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 Shrimpy Dec 02. 2017

감정은 우리가 가진 전부야

혹은 조금 큰 일부이거나

You say that emotions are overrated. but that's bullshit. Emotions are all we've got.
-Youth (2015)


몇 년 전 한국에서도 개봉한 '유스(Youth)'라는 영화에서 노장 감 '믹'이 오랜 친구 '프레드'에게 핀잔처럼 건넨 말인데, '감정은 우리가 가진 전부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해서 영화가 끝나고 바로 메모해두었다.


작년 포르투갈 여행과 이 이상 잘 어울리는 말을 찾기가 어렵다.


포르투갈에서 머무르던 약 열흘 동안 4인실 아니면 6인실에서 묵었더니, 매일 다른 룸메이트들과 짧으면 하루 밤, 길면 며칠 밤을 함께 방을 썼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룸메이트 N은 미국에서 왔고, 독일에서 1년 동안 Au Pair(가정교사 같은 일인 듯 했다)를 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유럽을 여행 중이라 했다.


막 리스본에 도착한 N과는 처음 숙소 화장실에서 마주쳐서 눈인사만 했는데, 방에 가보니 우리 방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여느 혼자 여행 온 룸메이트들이 그렇듯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일정을 물어봤다. 이따 리스본에 오기 전 포르투에서 친해졌던 친구 H와 바이로 알토(Bairro Alto)에서 저녁을 먹고 술 한잔 하러 갈건데 혹시 같이 가겠냐 했더니, 흔쾌히 좋다며 따라나선다.


리스본의 겨울 밤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야외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번 여행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독일 오빠(ㅜㅜ)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여행 중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사람이 정말 좋은데, 현실적으로 이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이 없어서 연락을 하는 게 망설여진다, 라고 했더니


Well, what can you do. Emotion rules everything!
뭐 어쩌겠어, 감정이 모든 걸 지배하는걸!


유쾌하게 던진 N의 말에 잠시 벙쪄있다가, 둘다 웃음이 터졌다. 맞아, 결국엔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될 거고 그게 나중에 제일 후회가 덜하겠지.


1차로 갔던 바이로 알토의 한 펍. 야외테이블에서 마시고 있는데 사장님과 그 여자친구가 직접 담근 밀주라며 한 잔씩 권했다. 내일 오전 일정은 모두 취소해야할거라고ㅋㅋㅋ
새벽에 숙소 가던 길. 이제 리스본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노란 트램.


포르투갈 여행이 끝난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 동안 회사 컴퓨터를 보면서 멍때리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밤길을 걷다가도, 이유없이 울컥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일 작은 일에도 동요하고 감정에 압도당하는 기분.


그 때 N의 말이 떠오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리의 기본 바탕은 감성이고 이성은 조절해주는 기능만 있는걸까.


그런데 시간에 지나 다시 일상에 적응해서 지내는 지금은,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했던 감정이 그저 내 일부일 뿐인가 싶기도 하다.


결국 나의 경우 감정은 내가 가진 일부...이긴 한데, 여행 중일 때는 그게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사람인 걸로 (혼자) 정리했다.



아, 포르투갈 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노령견을 떠나보내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