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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기 Jan 18. 2019

1년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글쓰기를 거의 멈췄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부를 막 엄청 열심히 했다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추호도 그런 일은 없었다. 가장 열심히 공부를 했어야 할 지난 1년 동안, 나는 다른 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놀았다. 별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냥 공부가 싫었고, 노는 게 좋았다. 그게 다다.

    당연히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수능 성적이야 당연히 잘 안 나왔고, 꽤 기대를 하셨던 부모님의 실망이 어느 정도 일지는 가늠하기도 힘들다.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도, 왜 이곳에 글을 올리는 지도 이젠 잘 모르겠다. 처음 이곳에 글을 올릴 땐 마음속이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엄청나게 설레는 마음으로 한 글자, 한 문장을 채워나갔다.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글을 쓰는 게 재미없는 건 아니지만, 예전만큼의 기쁨을 느끼진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 내 글을 좋아해 주면 정말 기뻐했다. 지금도 누군가 내 글이 좋다고 말해주면 기분이 좋지만, 예의상 하는 말은 아닐까 하는 의심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신감의 상실과는 다르다. 그냥 내 현실을 깨달은 거 같다.

    나에게는 재능이 없다. 노력도 없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일이, 내 장래나 진로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애초에 재능이 없으면 노력이라도 해야 하는데, 귀찮아서 그냥 노는 주제에 무슨 욕심을 가질까. 이젠 글을 써서 무언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가짐도 없다. 그냥 쓸 뿐이다. 정말 아무 생각도 없이, 개요를 짜지도 않고, 퇴고를 하지도 않고 그냥 막 글을 쓰고 있다. 한 문단을 넘길 때마다 맞춤법 검사를 할 뿐이다.

    정말 처음과는 달라졌다.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이 브런치라는 사이트에서 무려 '작가'라는 걸맞지 않은 칭호를 얻고 나서였다. 지금도 꿈을 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제 내게 글쓰기는 단순한 취미가 되었다. 그래서 누가 내 글을 두고 별로라고 하든 말든 이젠 신경 쓰이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더 잘 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같은 고민을 집어치운 지 1년이 넘었다.

    편안하다. 아니다, 편안하진 않다. 집안의 분위기는 언제나 개 같다. 공부를 안 한 것도 나고, 수능을 못 본 것도 나이기 때문에 부모님이 어떤 말을 해도 나는 할 말이 없다. 집에 있는 것보단 밖에 있는 게 더 편안할 지경이다. 수능을 못 본 게 그다지 슬프다거나 화가 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내 선택에 의한 결과인 걸. 다만 후회는 한다. 조금만 더 공부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욕을 처먹진 않았겠지. 이렇게까지 마음 졸일 필요는 없었겠지 하는.

    진부한 표현이지만, 바깥에는 적막만이 감돈다. 벌써 새벽 4시 가까이 됐으니 당연하다. 어둠 속을 보고 있으면 꼭 주변도 어둠으로 물드는 것만 같다. 분명 내 앞엔 노트북 스크린의 빛이 있는데도, 어둠을 보고 있으면 어둠이 바로 옆에 와 있다. 그것과 하나가 돼가는 것 같다. 마치 어두운 껍질들이 나를 감싸는 것 같다. 창 밖의 하늘엔 이미 그런 껍질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저 껍질들을 한 겹씩 벗겨내면 하늘이 제 색을 드러낼까? 어쩌면 그냥 먼지 색깔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어제나 엊그제처럼.

    모든 껍질을 벗겨냈을 때, 태양의 오렌지빛과 새벽의 창백한 하늘빛이 어우러져 도저히 한 단어론 설명이 힘든 그 빛깔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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