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34. 20190429

by 전영웅

네가 다시 그곳으로 갔다. 시간은 너무 빨리 흘렀다. 네가 집에 도착해서 마당에 발을 들이자마자 너를 알아보고는 너무 반가워하던 라이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앉은 자세로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고 귀를 뒤로 접은 채 다가오는 너를 연신 핥고 몸을 비볐다. 그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날의 일정 때문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바쁘게 가야만 했던 네 모습이 눈에 밟힌다. 집 안팎의 풍경은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인데, 네가 다녀갔다는 사실만으로 허전함이 내려앉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커다란 구멍이 생긴 것 같다. 거기에, 네가 어지러놓은 잡다한 것들이 아직 네가 집에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너의 존재는 그렇게 크고, 아프다.


너를 마중하고 제주로 다시 내려온 엄마는 내내 너의 이야기만 했다. 표정에는 네가 없어 공허와 허전함이 가득했다. 아빠도 마음이 그러해서, 기분을 달래려 함덕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거기서도 엄마는 내내 너의 이야기만 했다. 늦은 저녁이 되어 돌아온 집은 너무 조용하고 공허했다. 네가 있었다면 채울 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다. 이제 앞으로 석 달 정도, 아빠는 네가 없는 생활을 해야 한다. 중간에 엄마가 너를 데리러 그곳으로 가면, 아빠는 다시 혼자 생활해야 하겠지. 다시, 작은 고난의 시간이 시작되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이 시간이 마지막일 거라는 확신을 담은 기대를 한다.


너에게는 그곳에서의 마지막 학기가 될 것이다. 네가 그곳에 남길 원하지 않는 한, 아빠는 너와 더 이상 떨어져 있기를 원치 않는다. 네가 좀 더 크고, 좀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거나 일을 해야 하기 전까지는, 엄마와 아빠 곁에 있기를 바란다. 그게 맞다. 사실 아빠는 너와 아빠가 떨어져 있었던 이번 일 년간의 시간은 생각 외로 너에게 그리고 가족 모두에게 좋은 경험이었다 판단한다. 애초에 너를 그곳으로 보내기로 한 의도와는 별개로 말이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이라 생각한다. 마지막 학기라는 남은 시간이 마치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가파르고 높은 산처럼 느껴지지만, 너와 엄마 아빠는 힘든 시간을 통해 무언가 소중한 것을 얻은 기분이고, 마무리까지 그러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그러니, 우리 서로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지치지 말자.


아빠는 항상 너에게 바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고, 잘 모르겠으면 한 번 더 생각하라고 했다. 그리고, 정말 힘들다면 언제든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이것은 언어나 공부보다도 정말 중요한 인생의 기본자세이다. 너는 영어공부를 목적으로 그곳에 가 있지만, 어떤 말이든 그 말을 하는 사람의 기본자세나 생각을 바탕으로 말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리고, 정말 못하겠을 정도로 힘들다면, 그것은 당장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시간이 지나 너의 능력이 조금 더 커져야 할 수 있는 일일 수도 있다. 네가 지금의 나이에서 가장 행복하고 꾸준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엄마나 아빠에게 솔직해지는 것이다. 너는 아직 어리고, 그러기에 어른을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 부모와 어른들은, 너의 성장을 위해 언제 어디서나 도움을 줄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다.


제주에 머무는 동안, 너는 많이 변한 모습을 보여주었고, 여전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아빠는 순간순간 너에게서 앞으로 볼 수 있는 긍정의 모습들과 너에게 잠재된 가능성들을 보았다. 아마도, 너는 세상을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 풍성하고 두터운 재능을 가지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너는 아직은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필요한 만큼 앞으로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이 너를 채우고 단련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네가 있는 동안 바랬던 것들을 다 해주지 못해 많이 아쉽다. 스튜도 먹고 싶다고 했는데 만들어주지 못했고, 네가 좋아하는 육회도 먹질 못했구나. 시간이 좀 더 허락되었다면 같이 가 보고 싶은 곳도 많았는데 말이다. 제주에 다시 오면 먹고 싶고, 하고 싶은 것들을 많이 생각해 두어라. 그리고, 오늘 아침 첫 등교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영상통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네가 그곳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아빠도 나름 수련의 시간이다. 책을 읽다가 너의 기상시간에 맞추어 영상통화를 하려 한다. 받아주었으면 좋겠다. 엄마에게도 한결 더 상냥하게 문자를 해 드려라. 다시 집으로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을 서로 잘 채워보자.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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