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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Oct 09. 2023

바람냄새가 밴 사람들, 그 이후..

스스로 써 보는 내 책에 대한 독후감. 

  책이 출간된 후의 반응들과 몇 번의 북토크를 진행하면서 느낀 점은, 나는 좋은 의사가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이러했다.  섬세하게 상대를 바라보고, 폭넓게 설명을 잘 해주는 의사를 만나 반갑고 고맙다.  사실 내가 그러한 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의사들이 어떻게 환자를 대하고 있는지도 나로서는 쉽게 알 길이 없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의사들 대부분이 극우에 속하고 사고의 폭이 좁다는 정도는 알고 있다.  아픈 사람들을 끊임없이 만나는 일을 하다보니, 진료시간 외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사회성도 그다지 좋지 않다.  그리고, 환자에 치이는 경우엔 설명을 제대로 할 기회조차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바라는 좋은 의사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내가 좋은 의사가 되기에는 쉬울 수도 있다.  어떤 면에서 좋은 의사란, 치료를 잘 하는 의사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공한 전문분야를 버리고 일반과 의사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의사가 아닐 수도 있다.  의료 대부분의 분야를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수준에서 바라보고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니 말이다.  


  책의 의도 자체가 그러했지만 나는 좋은 의사의 이야기, 또는 의사가 들려주는 진료실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다.  진료실에서 바라보면 어쩔 수 없이 보이는 세상과, 세상을 채우고 있는 구조의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의사의 정체성을 가지고, 의료이야기보다는 그 뒤를 감싼 세상이야기를 적어내려간 것이다.  그 작업은 조금 괴로움이 생길 정도로 어려웠다.  동네 의원 진료실은 단순한 환자들이 많아서 글감을 짜 내기 어려웠고, 그만큼 드라마틱한 일도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소소하고 단순한 상황이 가지를 쳐 나가는 배경의 모습을 잘 유추하고 파악해야 가능한 글이었다.  세상의 구조와 문제를 이야기하는 글이나 책은 이미 수없이 많았다.  그런 책들은 세상의 문제에 자신이 바라보는 시선으로 매우 디테일하게 분석하고 설명해서, 더 이상 다른 말을 붙일 필요조차 없는 수준이기도 했다.  나는 의사로서, 그리고 진료실 안에 있으며 보이는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그 시선은 너무 간접적이라, 글에서 제기하는 문제들은 무디고 피상적이었다.  어찌보면 시선과 말이 시작되는 지점은 신선할 수 있었지만, 내가 제기한 문제들은 이미 엄청나게 쌓인 디테일 가득한 말과 글들을 생각하면, 굳이 더 가져다 붙일 필요가 없는 글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 그랬을 지 모르겠다.  이미 세상에 충분히 존재하는 말과 글에 기댄 채 이미지만 좋아진 의사는, 세상의 문제에 대해 같이 고민하는 질문을 그다지 많이 받지 못했고, 같이 토론하는 기회도 많이 만들 수 없었다.   

  그럼에도 내 책에 의미를 부여할 자신이 있는 이유는, 세상에는 섬세하고 분명한 문제제기의 말과 글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다지 그런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는 그런 말과 글들 자체의 어려움이나, 의도치 않게 둘러치는 경계로 발생하는 접근의 어려움이 생긴다.  진료실에서 보는 사람들과 세상의 모습은 이를 깨닫게 한다.  부당하거나 모순된 구조 안에서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처지를 깨닫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목격한다.  또는 알지만, 어쩔 수 없이 순응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본다.  이들은 세상에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해주는 말과 글들이 넘치도록 많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또는 우연한 기회에 그런 말과 글들을 소개해주거나 언뜻 이야기를 할라치면, 머리가 아프다거나 귀찮다는 이유로 손사래를 친다.  마치 종교집단이 펼치는 포교활동에 귀찮아하거나 관심없어하듯, 사람들은 세상의 이야기를 그다지 반가워하지 않는다.  내 책의 지점은 ‘아마도’ 이 쯤에 존재할 것이다.  쓰다보니, 그리고 써내려가면서 느껴보니 그 지점이 보였다.  그래서 책이 제기하는 문제들이 무디고 피상적이지만, 그런 총론적 접근이 사람들로 하여금 거부감이 덜 들게 하고, 조금이라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같은 시대에 책을 판다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임을 깨닫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물론 책을 파는 일은 출판사가 하는 일이지만, 육지의 출판사는 제주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책을 제주에서 어떻게 팔아야 할 지를 잘 파악하지 못했다.  결국 제주에서 책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일은, 내가 뛰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교보문고와 영풍문고의 진열대에 내 책이 나타났다가 서고로 밀려나는 모습, 온라인 서점들에 소개된 내 책의 판매지수의 변화를 보면서, 나는 출판현실을 어렵지 않게 인지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았다.  리터러시(문해력)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누군가의 말에 쉽게 동의할 수 있을 만큼, 책은 잘 퍼져나가지 않았다.  물론, 내 책은 많이 읽혀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나타났다가 반짝 하고 사라지는 수많은 책들 중 하나가 되어버린 모습은, 그냥 글을 좋아하지 않는 현실 그 자체였다.  더구나 내 글이 재밌거나 매력을 끌 만큼 관심있는 주제를 가진 것도 아니니 더더욱 그러했다.  거의 동시에 나온 어느 연예인의 책이 주목할 만한 책이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모습에는, 책도 인기가 있어야 잘 팔리는구나 싶었다.   


  제주 입도 13년차이지만, 나는 육짓것이었다. 제주에 살면서 나 역시 이 환경과 사람들에 많이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책을 가지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토박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나, 나보다 꽤 오랜 시간을 이 섬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감수성의 차이가 여전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랜 시간 경험한 것들에 많이 익숙해지고 또는 무뎌진 것들에 대해, 내가 말하는 모습에는 예민함과 날 것이 뒤섞여 있었다.  그것은 자칫 잘 모르는 사람이 어설픈 지식으로 던지는 질문같은 것일 수도 있었다.  또는, 무뎌져서 더 이상 아무도 말하지 않는 문제를 다시 드러내는 작업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조심스러웠다.  책에서 이야기했듯, 내 질문들은 오지랖넓은 육짓것의 쓸데 없는 관심이나 관여일 수 있었다.  내 글과 이야기를 접한 누군가는 생각지 못했던 시선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쓸데없이 던지는 귀찮은 질문’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지기엔 좀 귀찮은 이 섬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4.3이 그랬고, 뱃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랬다.  


  책을 한 권 내고 나니, 끝이 아니었다.  그래서 진지함을 가지고 한동안 뛰어다녔다.  그리고, 다시 숙제를 안는다.  다음 책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내 스스로 생각하는 다음 책에 대한 구상들..  그런데, 15년이라는 기간의 글들을 모아 추스린 내용이 200페이지 문고판으로 압축되는데, 다음 책은 얼마나 집중을 해야 제대로 된 내용과 적당한 시기에 출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생긴다.  오지랖을 줄여야 책에 집중도 할 텐데, 나는 여전히 이것저것 벌이는 일이 많다.  병원에도 집중해야 한다.  정리가 필요하다.  매번 하는 말이면서도 하지 못하는 이 허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첫 책은 나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 주었지만, 언제나 똑같은 나의 문제를 다시금 깨닫게 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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