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 가까운 그곳 시간에 비행기를 탄 아빠는 다음날 오후 한 시 조금 넘어 일하는 서귀포 병원에 도착했다. 여유라고는 라이 녀석에게 잠깐 인사하고,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을 수 있는 정도였다. 피곤이 많이 쌓였고, 여행 피로는 이틀이 지난 지금도 쉽게 가벼워지지 않는다. 너에게 아침마다 했던 영상통화를 하지 못한 핑계다. 매번 늦잠을 자고 있다.
같이 있던 시간이 멀지 않은데, 조금 아득하다. 영상통화에서만 보던 너의 교복 입은 모습을 직접 보고, 아빠가 넥타이 주름을 잡아 주고, 너를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직접 너와 함께 하는 경험은 아빠에겐 조금 아픈 마음이었고, 조금은 뿌듯한 마음이었다. 그리고, 너는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내리는 차에서 아빠와 주먹을 자연스럽게 마주대며 인사했을 때, 너 역시 좋았을 거라 생각한다.
형제들과도 잘 지내는 모습에 감사한다. 잠시 투닥거린 시간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빠가 머무는 동안에는 그런 시간이 있었음을 느끼지 못할 만큼 잘 지냈다. 형제 없는 너에게 아빠는 너와 함께 하는 사촌남매들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아빠는 쉽게 겪지 못했던 형제 남매간의 아우성을 부러워한다. 왠지 너는 그곳에서 좋은 경험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아, 고맙고 감사하다. 아빠가 가까이만 있을 수 있다면, 네가 거기서 오래 공부하는 건 어떨까도, 솔직한 마음으로는 고민스럽다.
동시에 아빠는 네가 어서 제주로 왔으면 하는 바람도 크다. 가족이 오랜 시간 떨어져 지낸다는 건, 아무리 혈연이라도 끈이 점점 가늘어져 끊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의 아빠같이, 기러기 가족이 된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외로움을 참지 못하고 힘들어하거나, 결국 가족이 헤어져버리는 일이 어째서 생기는지를 아빠는 조금 이해하게 되었다. 마음의 문제는 사람에게 있어 가장 크고 무거운 문제이다. 너에겐 아직 어려운 말이겠고, 이해 역시 어렵겠지만, 가족은 너무 오래 떨어져 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빠는 크게 느끼고 있다. 물론, 너와 엄마를 연결하는 아빠의 끈이 가늘어지고 있다는 말은 아니다. 가까이서 너와 눈을 맞추지 못하는 아쉬움과, 엄마의 조금은 조급한 마음을 달래 줄 수 없음이 안타까워 그런 것이다.
옆에서 함께 하는 너를 보고, 엄마와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음은 너무 좋은 시간이었다. 동시에, 너를 고민하는 엄마의 마음과, 여전히 자제했으면 하는 너의 모습은 아빠의 마음속에 남은 고민거리다. 모든 게 좋을 수는 없다. 엄마와 너 사이에서 아빠의 역할을 고민하다 보니, 네가 너무 멀리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문제는 네가 제주로 돌아와도 여전한 고민일 것이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너와 엄마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음은 다행일 것이다. 아빠는 당분간, 너에게 좀 더 맘 편히 의지할 수 있는 어른으로 역할을 할 것이다.
외삼촌, 외숙모와 사촌남매에게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을 항상 가지거라. 너에게 머물 수 있는 자리 말고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알게 해 주는 사람들이다. 멀리 계시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에게도 항상 감사해라. 네 생각 말고는 다른 생각을 거의 하시지 않는 분들이다.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종종 라이 녀석을 돌보아 준 친구들 가족에게도 고마움을 가지고 있어라. 그리고, 너를 항상 옆에서 돌보아주는 엄마에게, 마음만은 언제나 감사해라. 그리고, 가끔은 그 마음을 직접 전해라. 행동과 마음이 쉽게 일치하지 않을 것임을 아빠는 이해한다.
아빠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병원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고, 라이 녀석도 집에 불이 켜지니 마음이 놓이는 표정이다. 한 주가 지나면, 너는 다시 혼자일 것이고, 엄마는 아빠와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마지막을 충실하게 경험하고 즐겨라. 지금은 순간순간이 나중의 짙고 두터운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하든, 너를 빚어낼 시간이다. 성실하고 즐겁게 이 시간을 지내길 바란다. 아프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