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더헛 Feb 18. 2022

척추협착은 오진이었다


대학병원에서 들었던 척추협착이 아니란다. 수술을 하게 되면 철심 박는 큰 수술이 될거라는 말도 잊어버리라고 하신다. MRI상으로는 목디스크 소견도 없다고 한다. 오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 성모마리아님 정말 감사합니다!





작년 대학병원에서 척추협착 오진을 받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 다시 재진단을 받았을 때의 일이다. 


대학병원에서 그 말을 들은 날의 절망감을 잊을 수 없었고 믿을 수 없었던 나는 좀 더 정확한 진단이 필요했다. 내 허리에 정말 척추협착이 있는지 그래서 빨리 퇴행되고 있는지 두려움과 의구심이 함께 밀려들었다. 그 와중에 목디스크가 의심되는 증상들도 보이기 시작했다. 두려움은 배가 되었고 "당신은 척추협착과 목디스크가 맞습니다. 탕탕탕" 명확하게 말해줄 명의가 필요했다. 


2022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가을, 의심으로 가득 차있는 내 속을 시원하게 뻥 뚫어줄 의사선생님을 찾다가 세브란스에서 진료를 보시는 한 분을 발견했다. 강남세브란스에 예약날짜를 찾았지만 내년 3월까지 기다려야했고 폭풍 검색 끝에 같은 선생님이 용인에서도 진료를 보신다는 글을 읽고 바로 용인세브란스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예약이 가능한 가장 빠른 날짜는 11월 25일. 할렐루야다. 


진료보기 전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서 MRI를 다시 찍었다. 나를 오래 봐주시던 의사선생님께서는 허리협착도 없고 목디스크도 아니며 철심 박는 수술은 더더욱 안해도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었고 찝찝함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었다. 대학병원에서 들었던 말이 떠나가지 않고 머릿속에서 메아리처럼 울리고 있었다.


'척추협착이 있어서 (…) 큰 수술이 될거에요.... 척추협착이 있어서 (…) 큰 수술이 될거에요....'


진료 당일.


용인세브란스를 찾았다.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본 후 세 달 만이었다. 세브란스에 도착해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의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면접보러 온 사람 마냥 두근두근거리다 못해 벌떡벌떡거리는 심장이 몸을 뚫고 나올 것 같았고 다리는 덜덜덜 떨렸다. 대기명단에서 내 이름이 위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심장은 요동쳤고 엄마가 옆에서 뭐라고 이야기해도 들리지 않았다. 


"OOO님" 내 이름이 불렸다.


긴장감과 적막감이 동시에 감도는 진료실. 의사선생님께서 허리와 목이 언제부터 아팠는지 좌골신경통이 있는지 등 몇 가지 질문을 하셨다.


"MRI상 목디스크는 아니네요. 허리에는 병이 있긴 하지만."

"아니라고요? 심한 날에는 팔뚝까지 통증이 내려오는데요?"


의사선생님이 자기 손을 세게 잡아보라고 또 손을 밀어보고 당겨보라고 하시며 몇 가지 테스트를 하시더니 목디스크는 아니라고 하셨다.


"MRI상에서는 신경이 눌리거나 디스크가 나온 흔적이 없어요. 그런데 통증이 있다면 디스크말고 다른 각도에서 바라봐야 할 것 같네요. 재활의학과를 방문해보는게 좋겠어요." 


"아... 네, 그리고 제가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봤던 적이 있었는데 그 곳 선생님은 허리에 척추협착이 있고 나중에 수술하게 되면 철심 박는 큰 수술을 해야 될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아니에요. 여기가 신경관인데 보면 전혀 좁아지지 않았죠. 척추협착이 있다고 하더라도 현재는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될 정도고 수술에 대한 이야기는 잊어버려도 돼요." 


"척추협착이 아니라는 말씀이세요?"


"네, 아니에요." 


오진이었다. 만약 서있었다면 다리에 힘이 빠져나가 털썩 주저앉았을지도 모른다.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끝난 면접장소를 나왔을 때처럼 온몸에서 기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동시에 배고픔도 밀려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 방사통으로 힘들었지만 얼마든지 맞서줄 수 있는 기분이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긴장되었고 가장 후련했으며 생각도 많이 하게 됐던 하루다. 나에게 척추협착이 보인다고 말했던 그 선생님은 알고 있을까. 선생님의 한마디로 누군가는 3개월을 좌절과 우울 속에서 살았다는 걸. 





병원을 여러 군데 다니면서 의사라는 직업과 말()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내가 만난 의사들 중 좋은 의사도 있었지만 그중에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고 말을 내뱉는 의사부터 오진하는 의사, 실비보험이 있는지부터 물어보는 의사 등 믿음이 가지 않는 의사들이 많았다.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의사라는 직업이 그런 것 같다. 


나의 말로 환자의 대처가 달라지고 더 나아가 환자의 생명이 달려있기 때문에 함부로 희망을 주기 어려운 직업. 하루에도 수십명의 환자를 보며 비슷한 이야기를 듣고 비슷한 조언과 진료를 하는 고충이 있는 직업. 

상대의 입장에서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기보다는 환자의 상태와 객관적인 자료들로 이성적으로 진단해야 하는 직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도 환자도 모두 인간이다. 감정의 동물. 소위 치료라고 불리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를 보면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 다스려 낫게 한다는 의미이다. 허리나 목에 디스크라는 병이 있다면 그것은 단지 물리적인 병에서 끝나는 걸까. 물리적인 병이 정신적인 피폐함으로 이어지는 것은 다반사이다. 디스크뿐만 아니라 어떤 병이든 그렇다. 이때 말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의사가 전하는 긍정적인 한마디로 환자가 가진 마음의 병이 아물기도 하고 용기를 얻기도 하며 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 노력 끝에 정말 병이 낫기도 한다. 


환자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딱 1분만 할애해 그들의 감정을 들여다본다면 아니, 당신 앞에 앉아있는 그 환자가 당신의 엄마, 아빠 혹은 자녀여도 지금 말하는 방식대로 그런 메마른 얼굴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할머님들이 횡단보도 건널 때 팔만 흔드는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