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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민 Nov 25. 2021

쉽게 씌어진 에세이

작가는 아무나 하나요

 어느 날이던가, 하루키의 비범한 관찰력에 대한 열띤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까만 커피에 꽂힌 초록 빨대가 눈에 띄었다. ‘왜 초록색일까?’라는 근본 없는 의문이 든다. 스치기 쉬운 빨대 색에 흥미를 가진 나 자신이 좀 남다른 것 같고, 갑자기 내 관찰력도 제법 쓸만한 것 같고, 막. 이 소재라면 나도 ‘마이 스니커 스토리’ 정도 에세이는 쓸 수 있을지도. ‘전부 거짓말입니다. 죄송.’으로 끝나는 가볍고도 기발한 에세이.


  때로부터 약 네 시간을, 내 머릿속 에세이는 ‘... 청량해 보이니까.’에서 진전이 없다. 우리 반 14번 김예빈도 쓸 법한 문장이다, ‘청량해 보이니까 빨대의 색깔은 초록색으로 골랐습니다!’. 


  그래, 하루키는 백종원이 아니고, 그의 글은 레시피가 아니지 않은가. 새벽 기상 1 테이블스푼, 마라톤 1/2 컵, 조금 특별한 관찰력 12g을 아무리 정확하게 계량해서 오차 없이 완벽하게 잉크에 튀겨내도.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무슨, 내 글은 나무에게 미안해서 차마 종이에 옮기지도 못할 수준에 그치고 만다.


  아니, 애초에 커피더러 까맣다고 밖에 표현 못하는 주제에. 빨대만 보고 이미 상상 탈고까지 마쳤던, 쉽게 읽었다고 쉽게 쓰일 줄 알았던 내 과잉된 자의식에게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 에이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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