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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못된고양이레오 Oct 12. 2022

E09. 비긴어게인의 끝에서 라라랜드를 회상하며

비긴어게인, 원스, 싱스트리트, 라라랜드

시간을 다루는 예술에는 추억을 저장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음악이 있지요

'어떤 음악을 들으면 어떤 때가 떠오른다' 같은 이야기는

모두가 하나쯤 가진,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보편적 경험이죠


또 다른 예로는 계절을 상기시키는 음악들도 있습니다

너무도 뻔한 예시지만 '벚꽃 엔딩'이나 '봄이 좋냐' 같은 음악이 있고,

Earth Wind & Fire의 'September' 같은 음악이 있습니다

연말의 캐럴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와 비슷하게 계절을 대표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개인적인 감상이기에 공감하지 않을 수 있지만

가을의 끝에 선 지금, 음악 영화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가을' 하면 떠오르는 영화들은 다양하지만,

음악 영화 중 가을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는 '비긴어게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제목, '다시 시작한다'는 의미에 있어서도 가을 만한 계절이 없지요

모든 열매를 맺은 후 색 바랜 잎을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운 시작을 다시 준비하는 계절이니까요

그래서인지 비긴어게인이라는 제목, 포스터, 스틸컷만 보더라도 가을이 떠오릅니다


음악 영화가 좋은 점은 그 영화의 내용을 온전히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당시의 감상을 음악으로 떠올릴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줄거리나 주제에 대해 100% 기억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어떤 감정으로 보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음악을 통해 회상할 수 있죠

그렇기에 음악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장르로 자리 잡을 수 있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니 음악이 없는 영화는 거의 없기에 음악 영화라는 이름이 새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음악을 주 소재로 한 영화들을 음악 영화라 생각하면 되겠죠


'비긴 어게인'에서는 두 가지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실 서로의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며 타임스퀘어를 거니는 장면,

그리고 위의 옥상 녹음 장면이죠


특히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 그 사람을 파악할 수 있다는 대사와

서로의 음악을 공유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장면은 이 영화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저들이 사용하는 것은 분명 디지털 기기이지만, 아날로그 감성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길거리 녹음 장면은 왠지 누군가 개 짖는 소리에 대한 불만을 외칠 것만 같지만,

예상외로 잘 진행되어 마음이 편안해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실제로 길거리 녹음을 한다면 온갖 잡음과 노이즈로 사용 못 할 음악이 되었겠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모습이 인상 깊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클럽에서 노래하는 여주인공의 모습에 편곡 악기를 끼얹는 장면도 인상 깊었고

유명해진 남자 친구의 음악에서 다른 연인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하는 장면 또한 인상 깊었습니다

두 장면 모두 음악이 가진 힘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비긴 어게인은 새로운 시작을 노래하는 영화입니다

꿈에 대한 도전, 새로운 친구, 가족 간에 화합, 그 어떤 시작이어도 좋습니다

이 영화는 모두의 재시작을 응원하니까요



'겨울'의 영화는 '원스'입니다

배우들이 입은 옷만 보더라도 겨울! 하고 외치고 있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 길거리 공연의 차가운 기운마저도 화면 밖으로 전달해져 오거든요

그 찬 공기와 분위기뿐 아니라, 사람들의 무관심까지도요


이 영화는 모르더라도 'Falling Slowly'라는 곡은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기타를 한 번이라도 잡아보신 분이라면 꼭 한 번 거치게 되는 입문곡으로도 유명하죠

이 곡만 생각하고 막상 영화를 보게 되면 조금은 당황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곡의 분위기와는 다르게 시작하고 상당 시간 동안은 차가운 길바닥의 느낌만 전해져 올 테니까요



하지만 영화가 진행되면서 겨울의 따뜻함을 다시 떠올리게 될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겨울은 의외로 따스함의 계절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원스'의 음악은 추운 겨울, 실내에서 맞이하는 따뜻한 차 한잔과도 같습니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인디 음악을 떠오르게도 합니다

버스킹에서 인연을 만나, 창작으로 이어지고, 그 열정이 녹음으로 이어지는 과정

그 전체가 마치 인디 음악의 시작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카메라가 흔들리는 촬영 방식이나, 길거리의 소음까지 녹음된 사운드 등도 그러한 느낌을 배가시키는 요인이었겠죠


비록 개봉한 지 조금 된 영화이고, 다소 낡은 분위기가 요즘의 영화와는 다르긴 하지만

'원스'만의 분위기와 음악만큼은 대체 불가하기에 음악 영화를 좋아하신다면 꼭 한번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싱 스트리트'는 '봄'의 영화라 하겠습니다

처음 음악을 시작하는 이 젊은이들의 모습이 봄의 초록을 닮았거든요

배우들의 착장 또한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모습이라 더 그렇게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음악을 비롯한 예술의 가장 순수한 동기는 이성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 영화에서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던 것처럼요

