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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더헛 Mar 02. 2022

우리 집엔 미운 예순 살이 산다

예순 살의 사춘기


 우리 집엔 미운 예순 살이 산다. 다른 집에는 미운 네 살, 다섯 살이 산다고 하는데 우리 집에는 만년 사춘기인 미운 예순 살이 있다. 이 별칭은 그를 미운 예순 살로 바라보는 엄마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그의 다른 이름은 나의 아빠. 아빠의 미운 예순 살 행태는 주로 엄마와 함께 있을 때 일어난다. 


어느 주말 오후.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가 엄마 옆으로 다가왔다. 


"뭐 먹을거 없어?"

"조금 전에 밥 먹었잖아. 무슨 먹을 걸 또 찾아."

"입이 심심해."

"맨날 먹을 궁리밖에 안하지?"


아빠가 겸연쩍게 웃으며 엄마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왜이래, 하지마."


그때 멈췄어야 했다. 한 번만 하고 멈췄어야 했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사춘기 아빠의 장난기가 발동했다. 


"슉, 슉, 슉슉 슈욱--"


아빠는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안고 입으로 슉슉 소리를 내며 엄마의 빈틈을 찾아 찌르기 시작했다. 


"하지말라고 했어. 세 번째는 말로 안해. 응징 들어간다."

"슉슉 슉슉 슈욱--"


'좀 있으면 한 대 맞을거 같은데....' 옆에서 티비를 보고 있던 나는 불길한 징조가 느껴졌다. 

일순간 엄마가 한쪽 다리를 번쩍 들어올렸고 아빠는 깜짝 놀란 표정과 함께 뒤로 물러났다. 


"어후 무식하기는! 어디를 차!"

"내가 세 번째는 말로 안한다고 했지?"

"어우쒸!"


그렇게 미운 예순 살의 장난은 일단락되었다.


아빠의 사춘기 행태는 술과 관련된 행동에서도 나타난다. 우리 아빠로 말할 것 같으면 1일 1캔 혹은 1병을 해야 장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약 먹는건 이틀에 한 번씩 잊어버려도 술 마시는건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반면 엄마는 아빠가 매일 술 마시는 모습에 진절머리 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술을 사이에 놓고 아빠와 엄마가 벌이는 설전이나 보물찾기 게임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일 오후였다. 엄마가 아빠의 고정석인 컴퓨터 자리로 가더니 빈 맥주캔과 소주병을 치우고 무언가 찾기 시작했다. 바로 아빠가 숨겨놓은 보물들. 에어컨 뒤, 창고 안, 찬장 뒤 등 아빠가 숨겨놓은 소중한 술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어쩜 그리도 발견하기 쉬운 장소에 술들이 '나 여기 있소'하며 떡하니 있는지 아빠는 제대로 숨길 마음이 있기나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아빠의 사랑인 그 아이들은 너무나도 쉽게 발견되어 모두 엄마의 손에 처분되었다. 아빠는 정말 모르는걸까. 집안에 숨기면 그 장소가 어디가 되었든 엄마 손바닥 안이라는걸. 만약 나라면 차라리 차 트렁크 안에 숨겨놓았다가 먹을 때마다 한 병씩 꺼내올텐데 말이다. 


이틀 뒤 술이 사라진 걸 알게된 아빠는 엄마가 어디에 숨겨놓았냐며 온 집안을 뒤졌지만 엄마가 진절머리 나는 술들을 따로 보관해 놓았을 리가 만무하다. 술은 이미 쓰레기통으로 떠난 후였다. 아빠는 뜯지도 않은 새 술들이 고스란히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는 사실을 알고 탄식했고 현재는 그날그날 마실 술들만 사온다. 그렇게 아빠엄마의 보물찾기 게임은 중단되었다.




아빠가 매일 미운 예순 살인건 아니다. 미운 예순 살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마냥 밉기만 한 날들도 많은가 하면 정반대로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를 자처하며 온갖 다양한 요리를 해서 밖에서 사먹는 음식이 부럽지 않게 한다. 우리 아빠는 예전부터 그런 사람이었다. 남들이 흔히 말하는 딸바보 아빠는 아니지만 당근마켓을 홍당무라고 부르는가 하면 식사 때는 음식을 여기저기 흘려 엄마가 이 정도면 턱받이 해줘야 하는거 아니냐고 해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하기도 한다. 스무 살 초반 처음 알바로 일했던 음식점에서 모욕적인 말을 듣고 집에 와서 울었을 때 음식점에 전화해 불같이 화내던 때도 있었다. 때로는 분노조절장애인가 싶을 정도로 한 번 화가 나면 제어가 안돼서 고함을 지르고 물건을 던지는 날도 있다. 아빠 자신에 대한 걱정만큼 나라 걱정이 많은 전형적인 60대이기도 하다. 난 재밌고도 미운 아빠를 두고 있다. 


그런 아빠를 미워하자고 마음먹고 죽어라 미워했던 때가 있었다. 당신의 생각을 강요하는게 싫었고 "넌 그거 모르지?"라는 말로 시작하여 무시를 기본적으로 깔아놓은 상태에서 대화를 하는게 불쾌했다. 성이 나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큰소리치는 모습은 날 너무도 창피하게 했고 아빠의 기분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왔다갔다 하는게 지겨웠다. 그런데 그런 아빠도 이빨이 하나둘씩 빠지나 보다. 지금도 집안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소리를 지를 때가 있지만 호랑이였던 아빠는 고양이가 되었다. 참 이상하다. 어릴 적 내 유일한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빠가 내 모든 잘못과 실수를 매질과 고함으로 귀결시켰던 아빠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은 도통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 보기 싫기까지 하다. 아빠에게서 또 다른 내가 보이기 때문일까. 아님 아빠의 서글퍼 보이는 그 모습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기 때문일까. 


학생 때는 20대가 되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고 20대 때는 30대가 되면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겠지 했다. 30대가 된 오늘 지나간 30년을 반추해보면 난 한 번도 아빠를 이해했던 적이 없었다. 여전히 나에겐 불가사의한 존재인 아빠지만 곰곰이 되짚어보면 알 것 같기도 하다. 아빠를 놀리는 우리의 말장난에 허허실실 웃으며 넘어가기도 하고 밖에서 속상한 일을 겪고 들어왔을 때 대신 격렬히 화를 내기도 한 아빠는 적어도 아빠의 방식대로 나를 사랑해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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