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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따 Oct 06. 2016

해필리 에버 애프터, 그 후

동화책이 이렇게 위험한겁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다음 이야기를.

신데렐라도, 장화홍련도, 엄지공주도, 심청이도 전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며 이야기가 끝났다. 그 어느 이야기 책에도 'happily ever after' 그 후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래서 치열한 연애의 끝을 결혼으로 맺으면 그저 그녀들처럼 해필리 에버 애프터가 되는 줄만 알았다. 동화가 이렇게 무서운 거다. 바비인형이 미의 기준을 아이들에게 세뇌시킨 것처럼 해피엔딩 공주 이야기가 이렇게 결혼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순진했다. 멍청했다. 아니 생각을 하지 않았으니 게을렀다 해야 할까.


서른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결혼을 했다. 7년의 연애 끝에 결혼을 결심하면서 한 번도 결혼식 그 이후의 일상을 그려보지 않았단 건, 결혼 2년 차쯤에서야 깨달았다. 7년 동안 콩깍지가 벗겨질 줄 모르니 천생연분이다 싶었다. 물론 어른들의 '사랑만 가지고 살 수 없다'는 조언을 새겨 들었다. 그래서 신랑감의 인성과 처자식 굶기지 않을 성실함이 있는지 최소한의 저울질은 했다. 콩깍지 너머로 조금 더 욕심을 내서 살 터전 하나 마련할 수 있는지, 집안에 빚은 없는지도 들여다봤다.  


하지만 정작 내가 결혼을 결심하며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던 건 상대가 가진 조건이 아니었다. 사랑의 크기도 아니었다. 내 것을 얼만큼 내려놓을 수 있는지, 달라질 내 삶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지 그걸 치열하게 고민해야 했다.


결혼은 여자에게 많은 걸 포기하게 한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연인과의 여행이 더 이상 숨길 일이 아니고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이 손가락질할 일이 아니며, 회사 면접에서 여자친구와 동거 중이라 밝히는 지원자 앞에서 되려 임원이 촌스러워 보일까 놀란 기색을 감추기도 하는 세상이다. 하지만 그런 세상에도 여전히 아내, 며느리에게는 어느 교수의 말처럼 '윤리라는 탈을 쓴 폭력'이 지속되고 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떤 아내가 될지, 어떤 며느리가 될지 치열하게 생각했어야 했다. 나는 그 폭력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여자의 재능을 가장 많이 사장시키는 건
전쟁이나 기아, 질병, 재난보다 결혼이야


사회에서는 내가 아니어도 되는 일이 많다. 전지현이 아기 낳으러 가면 설현이 나오고, 장금이가 육아에 바쁘면 라온이가 등장한다. 사회에서는 내 자리에 내가 아니어도 나를 대체할 사람은 언제든지 있다. 하지만 가정은 다르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장화 신은 고양이 마냥 눈을 반짝이며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내 커리어 내려놓고... 그러니까 이 차장, 김 과장, 박 대리 내려놓고 누구 와이프, 누구 엄마를 선택할 수밖에.


나도 결혼 이후 내 커리어를 내려놓았다. 집안의 우환으로 인해 누군가 가족을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제일 먼저 내가 나섰다. 누구도 강요하진 않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선택이 내 멘탈을 얼마나 흔들어 놓을지를.


가끔은 헷갈린다. 내가 포기해야 하는 수많은 일상이 결혼 때문인지 아니면 30대 내 나이 때문인지. 그러고 보니 동화 속 신데렐라와 심청이는 포기해야 할 커리어가 없었다. 걔네들이 직업이 있었단 얘기는 못 들어 봤으니까. 그래서 해필리 에버애프터 그 뒷 이야기가 없는 걸지도 모르겠다.

 



미쓰와 아줌마 사이,
그 이야기


결혼식을 올리면 바로 다음날부터 아줌마가 되는 줄 알았다. 그냥 애 낳고 몸 좀 퍼지고 살림 좀 하면 절로 되는 게 아줌마인 줄 알았다. 아줌마라고 쉽게 되는 게 아니었다. 내려놓아야 할 것이 여간 많은 게 아니다. 내려놓고 내려놓고 또 내려놔야 되는 것인데 만만하게 봤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아줌마는 멘탈을 단단히 부여잡고 수많은 폭력적 상황에 맞서며, 그 속에서 수많은 인내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강철 같은 존재란 걸 결혼 후에 알았다.


그래서 나는 아직 내가 아줌마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멘탈은 더 강해져야 하고 좀 더 내려놓아야 할 것이 있고 또 더 많은 인내를 키워야 하니까. 이미 내려놓은 게 있으니 그렇다고 아가씨도 아니다. 굳이 말하자면 미쓰와 아줌마 그 사이 어딘가 미쓰줌마쯤.


미쓰줌마로서 동화책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던 해필리 에버 애프터, 그 후의 이야기를 여기다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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