인류의 예술 욕구의 시작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봅니다



'싱 스트리트'는 주인공들의 순수함과 성장을 그리는 영화입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과 달리 차가운 현실은 그것만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죠

배경적으로는 아일랜드의 경제 위기와 청년 실업과 같은 암울한 상황을 반영했다고 하는데

그러한 배경을 모르고 보더라도 음악만이 유일한 탈출구인 주인공의 상황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습니다


암울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장면은 이들이 성장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임을 보여주며 희망을 얘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특히 이 영화에서는 수많은 명곡들이 기억에 남는데

'Up', 'Drive It Like You Stole It', 'To Find You', 'A Beautiful Sea' 같은 음악들이 그러하죠

각각의 음악을 제작하게 되는 배경과 작곡의 방법, 곡의 분위기를 매칭 시키며 감상하면 특히 더 좋을 거예요


추운 현실 속에서도 따뜻한 희망을 노래하는 영화이기에 '봄'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라 생각했습니다



'여름' 하면 떠오르는 영화는 '라라랜드'입니다

햇살의 색감만 보더라도 이미 오렌지 빛의 여름이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두 주인공의 음악과 삶에 대한 열정이 여름의 특성과도 같아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는 뮤지컬로 시작해 재즈로 끝나는 독특한 영화입니다

쉽게 나누자면 여주인공은 뮤지컬을, 남주인공은 재즈를 끌고 가죠

특히 스토리를 엔딩으로 이어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재즈라 생각했습니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에서 변주를 이어가면서, 텐션과 릴랙스를 반복하는 영화였으니까요


오프닝 신의 하이웨이 뮤지컬 장면은 음악 영화 오프닝 중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었습니다

그리고 타이틀 컷에서 끊지 않고 바로 대사로 이어지게 만든 짜임새 또한 인상 깊었고요

영화의 시작에서부터 '제대로 된 쇼를 보여줄게'라고 대담하게 외치는 것 같았습니다


'Someone in the Crowd'는 색감을 멋지게 대비해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고,

'A Lovely Night'은 남주인공과의 관계 발달을 뮤지컬과 탭댄스를 통해 유쾌하게 보여주었습니다

'City of Stars'는 시간의 흐름과 관계의 변화를 재즈 피아노의 변주로 보여주기도 했죠

'라라랜드'는 영화 그 자체의 재미뿐 아니라 음악의 사용 방식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라라랜드'의 OST는 지금도 종종 찾아 듣는 훌륭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하나하나 버릴 곡 없이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곡들을 뽑자면

'Audition (The Fools Who Dream)'이라는 제목의 엠마 스톤의 독백에서 이어지는 곡이 기억에 남습니다

말하듯 이어나가면서도 감정을 실어 뮤지컬 독백 한 장면을 잘 구성해 냈죠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인 천문대 장면에서는 두 주인공의 테마곡인 'Mia & Sebastian's Theme'을 왈츠로 편곡하여 들려주는데요

마치 무성영화를 보는 것처럼 대사 한 마디 없이 춤과 과장된 행동으로만 둘의 감정을 표현하다가

마지막은 옛날 영화처럼 원형 조명을 잡으며 넘어갑니다

훌륭한 편곡과 연출이 잘 어우러져 이 영화 최고의 장면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너무도 성공한 영화이기에 많은 분들이 관람하셨고, 그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삶이라는 쇼’를 표현하는 듯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반복과 변주의 재즈를 연주하기도,

화사하고 아름다운 왈츠의 춤을 출 때도 있으며,

역경의 오디션을 뚫고 화창한 뮤지컬의 주인공으로 서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깊은 고민과 독백도 해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니까요


이 영화가 기억에 특히 깊게 남는 이유는 화려한 쇼와 훌륭한 음악, 주인공들의 매력 때문이 아니라

결국에는 각자의 길을 걸으면서 서로를 응원하게 되는 모습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여름의 뜨거움이 영원한 것만은 아닌 것처럼요



개인적으로 영화 감상에서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부분이 음악입니다

영화라는 종합 예술 장르에서 음악은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고,

어떤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 하는 부분도 영화 해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도가 들어가 있을 테니까요


그렇기에 아예 음악을 주소재로 하는 음악 영화는 흥미롭습니다

어떤 음악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영화의 키 포인트가 되니까요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이 어떤 음악을, 어떤 장면에, 어떤 방식으로, 왜 배치하였는가를 고민해보면 상당히 즐거운 감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들이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감상도 해 볼 수 있고요


당연히도 음악 영화가 취향이 아니신 분들도 많을 거예요

저는 재밌게 봤던 '레미제라블'에 대한 평가가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만 봐도 그렇죠


기회가 된다면 이 글을 계기로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시면 좋겠습니다

정답은 없기에 취향의 이유는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이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또한 즐거운 경험이니까요


This is your life,
you can go anywhere
You gotta grab the wheel and own it,
you gotta put the pedal down
And 'Drive It Like You Stole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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