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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나비 Nov 22. 2024

나의 빈틈을 채워주는 것들

말없는 것들의 위로


생의 빈틈이나 존재의 허전함을 사람으로 채우려는 건무리한 욕심이다. 그래서 음악이 필요하고 책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말 없는 그것들이 품은 살 같은 말에 기대어 살아가는 나를 본다.


나는 사람과 관계 맺는 법, 사람을 사랑하는 법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간다. 그저 연연하지 않을 만큼 가까워지기를 희망한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은유



어느 날 문득, 모든 관계가 얼마나 가볍고 쉽게 흩어질 수 있는지를 실감한 적이 있다. ‘시절 인연’이라는 말로그저 위로해 보려 했지만,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오래 함께할까를 떠올리면 종종 허무함이밀려온다.



나는 주로 동호회 같은 모임을 통해 사람들과 친해졌고, 그중 몇몇은 단짝처럼 가까워지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곁에 남은 사람들은 내가 어떤 모습인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달라져 있다.



한때는 가장 친한 친구 같았던 사람도 어느 순간 내 곁에서 사라졌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들은 딱 그 시기의 나와, 그 순간의 감정으로 나를 나누고 즐겼던 사람들일 뿐이었다. 나는 왜 그 관계를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을까 자책할 때가 많았다.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고, 머물 수도, 떠날 수도 있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느 날, 아무도 곁에 없다는 기분에 사로잡혀 방 안에서 책을 꺼냈다. 책장에서 얌전히 기다리던 책 한 권이 손에 닿았다. 익숙한 표지를 열자마자 나는 그 안에서 오래된 친구 같은 따스한 안도감을 느꼈다.



음악도 마찬가지였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곡이 어느 날 문득 나를 찾아와 내 감정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 조용히 나를 감싸며 위로해 줄 때가 있다.



말 없는 것들은 떠나지 않는다. 내가 손을 뻗기만 하면 언제나 그 자리에 있고 내가 어떤 모습이어도 변함없이 나를 받아준다. 그것이 내게 영원할 거라는 믿음을 준다. 그 믿음 덕분에 내 삶은 조금 더 평온해진다.



혼자 밤 산책을 하다가 조용히 흐르는 물소리에 발걸음을 멈춘 적이 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물은 아무말 없이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고요한 밤, 선명하게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나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 평온함 속에 스스로를 맡겨 보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고독 속에서 내가 즐겨 듣던 음악이 낯선 언어로 나를 불렀다. 무슨 뜻인지 모르더라도 나의 감정에 맞게 이해될 때가 있다. 그 가사가 마치 나만을 위해 속삭이는 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너 괜찮아, "라고 다독이는 듯한 그 선율에 허전했던 마음이 조금씩 채워진다.



걱정 말아라

너의 세상은 아주 강하게

널 감싸 안고 있단다


두 손 너에게, 스웨덴 세탁소(feat. 최백호)


뻔한 말일지 모르지만 그날의 나는 그것이 필요했다. 음악은 말 없는 위로로 내게 다가와 주었다.


사람은 변하고 상황에 따라 내 곁에 머물기도 하고 멀어지기도 한다. 인간관계는 늘 유동적이라 때로는 불안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음악, 책, 자연, 익숙한 공간처럼 말 없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필요할 때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그 믿음은 마치 등대 같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며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을 준다. 덕분에 고독 속에서도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말 없는 것들은 내 감정을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곁에 머물며 내가 어떻게 그것들을 받아들이든 모두 받아준다. 그래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복잡함이나 상처와는 다른, 순수하고 단단한 안정감을 준다. 내 삶의 빈틈은 사람보다 말 없는 것들로 단단하게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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