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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더헛 Mar 18. 2022

아빠가 물려준 유산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가족과 TV 앞에 둘러앉아 와인 한잔하며 한껏 기분을 내고 있었다. 

아빠가 물었다. "OOO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당시 선대위를 사퇴했던 정치인을 언급하며 나에게 의견을 물었고 아빠는 곧바로 다시 이어 말했다. "OOO이 누군지도 모르지?" 난 잠시 멈춘 채로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기분 좋은 크리스마스 이브에 정치 관련 질문을 받는게 싫었고 그 질문을 하는 속뜻을 알 수도 없었다.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이어 나의 무지를 전제로 놓고 다시 한번 재차 확인하는 듯한 질문도 싫었다. 그냥 넘어가려다 아빠에게 나의 감정을 피력하고 싶어 이야기했다. "난 아빠가 그렇게 나의 무지를 깔아놓고 이야기하는게 싫어." 


그렇게 설전은 시작되었다. 아빠는 아빠 당신과 꼭 닮았다며 나의 단점들을 끄집어 언급했고 아빠에 대한 그리고 나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에 맞서 나는 반격했다. 난 아빠의 DNA를 많이 가지고 태어나 아빠를 닮은 것이지 아빠 그 자체는 아니다. 아직 나의 가능성을 믿고 내 장단점을 알고 있으며 아빠보다 진취력이 강하다. 내 인생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말하지 말아 달라. 


말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고 눈두덩이가 뜨거워졌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기 때문도 정말 내가 말하는 대로 믿고 있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저 그렇게 말함으로써 본능적으로 나를 방어하고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내가 말한 대로 정말 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아빠에게 말했다. 나를 깎아내리지 말아 달라고 그저 나를 믿고 아빠 딸인 너는 할 수 있다고 응원해달라고. 내가 원하는 건 정신적인 서포트, 그것밖에 없다고. 아빠는 그게 안된단다. 주머니가 비어있어서 먹고 사는게 어려워서 정신적인 응원을 해줄 여유가 마음에 남아있지 않단다. 


그 순간 경제적 지원을 해달라는 부탁도 아닌 정신적인 응원을 달라는 요청을 거절한 아빠에게 분노가 일었다. 내가 유학을 보내달래 대학원에 가고 싶대. 가끔씩 손에 쥐여주는 용돈 10만원보다 난 그냥 날 응원해주는 든든한 아빠가 필요한건데 말이다. 동시에 슬프고 애처로웠다. 딸에게 정신적인 서포트를 줄 여유가 없을 정도의 힘든 삶은 어떤 것일까. 그 무게는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정신적 지지를 해줄 여유가 없다는 말을 내뱉었을 때의 아빠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유퀴즈에서 어떤 질문을 들은 적이 있다. 


"시공간을 초월해 누군가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면 누구에게 어떤 말을 하시겠습니까?" 


시공간을 초월해 건너갈 수 있다면, 그곳에서 누군가를 만나볼 수 있다면 난 어렸던 아빠를 만나보고 싶다. 아빠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싶다기보다 지금보다 더 반짝였을 눈가에 생기가 넘쳐났었을 아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싶다. 아빠에게도 나 같은 때가 있었을 것이다. 삶이 가능성으로 충만했던 시절이 있었을 거고 하고 싶은 일들이 넘쳐났을 것이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무서워했다고 한다. 하고 싶은건 따로 있었지만 경제적 지원을 받을 만큼의 집안 여력도 안되었고 불호령 내리시는 할아버지 말씀이 무서워  정해진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고 한다. 


가만히 상상해본다. 내가 그 시절의 아빠를 만나 아빠의 아빠가 되어주었다면 그래서 아빠에게 긍정적 사고를 심어주며 넌 할 수 있다고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고 격려해주었다면 아빠는 지금 핀 꽃보다 더 밝은 꽃을 피울 수 있었을까. 그렇게 아빠가 좋은 기운을 받아 삶을 잘 일궈내어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다시 나에게 되물려줄 수 있었을까. 


할아버지가 무서웠다던 아빠는 나에게 과연 무엇을 물려주었을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아빠는 경제적 여유를 차치하고 나에게 인생 선배로서의 조언, 이를테면 어떻게 살아야만 나의 중심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는지, 어려움이 닥쳐올 때는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간접적으로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변함없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주는 버팀목 같은 아빠는 바랄 수도 없었다. 난 그저 알에서 태어난 새끼 새가 스스로 나는 방법을 깨우쳐야 하듯 세상과 부딪히며 사는 법을 알아서 터득해야 했다. 


나를 향한 응원이 어렵다면 아빠의 인생 가치관이나 아빠가 생각하는 올바름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었지만 그것 또한 말처럼 쉽지는 않았다. 아빠는 대화 중 아빠의 사상에 반하는 견해를 쉽사리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건 아니지'라는 눈빛 가득한 얼굴을 하곤 했다. 우리의 대화는 쉽지 않았고 일단 대화를 시작하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언제나 높아지는 언성으로 끝이 났다. 


그렇게 난 아빠가 나에게 무엇을 물려주었냐며 고개를 빳빳이 들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상하게 허리디스크로 일을 그만두고 쉬면서 아빠의 이면의 감정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그토록 보이지 않던 그 이면이 말이다. 그 이면의 감정들은 고집스러운 나의 생각을 조금은 바꾸어 놓았다. 그 바뀐 생각은 ‘아빠는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았다’라는 것. 생각 자체에 오류가 있었다. 새끼 새는 스스로 비행을 시작하기 전까지 어미새 혹은 아비새가 튼 둥지에서 알을 까고 그들이 물어다주는 먹이를 먹고 자란다. 바로 그것이 내가 간과했던 부분이다. 


성적향상 한번 없이 그래도 나는 과외를 받고 있다는 위안을 받으며 철없이 가방만 들고 다녔던 수학과외도 고3 졸업하는 그날까지 건너뛴 적이 없었고 간혹 그의 주머니에 들어오는 작은 선물이나 여윳돈은 모두 내 차지였다. 대학시절 해외인턴을 가겠다는 딸을 위해 그는 아무말 없이 작은 목돈을 마련했으며 취업하기 전까지 내가 먹은 음식, 입은 옷, 살던 집은 말할 필요도 없다. 배우고 싶은게 있다는 딸의 말에 뭐가 배우고 싶냐, 학원비가 얼마냐 물어놓고 꽤나 비싼 학원비에 지원해주기 어려워 조용히 자리를 피했던 그다. 그렇게 딸이라면 뭐든 해주고 싶었던 그다. 


'너는 으레 그럴 수 있니?'


나에게 조용히 물어본다. 나에게 자식이 있다면 앞뒤 생각 않고 나 아닌 자식을 위해 두말할 것 없이 그럴 수 있는가. 당신은 버스를 타고 다녀도 딸은 추운 날씨에 떨고 다니지 말라며 택시비를 주머니에 넣어줄 수 있으며 당신은 라면으로 점심을 때워도 딸은 먹고 싶은거 먹고 다니라며 용돈을 쥐여줄 수 있는가. 과연 세상 모든 부모가 그러한가.


정말 아무것도 물려주지 않았다면 난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아빠가 해주고 싶었던 말을 두 귀를 모두 닫고 듣지 않은 채 왜 아빠는 나에게 아무런 인생 가르침도 주지 않냐며 억지를 부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난 어리석게도 이것을 깨닫기까지 30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아빠에 대한 감정이나 생각은 정리가 되지 않은 채 복잡미묘하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깨달았다. 아빠는 나에게 아빠의 모든 것을 물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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