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주호 Apr 22. 2024

T_145km 거리를 145km/h의 마음으로 달려서

Wild Wild Wild 31

2. T



T

J와 헤어진 바로 직후 만난 T는 탄탄하고 스마트한 조건의 사무관이었다.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갈망했던 나는 그에게 빠르게 매몰되었다. 좋은 학벌과 초고속 행시 패스라는 출중한 배경에 호기심이 먼저, J에게 없던 안정적인 직업과 끈기에 믿음이, 깔끔한 매너와 준수한 외모에 호감이 그라데이션처럼 번졌다.


나의 취향에 맞춰 두 번째 데이트로 미술관을 제안하는 그에게 호감은 무한대로 상승했다. 작품과 서로를 번갈아 보며 나눴던 대화는 사람이 똑똑하면 직업과 전공 상관없이 어떤 주제의 대화도 가능하다는 걸 깨닫게 했다. 3번의 만남 동안 세종과 서울이라는 장거리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미 나는 눈이 멀어 있었음에. 헤어지는 길에 고백 아닌 고백도 했다. 계속 연락할까요? 저는 좋은데. 저도 좋아요. 하지만 이런 설렘의 울렁거림이 잔잔해지기도 전에 T와의 만남은 결국 거리와 시간의 차를 이겨내지 못하고 종료되었다. 나랏일을 하는 그는 평일과 주말, 밤낮으로 바빴다. 서울에 올라올 수 있는 시간은 나지 않고, 마음의 여유도 나지 않았을 터. 연락조차 닿지 않는 애닳는 시간 동안 사무관, 사무관 일, 사무관 장거리, 사무관 연애…등 그와 그의 하루를 알아가려는 검색어가 쌓여 탑을 이루었다. 혼자 쌓아 올린 탑과 정리되지 못한 마음을 지고 우리는 끝났다.


그 탑을 허무는 데까지는 3번의 만남의 3배가 되는 시간, 3배가 되는 사람이 쓰였다.


T와 본 전시. 키키 스미스, 나는 들어갈 공간이 충분히 있도록 나 자신을 비워 뒀다


작가의 이전글 J _그들 이전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