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인쇄소
S#1. 감리 일정 :
인쇄감리를 오랜만에 하루를 꼬박 쓰고 왔다. 아침 9시 30분까지 와주세요. 파주에 있는 인쇄소 담당자가 문자를 보내줬다. 아침 9시 30분이면 출근 시간과 애매하게 겹치는 시간이다. 아침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피곤하다. 피곤한 몸을 끌고 커피를 한잔 사 들고 가려고 했는데 인쇄소에 가져갈 것 챙기느라 늦장을 부려 커피는커녕 빨리 가야 했다. 자유로로 속도 좀 내면서 달려서 겨우 9시 30분에 도착했다. 그리고 하필 비 오는 날이라니... 인쇄할 때 비 오는 날은 별로 안 좋다. 종이가 날씨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이다. 비 오는 날, 습한 날, 추운 날은 피하는 게 좋지만, 일정도 있고 감리 시간도 맞추려면 궂은 날씨는 어쩔 수 없다.
S#2. 감리실 :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도착했어요~ 담당자님이 오셔서 감리실로 안내해 준다. 책상에 의자가 있는 감리실 기장님이 인쇄물 색을 맞출 동안 기다리는 대기실이다.
인쇄소마다 대기실이 다 다르다. 대기실을 감리실이라고 하는데 감리실(대기실) 방이 따로따로 있어서 다른 감리 보러 오는 사람과 얼굴을 맞닿고 있을 필요가 없는 곳도 있다. 대기실이 하나밖에 없어서 여러 출판사, 디자인업체 등등 같이 얼굴을 보면서 기다려야 하는 곳도 있다.
오늘 보러 온 인쇄소는 그나마 좋다. 방이 여러 개라 한 곳을 혼자 쓰고 있다. 책상 한 개 의자 다섯 개가 있는 방이다. 그리고 내선 전화기 한 대가 있다. 내선 전화기는 기장님이 인쇄 색상을 맞추면 전화가 온다. 내선 전화기 없는 곳은 부기장님이 직접 오셔서 인쇄 보러 오시라고 말하기도 한다.
S#3. 실수 :
전화 너머로 기장님이 오시면 됩니다 말하면 기장님이 계신 인쇄 기계 있는 곳을 간다. 인쇄물을 보면서 색상이 잘 나왔는지? 잉크 농도는 괜찮은지? 인쇄물에 뭐가 묻어있는지 확인한다. 오늘의 실수는 나였다. 젠장 그렇게 수시로 봤는데... 정말 하루라도 사고가 안 나면 이상한가? 할 정도로 뭔가를 실수한다. 인쇄물에 먼지 비슷한 게 묻어 있었는데 데이터에서부터 들어간 것들이었다. 기장님께 이런 부분을 지울 수 있는지 물어보았더니 기장님이 시간이 걸리지만 지워야겠죠? 하시길래. 지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지워주셨다. 이렇게 현장에서 잘못된 부분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인쇄물이 잘 나올 수 있도록 진행할 수 있다. 대수마다 점 같은 부분이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기장님이 알아서 찾아주시면서 지워주셨다. 이럴 때 기장님을 처음 뵙지만, 꼼꼼히 봐주는 기장님을 만나면 행운이다. 오히려 나보다 꼼꼼하셨다.
/궁합
아무리 잘하는 곳에서 인쇄해도 오늘 하루 내 인쇄물을 잘 찍어주실 기장님을 만나는 확률, 그날의 상황, 디자이너의 실수, 날씨, 기계 상태, 잉크의 배합, 뒷묻음 등에 따라 인쇄물이 잘 나오고 안 나오고 가 있다. 오늘은 날씨와 디자이너의 실수가 문제였다. 하지만 디자이너의 실수는 기장님이 잘 정리해 주셨다. 그리고 날씨를 예민하게 보는 이유는 종이의 상태 때문이다. 비가 많이 오는 날은 습하기 때문에 인쇄를 하거나 용지를 옮기게 되면 앞면 인쇄 후 뒷면 인쇄를 할 수 없거나 핀을 맞출 수가 없게 된다. 다행히 뒷면 인쇄를 할 때 기장님이 능숙하게 잘 맞춰주셨다.
/총 소요 시간
아침 9시 30분에 와서 12시까지 쭉 감리 보고 인쇄소가 12시 20분~1시 30분까지 점심시간이라 점심 먹고 와서 다시 이어서 봤다. 모든 대수를 보는 감리라서 1년에 한 두번 있는 일이다. 기장님도 나도 서로 피곤하지만 그래도 기장님이 꼼꼼히 봐주셔서 작년보단 좀 빠르게 진행하고 있지만 그래도 시간은 걸렸다. 4시에 끝났다. 회사에 도착하니 5시였다. 8시 30분에 출발해서 5시 도착이면 8시간 30분을 인쇄소에 시간을 소비한거다. 감리를 안 보면 금방 끝날 인쇄물을 전 대수를 다 보니 인쇄소 입장에선 우리가 좋은 업체는 아니다. 그래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잘 봐주셨다.
S#4. 감리 마무리 :
감리 끝나고 나서는 기장님과 부기장님에게 잘 찍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감리했던 인쇄물도 챙긴다. 그리고 담당자에게도 인사를 드리고 회사로 돌아와 회사 직원분들에게 인쇄물을 보여주면서 인쇄감리는 마무리가 된다.
가져온 인쇄물은 버리지 않고 다음 인쇄를 위해서 화일처리하고 메모해둔다. 날짜, 인쇄소, 용지사양, 인쇄사양 정도만 적어두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