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 미혼이지만 집을 구했다
사실 독립을 생각한 지는 꽤 된 것 같다. 혼자 살아본 적이 없다 보니 할 줄 아는 것이 없는 '무늬만 어른'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퇴사 전, 일본 파견 근무를 통해 혼자 살아보는 경험을 하려고 했지만 결정이 나기 전, 번아웃 등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를 했다. 그렇게 퇴사하고 지낸 지 어느덧 1년. 일을 아직 구하지는 못했지만 어쩌다 보니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독립을 위한 한 발자국을 뗐다.
타이밍이 맞았던 것 같다. 마침 서울 전셋값도 마구 오르고 있던 터라 부모님이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언니가 있는 인천으로 이사를 온 지 1개월 정도 되었고, '캥거루족'이 언급된 각종 신문 기사, 얼마 전 방영을 시작한 TV 프로그램 '다 컸는데 안 나가요' 등을 접하면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구나'하는 경각심이 생겼다. 멀티가 잘 안 되는 사람이어서 마침 쉬고 있는 기간이기도 하니, 38년 만에 독립을 추진하기 '딱'인 시점이었다. 그렇게 부동산에 들러 몇 곳의 집을 둘러보았고, 2주 만에 내 나이와 비슷한 연식의 구축 아파트를 덜컥 계약해 버렸다. 그것도 원래 예상했던 예산을 초과해서...
원래 처음에는 작은 평수의 아파트를 알아봤다. 가격도 그렇고, 혼자 사는 것이기에 넓은 평수는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밖에서 보고 있자니, 타고난 예민함이 엄청난 터라 복도식 아파트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계단식이 있는 27평으로 평수를 높이며 가격이 한 번 올라갔다. 평형이 정해졌으니 아파트를 둘러볼 시간. 공실인 아파트도 가 보고, 고쳐지지 않은 집도 가 봤다(올수리라고 했지만). 30년이 훌쩍 넘은 오래된 아파트이기도 하고, 인테리어를 해본 적이 없으니 공사할 엄두도 나지 않고... 오랫동안 거주할 생각이어서 (결혼은 이미 글러 먹은 것 같으니) 샷시 등이 잘 고쳐져 있는 집을 구하고 싶었다. 그렇게 약 다섯 군데 집을 돌아다녀 보고 난 후, 여섯 번째만에 맘에 드는 수준의 아파트를 찾을 수 있었다.
마음에 드는 수준의 아파트는 찾았지만 막상 금액이 너무 높아져 버린 상황. 생애최초 주택 구입/독립이어서 각종 대출도 알아봤다. 근데 너무 높아져버린 집값에 마침 정부가 대출을 조이는 타이밍이고, 디딤돌 대출의 경우 미혼은 면적/평수 제한이 있어 여의치 않아 보였다(미혼 싱글은 서러워). 어차피 현재는 무직이라 대출 가능성도 없어 보였기에 대출은 포기하고, 12년간 유지해 온 주택청약통장을 해지, 퇴직금 일부를 보태 대출 없이 계약하기로 했다. 그렇게 약 3주 동안 내 집마련 프로젝트를 진행하여 계약서까지 쓰고, 12월 초에 잔금을 치르며 이사를 할 예정이다.
안식년이라고 1년 동안 수입 없이 생활하면서 모아 놓은 돈을 야금야금 써왔는데, 이제는 퇴직금까지 탈탈 털어야 할 정도니... 여유자금은 거의 남지 않을 예정이고, 지원한 회사들에서 아무 연락을 받지 못하고 탈락하기를 반복하고 있다 보니 불안함이 큰 것도 사실이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갖고 있는 돈을 잘못 계산해서 멘붕이 오기도 했지만, 어쨌든 해결 방법은 찾았으니 (주택청약통장 해지가 해결 방안 ㅠㅠ) 일자리 구하는데 박차를 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자유인이 된 지 오늘로써 딱 1년. 퇴사를 결정한 이유가 어찌 되었던 1년의 공백에 나이도 많은 터라 탈락의 고배를 마시며 현실의 장벽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이전의 연봉 수준을 받으려면 이제는 2-3년 정도 일해야 하는 일자리에 지원해도 탈락하고, 최저시급 아르바이트를 알아보고 있는 현실에 살짝 현기증이 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내가 결정한 일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일만 했다면 알지 못했을 것들을 지난 1년여간 마구 경험하면서 나름대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말했듯이 "인생 길게 보고" 이번 독립을 전환점으로, 더욱 단단한 내가 될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며 살아가야겠다.
안식년 1년. 그리고 38년 만에 독립 결정. 이제는 진짜 어른이 되는 것인가!
앞으로 어떤 일이 더 많이 펼쳐질지 모르지만, 부디 웃음 가득한 인생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