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6월 허리디스크가 심해져 일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8월 중순 여기저기 병원을 다녔지만 정확한 진단을 위해 한 대학병원에 방문했다.
8월 13일 금요일
"지금 상태에서 통증이 더 심해지면 이제 남은 건 수술밖에 없는데 아직 젊기 때문에 권하지는 않아요.
수술을 하게 되면 일반 디스크수술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들 허리에 철심 박는 것처럼 하는 큰 수술이 될 거예요."
"좋아질 수는 있을까요?"
"여기서 좋아질 수는 없어요. 현상 유지하는 정도에요."
삐이----------------------------------
디스크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진단을 받기 위해 찾은 대학병원에서 예기치 못한 벼락을 맞았다.
심전도 모니터에서 경보음이 울리듯 내 머릿속에도 경보음이 울렸다. 디스크가 작년보다 안좋아졌다는 건 다른 병원에서도 듣긴 했지만 이렇게 절망적인 이야기는 처음 전해 들었다.
별일 아니다 나만 겪는 디스크가 아니다, 더 안좋아졌다고 인생이 벼랑 끝으로 몰린 건 더더욱
아니다 라며 스스로 다독이며 진료실을 나왔다. 하지만 결국 5분도 버티지 못한 채 눈물샘이 터지고 말았다. 눈앞이 캄캄했다.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될 병을 선고받은 것도 몸의 일부를 도려내야 한다고 들은 것도 아닌데 하릴없이 눈물만 흘렀다. 그렇게 꼬박 하루는 눈물로 보낸 것 같다.
이제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마라톤이 시작되었다.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고 천년만년을 병상에서 보낼 것도 아니지만 누워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으면 두려움이 몰려오는 순간들이 있다.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내 시간만 정체된 기분,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 끝이 안보이는 터널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은 공포.
우울한 기분은 주위 사람에게도 빨리 전염되지만 우울한 기분에 손끝이
조금이라도 닿으면 금세 나의 온몸에도 번져버린다.
그래서 삽시에 온몸에 번져버리기 전에 드라마를 보고 크게 웃으며 기운을 바꿔버린다.
우울의 전염이 빠른 만큼 웃음의 전염성도 빠르다. 천변을 따라 걸으며 라디오를 듣는다.
라디오의 DJ가 재밌게 이야기를 하다가 박장대소를 하니 나도 모르게 따라서 배시시 웃고 있다.
하늘을 바라보니 나의 걱정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높고 파랗기만 하다.
그래, 아직 끝난게 아니다.
야구도 9회말까지 승부를 알 수 없지 않은가.
내 인생에 빨간 불이 이제야 막 하나 들어온 셈이다.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
우울이 나를 지배할 수 없도록 디스크가 나를 더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갈 수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