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배웠다

by 오우


내 인생은 초등학교 입학 전후로 나뉜다. 호의만 가득한 세상에서 지뢰처럼 터지는 적의가 숨겨진 세상에 발을 디뎠다. 초등학생인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괴롭고 힘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사회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 눈치와 소통을 배웠고, 처세와 절제를 익혔다.


동네 할머니들의 사랑방이었던 우리 집에는 늘 할머니들이 가득했고, 인사만 잘해도 그녀들은 넘치는 사랑을 주었다.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관심 밖의 사람이 되어봤고,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만났다. 물론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이유 없이 나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이유가 있어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맞추는 게 더 어려웠다. 어떤 어떤 이유로 "네가 싫어"라고 말하는 친구와 놀고 싶어서 이유를 고쳐봤자, 다른 이유를 들어 "네가 여전히 싫어"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 알게 되었다. 타인을 싫어하는 이유를 만들어 죄책감을 덜어내는 사람은 그냥 나를 싫어하는 사람보다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는 걸. 그리고 나를 깎아가며 상대방에게 맞춰봤자 마음을 살 순 없다는 걸.


초등학교라는 작은 사회는 세상을 배우는 첫 관문이었다. 단순히 글자를 익히고 산수를 배우는 공간이 아니었다. 교실은 인간관계의 축소판이었고, 복도는 만남과 감정이 교차하는 커뮤니티였다. 그런 곳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생긴다. 어린 마음에 상처는 남았지만 동시에 삶을 살아가면서 겪게 될 일들의 예방접종이 되었다.

때때로 배척당해 외로울 때면 나를 구겨 넣어서라도 무리로 들어가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못 살 것 같았고, 그냥 나와 맞는 새로운 아이를 찾아 무리를 뛰쳐나왔다. 돌이켜보면, 초등학교 시절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훈련장이었다. 그때 배운 기술을 어른이 된 지금까지 사용하기 때문이다.


감정을 조절하는 성인에게서는 배울 수 없는 날것의 관계를 겪어볼 수 있는 곳이 초등학교였다. 상처받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성장이 가능했던 곳. 어린 시절 익힌 사회성은 생존 기술에 가깝다. 특히 수평적인 가정에서 자랐던 나는 권위에 고개 숙이는 태도를 초등학생이 되어서야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때때로 모난돌처럼 권위에 순응하지 못하고 튀어나가기도 했다. 아직 미숙한 초등학생이었던 탓이다. 포기하지 않고 단련한 끝에 어느 순간부터는 권위에 순응하는 예의 바른 태도를 익혔다. 어린 시절의 시행착오 속에서 길러진 기술 덕분에 호의와 적의가 뒤섞인 세상을 큰 일 없이 살아내고 있다.


그 시절 배운 것들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때때로 배움을 하나씩 꺼내 기억을 되새김질한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진 않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돌아가는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건 아니다.

기본을 지키며 섞여 있는 한, 나는 나대로 살 수 있다.

누구나 호의와 적의가 뒤섞인 세상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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