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안다

by 오우

한때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라 자부했다.

학창 시절 친구들의 고민을 수집했던 나는, 아파트 단지 안의 작은 책방 같았다. 책방에 쌓이는 고민은 풋풋한 연애사, 진로, 사소한 고민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듣다가 지칠 정도로 끊임없이 같은 고민을 하소연하는 이가 있었다. 그때는 넘치는 에너지로 오뚝이처럼 일어나 밀려오는 하소연을 소화했다. 지금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탄력성을 지닌 나이였다.


힘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해결책을 내어주어도 다시 같은 문제로 찾아오는 친구를 보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좌절감이 밀려왔다.


그 시절 감정의 쓰레기통이라는 말을 알았다면, 귀를 내어주는 일에 경계가 생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사람은 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같은 고민을 반복해서 듣고 고민을 해결할 방법을 계속해서 찾으려 애썼다.

힘들어도 옳은 일을 했다는 도덕적 우월감에 취해 나를 갉아먹는 일을 반복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가 말했다.


“나는 해결책을 원하는 게 아니야. 그저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갑자기 머리가 맑아졌다. 그동안 해결책이라고 제시했던 모든 일이 친구에게는 전혀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굳이 내 일처럼 감정을 써가며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을 필요는 없던 것이다. 상대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구나.

그 순간 깨달았다. 나는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친구와 함께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일 뿐이다.

그걸 깨달았다고 같은 고민을 반복해서 들어줄 인내력은 없었다. 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신, 함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부과하는 사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은 귀를 아낀다. 무작정 내어주지 않고, 에너지가 닿을 곳을 고른다. 누군가에게는 야박해 보일지라도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변해야 했다. 그것이 젊은 날 감정을 쏟아붓고 얻은 깨달음이다.


귀는 무한하지 않다. 마음도 무한하지 않다.

자신을 지켜야 마음 안의 친절을 남길 수 있음을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