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조금 큰 일부이거나
You say that emotions are overrated. but that's bullshit. Emotions are all we've got.
-Youth (2015)
몇 년 전 한국에서도 개봉한 '유스(Youth)'라는 영화에서 노장 감독 '믹'이 오랜 친구 '프레드'에게 핀잔처럼 건넨 말인데, '감정은 우리가 가진 전부야.'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듣는 순간 마음이 쿵, 해서 영화가 끝나고 바로 메모해두었다.
작년 포르투갈 여행과 이 이상 잘 어울리는 말을 찾기가 어렵다.
포르투갈에서 머무르던 약 열흘 동안 4인실 아니면 6인실에서 묵었더니, 매일 다른 룸메이트들과 짧으면 하루 밤, 길면 며칠 밤을 함께 방을 썼다.
그 중 기억에 남는 룸메이트 N은 미국에서 왔고, 독일에서 1년 동안 Au Pair(가정교사 같은 일인 듯 했다)를 하고 집에 돌아가기 전 유럽을 여행 중이라 했다.
막 리스본에 도착한 N과는 처음 숙소 화장실에서 마주쳐서 눈인사만 했는데, 방에 가보니 우리 방에서 짐을 풀고 있었다. 여느 혼자 여행 온 룸메이트들이 그렇듯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여행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 일정을 물어봤다. 이따 리스본에 오기 전 포르투에서 친해졌던 친구 H와 바이로 알토(Bairro Alto)에서 저녁을 먹고 술 한잔 하러 갈건데 혹시 같이 가겠냐 했더니, 흔쾌히 좋다며 따라나선다.
리스본의 겨울 밤은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야외테라스에서 맥주를 마시며 이번 여행에서 있었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독일 오빠(ㅜㅜ)에 대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여행 중 지나가는 바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사람이 정말 좋은데, 현실적으로 이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될 가능성이 없어서 연락을 하는 게 망설여진다, 라고 했더니
Well, what can you do. Emotion rules everything!
뭐 어쩌겠어, 감정이 모든 걸 지배하는걸!
유쾌하게 던진 N의 말에 잠시 벙쪄있다가, 둘다 웃음이 터졌다. 맞아, 결국엔 마음 가는 대로 하게 될 거고 그게 나중에 제일 후회가 덜하겠지.
포르투갈 여행이 끝난 후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 동안 회사 컴퓨터를 보면서 멍때리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밤길을 걷다가도, 이유없이 울컥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매일 작은 일에도 동요하고 감정에 압도당하는 기분.
그 때 N의 말이 떠오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정말 우리의 기본 바탕은 감성이고 이성은 조절해주는 기능만 있는걸까.
그런데 시간에 지나 다시 일상에 적응해서 지내는 지금은, 그렇게 나를 들었다 놨다 했던 감정이 그저 내 일부일 뿐인가 싶기도 하다.
결국 나의 경우 감정은 내가 가진 일부...이긴 한데, 여행 중일 때는 그게 풍선처럼 부풀어오르는 사람인 걸로 (혼자) 정리했다.
아, 포르투갈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