 훈련을 통한 마음근력 키우기와 관련해서도 내재적 질서의 관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뇌의 작동방식이나 의식과 감정의 문제는 고정된 실체들의 인과적 질서로는 도저히 제대로 설명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기계론적 세계관은 인간의 몸과 마음의 작동방식을 인과론적으로 이해한다. 예컨대 병에 걸리는 것은 외부적인 어떤 세균이나 바이러스의 침투에 의한 것이고, 소통을 잘해서 설득이 이뤄지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유입되는 어떤 메시지에 의한 것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바이러스’나 ‘메시지’는 고정된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고, 그것이 또 다른 고정된 실체인 인간의 몸이나 마음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해된다. 말하자면 바이러스나 메시지는 원인이고, 질병이나 설득은 결과라는 식이다. 하얀색 당구공이 붉은색 당구공과 충돌할 때 먼저 움직이는 하얀색 당구공이 원인이고, 그것에 의해 움직이게 된 붉은색 당구공이 결과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과론만으로는 내면소통의 작동방식을 충분히 설명해내기 어렵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은 독극물에 중독되는 것과는 그 성질이 다르다. 어떠한 메세지에 의해서 설득되는 것 역시 물감 한 방울을 떨어뜨려 물의 색깔을 변하게 하는 것과는 성질이 다르다. 봄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인과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개념으로 ‘생성질서(generative order)’를 제안한다. 생성질서는 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기보다는 능동적 정보의 영향을 받아 이에 반응함으로써 새로운 질서를 ‘생성’해낸다는 의미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폐렴을 앓게 되거나 소통에 의해 설득이 되어 생각이 바뀌는 것은 인과관계적 관점보다는 생성질서의 관점에서 설명해야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인과적 사고방식은 어떤 문제나 현상이 있을 때 그것을 낳은 ‘원인’을 찾으려 한다. 어느 도시에 공해가 심각한 수준이라면 언제 공장이 세워지기 시작했는지 묻고, 누군가 암에 걸렸다면 어떤 유전자가 문제인지 묻고, 트라우마나 불안장애가 발생하면 어떤 충격이나 사건이 그러한 정신적 문제를 가져왔는지 묻는 식이다. 봄은 이러한 연속적 사건들의 외재적 질서와 인과적 사고방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개념적 틀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생성질서’이다. 


어느 도시에 공장이 처음 세워진 것이 공해의 계기가 된 것은 맞지만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한 ‘원인’이라고 보긴 어렵다. 한 공장이 처음 세워지고 난 후에 계속해서 여러 공장이 더 들어서고, 그러한 공장들을 지금까지 가동하고 있다는 총체적 사실이 공해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과거의 어떤 특정 계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계속 ‘생성’되는 질서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암의 경우에도 유전자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 때문에 암이 생겼다기보다는 그러한 유전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건강하지 않은 특정한 생활습관을 계속 유지해왔다는 사실이 더 근본적인 문제라고 봐야 한다. 특정 유전자가 어떠한 조건에서든 항상 암을 일으키는 경우란 없기 때문이다. 유전자든, 발암물질이든, 환경이든, 생활습관이든, 무엇이든 간에 암을 유발하는 ‘원인’은 아직 발견된 적이 없다. 


과거의 불행한 일이 트라우마나 정신장애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불행한 일 자체보다는 그 불행한 일이 유발했던 고통이나 부정적 정서를 차단하고 억누르는 메커니즘을 계속 작동시키는 현재의 습관이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불행했던 일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부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증폭시켜서 강박적 사고를 하는 등 불행한 일 이후의 지속적인 행동, 사고, 인지 패턴의 습관화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해서 모두 PTSD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트라우마를 겪었으나 PTSD 환자가 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훨씬 더 높다. 

공해, 암, PTSD 등의 공통점은 그것을 유발하는 데 관여한 ‘계기’는 분명 있으나, 그 계기를 사태의 ‘원인’으로 파악하는 것은 전체적인 사태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생성질서는 이러한 ‘계기’뿐 아니라 그러한 계기가 촉발해서 지금 이 순간까지 계속되는 어떠한 지속적인 과정까지 전체적으로 살펴봐야 함을 시사하는 개념이다. 생성질서야말로 봄이 계속 강조하는 전체로서의 우주, 즉 ‘전체성’에 입각한 개념이다. 


생성질서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이러스 감염이다. 인류를 팬데믹의 공포로 몰아넣는 바이러스 감염 역시 인과관계보다는 생성질서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다는 것은 바이러스가 독립적이고 외적인 실체로서 우리 몸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바이러스는 일종의 DNA 파편들에 불과하다.


참고로, 바이러스는 살아있는 생명체라기보다는 RNA 유전자 정보를 담고 있는 단백질 부스러기에 가깝다. 코로나바이러스 하나의 무게는 0.85아토그램이다. 1아토그램은 10의 마이너스 18승분의 1그램이다.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증상도 보이고 다른 사람에게 바이러스를 전파할 수 있는 환자가 되려면 몸 속에서 바이러스가 700억 개 이상으로 증식돼야 한다. 그래 봐야 한 사람을 환자로 만드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전체량은 0.0000005그램에 불과하다(Ganapathy, 2020). 

