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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니따 Nov 08. 2016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범인은 바로 너야


반상기의 의미는 노예계약서였어     



결혼할 때 시부모님께 드리는 예단 3종 세트가 있다. 

반상기, 이불, 은수저 세트가 그것. 시부모의 식사를 잘 차려 내겠다는 의미로 반상기를, 잠자리를 보살피겠다는 의미로 이불을, 그리고 시부모의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로 은수저를 드리는 것이란다.      


장수를 기원한다니 은수저는 그렇다 치고 반상기와 이불은 뭐지? 노예를 들이는 것도 아닌데 시부모의 식사와 잠자리를 잘 챙기겠다고 드리는 선물이라니. 조선시대에나 가능한 일을 아직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게 놀랍다. 순장이나 고려장처럼 진작 없어져야 했을 풍습 아닌가.      


최근에는 이 예단 3종 세트를 받지 않는 시부모들이 늘었다. 하지만 시어머니가 예단 보이콧을 선언한 이유는 쓰지도 않을 그릇, 이불에 돈 들이는 대신, 미친 듯이 널뛰는 집값에 보태라는 의미가 대부분. 누구도 그 예단에 담긴 뜻이 엉망이니까 예단 3종 세트를 하지 말라는 사람은 없다. 500원 걸 수 있다.        


시대가 변했지만 아직도 며느리에게는 많은 억압과 부당한 사상이 강요되고 있다. 박진영이 망사옷을 입고 청와대에 들어간 일도 20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며느리는 ‘말 잘 듣는 시월드의 착한 일꾼’이어야 한다는 생각은 은연중에 계속 남아 있다. 시대상을 반영한다는 드라마에서는 시어머니에게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거나 심지어는 시어머니 따귀까지 때리는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디까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현실세계에서는 며느리는 여전히 누더기 신데렐라다.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키웠어


일 년에 서너 번쯤 ‘며느리 서러움’이 폭발하는 때가 있다. 

보통 시어머니, 시누이, 남편도 하지 않는 제사 음식을 나 ‘혼자’ 하고 있을 때가 분노 임계점이다. 육체적 피로가 문제가 아니다. 명절이나 제사 때 홍동백서 다 갖춰 상을 차리는 것이 아니라 성묘에 가져갈 전과 튀김, 과일 몇 가지를 준비하는 게 전부니 심한 노동은 아니다. 


하지만 ‘독박 노동’을 한다는 게 분노의 포인트다. 핏줄이 섞인 자손도 안 하는 일을 혼자 하고 있노라면 우리나라의 잘못된 명절, 제사 문화에 대해 머릿속으로 논문을 열 개쯤 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 독박노동의 시발점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올라갔다. 그리고는 곧 이 상황을 만든 건 엄마와 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혼 후 첫 명절, 엄마는 나에게 명절음식을 해서 시부모님께 대접하라고 시키셨다. 

나 역시 엄마의 말에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쳤다. 그 당시만 해도 시댁에서는 명절에 차례를 따로 지내지 않으셨고 명절도 다른 휴일과 다를 바 없이 보내셨다. 


그런데 그 평화로운 명절에 ‘명절음식’이란 개념을 들여놓은 건 나였다. 며느리로서 뭔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을 스스로 받았던 거다. 어릴 적부터 봐왔던 엄마의 며느리 행동을 나 역시 해야 할 것 같았다. 남들이 하는 ‘며느리짓’을 해야만 할 것 같고, 또 그 며느리짓으로 시부모님과 남편에게 예쁨을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처음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고, 나중에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자연스럽게 제사음식까지 내 차지가 됐다. 망했다.      


결혼할 무렵부터 엄마에게 지겹게 듣던 말이 있다. 

“너는 이제 출가외인이야”

“너는 이제 그 집 귀신이야”

“며느리 할 도리는 제대로 해야지”     


생각해보면 시댁에서는 그 누구도 이런 문장을 내뱉은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내게 이런 조선시대 멘트를 날리는 건 우리 엄마였다. 어릴 땐 분명 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고 당당하게 남녀평등 인생을 살라 가르치셨는데

결혼 즈음이 되니 사극 속 정승부인 모습이 우리 엄마에게서 보였다. 

낯설었다.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를 깨자, 가정의 평화를 위해     



네이트빤, 레몬발코니, 맘스중독 등 주부들의 커뮤니티에는 시월드 스트레스에 대한 글이 자주 올라온다. 이 글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스트레스의 원인이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과의 생각차이, 문화차이도 문제겠지만 무엇보다 스스로가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엄마의 모습, 드라마 속 며느리 모습을 어설프게 모방하려는 태도다 가장 큰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해야 한다.  

인생을 계획하듯 내가 어떤 며느리가 될 것인지, 시댁 구성원 한 명 한 명과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지 역시 생각을 해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닌 타인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스탠다드 타입을 그대로 따라 하면 스스로가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에 빠지게 된다. 


착한 며느리 콤플렉스는 속으로 곯게 만든다. 그리고 부부 사이를, 가족관계를 불행하게 만든다.      

콤플렉스는 깨트려야 한다.

와장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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