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이던가, 하루키의 비범한 관찰력에 대한 열띤 대화가 오고 가는 중에, 까만 커피에 꽂힌 초록 빨대가 눈에 띄었다. ‘왜 초록색일까?’라는 근본 없는 의문이 든다. 스치기 쉬운 빨대 색에 흥미를 가진 나 자신이 좀 남다른 것 같고, 갑자기 내 관찰력도 제법 쓸만한 것 같고, 막. 이 소재라면 나도 ‘마이 스니커 스토리’ 정도 에세이는 쓸 수 있을지도. ‘전부 거짓말입니다. 죄송.’으로 끝나는 가볍고도 기발한 에세이.
그 때로부터 약 네 시간을, 내 머릿속 에세이는 ‘... 청량해 보이니까.’에서 진전이 없다. 우리 반 14번 김예빈도 쓸 법한 문장이다, ‘청량해 보이니까 빨대의 색깔은 초록색으로 골랐습니다!’.
그래, 하루키는 백종원이 아니고, 그의 글은 레시피가 아니지 않은가. 새벽 기상 1 테이블스푼, 마라톤 1/2 컵, 조금 특별한 관찰력 12g을 아무리 정확하게 계량해서 오차 없이 완벽하게 잉크에 튀겨내도.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는 무슨, 내 글은 나무에게 미안해서 차마 종이에 옮기지도 못할 수준에 그치고 만다.
아니, 애초에 커피더러 까맣다고 밖에 표현 못하는 주제에. 빨대만 보고 이미 상상 탈고까지 마쳤던, 쉽게 읽었다고 쉽게 쓰일 줄 알았던 내 과잉된 자의식에게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 에이 그만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