우리나라 코로나바이러스 환자가 2천만 명이라고 가정해보자. 가벼운 증상을 보인 경우가 훨씬 더 많겠지만, 모두 어느 정도라도 증상을 보이는 환자라고 가정한다 해도, 즉 2천만 명의 환자가 모두 700억 개의 바이러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전국을 팬데믹의 공포로 몰아넣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총량은 겨우 10그램에 불과할 것이다. 


이러한 것이 우리 몸 세포 속의 유전자를 교란해 바이러스를 증식시키도록 유도한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 세포의 복제 시스템을 이용한다. 외부에서 오는 바이러스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다. 그것의 ‘가이드’를 받아서 우리의 몸이 스스로 에너지와 단백질을 공급하고 화학작용과 대사작용을 통해서 바이러스들을 계속 증식시키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은 그 자체로서 질병이라기보다는 몸으로 하여금 염증을 비롯한 여러가지 질병을 만들어내도록 유도한다는 점에서 생성질서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바이러스가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 몸이 스스로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바이러스야말로 능동적 정보로서의 '인-포메이션(in-formation)'인 것이다. 


바이러스는 마치 배의 진행 방향을 알려주는 무선라디오 신호와도 같은 역할을 한다. 배를 움직이는 힘 자체는 라디오 신호에서 오지 않는다. 라디오 신호는 다만 능동적 정보로서만 작동한다. 실제 배를 움직이는 힘은 배 자체의 엔진에서 나온다. 바이러스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인 셈이다. 마치 입자 상태에 영향을 주는 양자잠재력과도 같다. 바이러스는 우리 몸 안으로 내향적 펼쳐짐을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 감염병은 숙주인 사람의 몸이 바이러스에 ‘협조해서’ 생성해내는 생성질서의 대표적인 예이다. 숙주의 입장에서는 바이러스에 저항하고 말고 할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 세포 자체의 복제 프로그램 등 단백질 작동방식을 바이러스가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면역력이 있는 경우에는 다르다. 대부분 사람은 코로나바이러스를 이겨낸다. 그러나 소수는 위험한 상황까지도 간다. 

중증환자가 되거나 폐와 혈관을 비롯해 여러 장기를 파괴하는 것 역시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이다. 즉 바이러스에 의한 면역시스템의 교란으로 인해 몸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이다. 능동적 정보인 바이러스는 우리 몸을 직접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이 스스로 파멸의 길로 가도록 방향만 제시한다. 따라서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현상은 기계론적 인과론으로는 설명이 안된다. 바이러스는 생성질서에 따라 작동하는 능동적 정보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을 생각해보자. 씨앗 하나에는 DNA 정보와 약간의 영양분만 들어있을 뿐이다. 그것이 나무로 자라나려면 공기, 물, 영양분, 햇빛 등 다양한 요소와 에너지가 주어져야 한다. 씨앗에 담겨있는 DNA는 일종의 능동적 정보일 뿐이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는 것 역시 외적인 인과관계보다는 능동적 정보의 내향적 펼쳐짐으로 파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바이러스가 몸속에서 증식하는 것이나, 씨앗이 자라나서 나무가 되는 것이나, 수정란이 성체로 성장하는 것 모두 인과관계라기보다는 생성질서다.


앞에서 살펴본 프리스턴의 능동적 추론의 과정 역시 본질적으로 생성질서다. 헬름홀츠나 프리스턴의 감각 경험에 대한 예측 모델에 따르면, 마코프 블랭킷으로서 인간의 감각시스템은 외부자극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수동적 시스템이 아니라 내부의 생성모델을 바탕으로 추론하는 능동적 시스템이다. 

감각자료는 인간의 뇌가 생산해내는 지각편린의 외부적 ‘원인’이 아니다. 뇌가 세상 사물을 지각하는 것은 인과론적 과정이 아니다. 뇌는 예측오류를 바탕으로 생성모델 자체를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한다. 즉 시각, 청각, 촉각 등의 감각 경험은 외부 감각자료와 내부의 생성모델이 지속해서 피드백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생성되어 나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인과관계 모델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을 보완하기 위해 프리스턴은 ‘역동적 인과관계 모델(dynamic causal modelling, DCM)’을 제안하기도 한다(Friston, Harrison & Penny, 2003). 역동적 인과관계 모델은 fMRI 분석을 하는 데 있어서 외부자극이 뇌에 미치는 단선적인 인과적 영향뿐 아니라 뇌의 내적인 생성모델(마코프 블랭킷 내부상태 간의 상관관계 등)의 베이지안 추론 과정까지를 고려하는 모델이다. 시간에 따른 연속적이고 선형적인 질서 모델이 아니라는 점에서 봄의 생성질서와 프리스턴의 역동적 인과관계 모델은 상당한 공통점을 지닌다.


