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뒤면 너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야 한다. 네가 정한, 그곳 학교에서의 마지막 학기 첫날이다. 방학은 끝났다. 너는 방학이 어땠는지 모르겠다만, 아빠는 너와의 시간이 참 빨리 흘러버렸다는 생각만 가득하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모든 것이 파도에 한 번에 쓸려 가버린 것만 같다. 아빠는 지금, 네가 머물던 집 안의 풍경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중이다. 이제는 여름도 지나가고 있어서, 네가 놀던 간이 풀장과 해먹 등등을 정리하고 거두어 넣어야 한다.
네가 집에 머무는 동안, 네 모습을 보면서 다시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여전한 너를 깨달았다. 자연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엄마의 조급함과 아빠의 진지함 사이에서 너도 조금 괴로웠을 거라 생각한다. 어쩔 수 없다. 네가 점점 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엄마 아빠가 생각이 많아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너는 집이라서 편히 마음을 놓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빠는 그 모습이 다행이고 반가웠다.
두 가지를 이야기해야겠다.
첫째는 종교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빠 이야기가 언제나 그렇듯 조금 어렵다. 네가 좀 더 자라면 당연하게 깨닫게 되겠지만, 종교란 절대적 사실이나 진리가 아니다. 종교는 네가 생활하는 데 있어 옳다거나 바르다는 생각의 기준일 뿐이다. 세상에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의 틀이 많이 존재한다. 그것이 나름 합리적이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역시 그러하기에 존재하는 의지의 대상이자 생각의 틀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절대적 진리라고 판단해버리는 순간, 너의 생각은 이기적이 되고 보이는 세상은 너무 좁아진다. 모든 종교가 그러하듯, 기독교 역시 인간의 산물이다. 신을 설정하고 신의 말씀이라 여기는 경전을 만들어 자신들의 생각과 행동의 규범으로 여긴다. 요약하자면, 기독교적인 도덕책을 따라 행동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사람들이 절대 진리와 종교를 혼동하는 이유는, 절대 진리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자연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과학적으로 인간이 우주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생각해 보거라. 그러나,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신을 설정하고 우주를 그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기독교는 하나님이라는 신을 설정해 둔 채, 신의 뜻에 따라 인간이 살아야 한다 말하는 인간적 도덕규범일 뿐이다.
아빠도 중고등학생 시절엔 종교에 한껏 빠져 있었다. 대학생이 되어서 점점 벗어날 수 있었다. 너의 기독교적 신심이 잘못된 것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종교에 너무 빠져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좁아지고 왜곡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된다. 세상은 기독교적이지 않고, 기독교적이지 않은 세상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절대 진리 안에서 자연히 흐르고 있다. 역시, 아빠의 이야기는 여전히 어렵게만 흐른다.
두 번째는, 약속을 지키라는 말이다. 예전에도 아빠는 너에게 서로 합의한 규칙은 반드시 지키고, 만일 규칙이 너에게 불리하다거나 공정하지 않다면 협상을 하라고 말했었다. 모든 것은 논리적이어야 한다. 그렇지만, 너는 이 말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너는 너의 생각에만 빠져서 협상을 해야 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고 고집만을 부렸다. 그리고, 규칙을 지키지 않았다. 네가 아빠에게 핸드폰을 일주일간 압수당한 이유이다. 너는 그 이유 역시 논리적으로 납득하지 않았다. 아빠가 핸드폰을 압수한 이유는 네가 게임을 해서가 아니라, 정해진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서였다. 아빠가 일주일에서 하루 일찍 핸드폰을 돌려준 이유는, 아빠가 제시한 일정량의 운동을 하면 압수 시간을 줄여주겠다 제안했고, 너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 후 그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협상의 주도권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고, 제시받은 제안이 네가 받아들일 만 한가를 생각해야 한다. 네가 어서 돌려달라 고집만 부리고, 아빠가 제시한 협상에 짜증만 냈다면, 아빠는 절대로 너에게 핸드폰을 주지 않았을 것이다.
너는 이제 대화와 설득과 합의가 가능한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약속을 하고 대화를 하는 데 있어 정확하고 일관성 있는 기준을 설정하고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네가 집에 있는 동안, 아빠는 그런 너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마음 편히 놓을 수 있는 집이었기에 그랬다고 이해하겠다. 그러나, 정말로 명심해야 할 것은, 집 바깥에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너의 고집만 부리거나, 남들과의 대화에서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자꾸 들이댄다면, 너는 철저하게 무시당할 것이다. 이것은 친구관계나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 기본이자 아주 중요한 내용이다.
마지막 학기를 잘 보내고 오거라. 여전히 더운 그곳에서 네가 돌아오면 이 곳은 겨울이 시작되고 있을 것이다. 이 시간이 꽤 길지만 생각보다 금방 지나갈 것이라 생각한다. 아빠도 일주일 후면 너를 보러 그곳에 갈 것이다. 그리 힘들거나 외롭지 않은 시간이길 바란다. 사실 너는 그곳에서 정말 잘하고 있었으니까.. 편지로, 영상으로, 그리고 직접 마주 보고 자주 이야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