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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밸류비스 박혜형 Apr 30. 2021

깨달음의 4월

아이가 학교 끝나고 집에 가기 전 놀이터에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노는 일상이 되었습니다. 유일하게 친구들과 같이 놀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해서 놀이터를 들르고 집에 가는 것은 이제 정해진 코스가 되었습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며 아이들이 쓰는 말과 행동을 자연스레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이는 저마다 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가끔 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이 있습니다.

고작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사이에서도 친구들 사이에 군림하려고 드는 아이가 있고,

놀이기구를 타는데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서 “짜증 나”라는 말을 연거푸 하며 성질을 부리는 아이도 있고,

집에 가자는 엄마에게 “내가 갈 때 간다고 했지” 하며 엄마에게 자기주장을 명확히(?)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종종 봅니다.

그런데 제가 좀 꼰대 기질이 있어서 그런 걸까요?

저는 그런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보면 불편함이 올라옵니다.

그리고 왜 부모나 아이를 케어하는 보호자는 저런 아이의 말과 행동을 저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1차적으로 놀라고, 불편한 마음이 생겼으며, 부모가 아이의 저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을 내버려 두는 것이 저를 더 불편하게 했습니다.


언젠가 옆에 앉아 있는 엄마에게 한번 물어보았습니다.

“자기는 아이한테 끌려가는 엄마인 거 같아요? 아니면 아이가 엄마가 말하면 엄마 말을 잘 따라주는 거 같아요?”

“전 제가 물러서 좀 아이한테 끌려가는 것 같아요. 쭈니 엄마는 아이한테 단호하게 잘하실 거 같아요.”

아~~ 제 이미지가 좀 강한 걸까요?

일단 쭈니는 엄마 한정 사랑이 너무 많은 아이인지라 사실 엄마 말을 너무 잘 들어줍니다. 아직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랑 한 번도 크게 뭔가 감정적 대립을 경험해 보지 못했고, 쭈니는 천성적으로 착안 아이여서 그런지 엄마가 이렇게 하자.라고 하면 보통 다 수긍하고 따라주는 편입니다. 그래서 주위 다른 엄마들에게 항상 듣는 말이 애한테 어떻게 했길래 애가 저리 순하고 착하냐고....

한편으로는 아이가 착하고 바르고 잘 커 주어서 참 감사하고 한편으로는 이 험한 세상에 저렇게 착한 마음을 가지고 다른 이들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되긴 합니다.

쭈니는 평화주의자라 뭔가 불편한 걸 싫어해서 친구들이 하자는 걸 웬만하면 다 들어주는 편인 것 같았습니다.


오늘 쭈니한테 친구들이랑 노는 건 괜찮아? 하고 물었더니

“괜찮아요. 근데, A친구가 자꾸 잡으라고 해서 힘들어요.”

엄마인 제가 볼 땐 전혀 몰랐는데 그런 말을 하더군요.

“에고... A친구가 쭈니 보고 자꾸 잡으라고 해서 힘들구나... B친구는 맨날 대장 한다고 해서 피곤하게 하고... 쭈니가 좀 피곤하겠구나...” 제가 나름 공감을 해 주었더니,

“C친구하고 노는 건 괜찮아요”

어느새 아이도 자기랑 맞는 친구가 있고 맞지 않는 친구가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면서 요 며칠 자기랑 가장 편하게 지내는 C친구가 놀이터에 오지 않아 서운해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냥 아이들이랑 놀이터에서 잘 노는 것 같아 보였는데 제가 모르는 부분도 있었던 거지요. 이렇게 아이가 또래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사회성을 키우는 것이겠지요.      




저는 왜 제가 아이들이 노는 모습에서 몇몇 아이들의 말과 행동에 불편함을 느끼는지, 왜 제가 불편한 감정을 느끼는 건지에 대해 좀 더 생각해 보았으나 딱히 그 이유를 잘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 다른 일 때문에 읽고 있던 논문에서 문화재생산이론과 관련된 용어인 ‘구별짓기’ 라는 내용을 접하며 아차 싶었습니다.


아비투스


프랑스 철학자 부르디외가 제시한 개념으로 오랜 시절 문화적 습성으로 인해 형성된 아비투스(habitus)를 통해 구별짓기의 성향이 결정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비투스는 세계나 가치 및 문화에 관해 무의식적으로 습득된 성향입니다. 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습관화된 성향이자 실천 감각으로, 성장 배경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체득된 지속적 성향이라는 것이죠.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제2의 본성, 타인과 나를 구별 짓는 취향, 습관, 아우라를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의 어린 시적부터 형성된 ‘우등생 아비투스’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엄청난 우등생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나름 상위권을 유지하며 갖는 우월감과 주변의 기대로 인해 형성된 ‘우등생 아비투스’가 자존감을 높였고, 사회생활을 하면 저 비서실에 있다 보니 자연적으로 이런 습성은 더 높아져 갔고, 제가 속한 조직에서 더 나은 위치를 찾아가게 하고 더 많은 성취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를 만드는 근원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름이 살짝 끼쳤습니다. 그리고 제가 프리랜서로 나오면서 경험했던 삶의 딜레마의 실마리가 살짝 풀리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한 아이의 엄마, 아내, 며느리, 딸, 밸류비스 대표로, 공동협업 대표로 제가 가지고 있는 많은 역할과 현실적인 삶과 꿈을 좇는 이상적인 삶 사이에서 갈등하며 딜레마 속에 있었던 지난 몇 년간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멈추지 못하는 삶 속에서 우주가 잠시 멈춰 가라고 저에게 건강의 적신호를 선물해 주셔 다행히 잠시 멈춰서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 참 저 자신에 대해, 아이를 통해서 깨닫게 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그 깨달음을 제 삶에 적용할 수 있을지, 행동하는 자가 되어야 생각 되는 4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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