생성질서로서의 감정과 의식

환경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과정뿐 아니라 내부상태의 핵심인 생성모델 역시 생성질서의 일종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특정한 외부 사건이 원인이 되어 생각이라는 결과가 생겨나는 것처럼 느낀다. 게다가 특정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일어날 때는 더욱더 그 생각에 특정한 외부 ‘원인’이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생각은 특정한 외부 사건을 원인으로 생겨나는 결과가 아니다. 생각은 의식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것이다. 

외부 사건은 바이러스와 마찬가지로 능동적 정보로서 우리 의식에 특정 계기와 방향을 제시할 뿐이다. 생각을 만들어내고 지속해가는 것은 의식이라는 내부상태다. 바이러스를 계속 증폭시키는 것이 우리 몸이듯이 생각이 생각을 낳도록 하는 것 역시 우리의 의식이다. 그렇기에 생각은 강박적으로 반복되기도 하고 강화되거나 확장되기도 한다. 의식에는 여러 생각이 동시에 공존할 수도 있다. 

생각뿐 아니라 기억이나 감정 등은 모두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연속적 질서(the order of sequences)’와 ‘공존적 질서(the order of coexistence)’의 성격을 모두 가지면서 그 본질은 생성질서다. 사실 모든 생성질서는 연속성과 공존성을 모두 다 구현하고 있으며 동시에 그것을 넘어선다. 


봄은 분노와 같은 특정한 감정 상태 역시 생성질서로 본다(Bohm, 1987). 기분 나쁜 일이나 모욕적인 언사에 의해 분노가 생기는 것은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외부 원인에 의한 감정의 유발은 결코 인과관계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분노의 계기가 되는 사건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외부에서 주어지지만 그러한 자극으로부터 분노라는 감정을 만들어내고 키워가는 것은 내부상태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기분 상했던 일을 반복해서 되뇌이고, 스스로의 분노를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상대방의 잘못을 비난하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증폭시킴으로써 분노라는 감정은 계속 유지되거나 점차 강화되기 마련이다. 


분노뿐 아니라 불안이나 우울 등 다른 부정적 정서를 유지하고 증폭시키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모두 본질적으로 생성질서다. 특정한 부정적 사건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우리 마음에 작용한다. 생성질서로서 특정한 부정적 생각은 우리 마음에서 증폭된다. 그러한 부정적 생각에 에너지와 영양분을 공급해서 계속 키워나가는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한편 면역시스템이 바이러스 감염 상태를 이겨내듯이 마음의 면역력, 즉 마음근력이 강한 사람은 부정적 사건이 마음을 숙주로 삼아 확산되는 것을 스스로 막을 수 있다. 마음근력은 곧 ‘감정적 면역력’이기도 하다. 감정적 면역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부정적 사건이나 트라우마도 커다란 후유증을 남길 수 있다. 


몸의 면역력을 키우는 것은 외부 바이러스에 반응하는 몸의 새로운 생성질서를 만드는 것이고, 마음근력을 키우는 것은 외부의 부정적 사건에 반응하는 마음의 새로운 생성질서를 건강한 방향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특히 부정적 사건이나 실패, 역경 혹은 좌절 등에 잘 대처하고 일종의 ‘마음의 항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회복탄력성을 강화하는 훈련이라 할 수 있다. 

회복탄력성을 비롯한 여러 가지 마음근력을 발달시키는 것은 새로운 생성질서를 만드는 것이다. 외부자극이 의식 속에서 내향적 펼쳐짐을 하는 패턴을 바꿔나가는 것이다. 물론 생성질서의 자동화된 반응 방식을 바꿔나가는 것은 체계적이고도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외상후스트레스증후군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겪은 부정적 사건 자체가 트라우마 스트레스를 유발한다고 보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그보다는 지금 현재 계속해서 부정적 정서를 재생하고 있는 생성질서가 더 큰 문제인 것이다. 과거의 나쁜 경험 자체가 현재 몸과 마음이 아픈 ‘원인’이 아니다. 과거의 사건은 단지 하나의 계기만을 제공할 뿐이다(Bohm&Kelly, 1990). 

원인과 결과가 명확하게 구분되는 단순한 인과관계적 틀에서 벗어나 생성질서의 관점에서 부정적 정서나 트라우마를 바라봐야만 제대로 된 해결책을 마련할 수 있다. 만약에 과거의 경험이 확정적 원인이라면 과거를 바꿀 방법은 없으니 원인 치료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지고 다만 대증요법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정신분석학의 전통처럼 과거의 특정한 경험에 대해 집중하기보다는 지금 현재 몸과 마음이 어떻게 스스로 병을 키우고 유지하는지 살펴보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Maté, 2011). 

병을 유지하고 확대시키는 것은 지금 현재 작동하고 있는 생성질서다. 따라서 과거의 부정적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는 것은 그러한 일이 미래에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예방적 차원에서만 의미가 있다. 과거의 ‘원인’에 집착하기보다는 현재의 생성질서를 바꾸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고 올바른 방법이다. 


참고 사항: 이 글은 곧 출간될 책 원고의 일부이며, 인용이나 복제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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