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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영웅 Nov 21. 2023

콘크리트 유토피아

  거칠게 표현된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들의 살고자 하는 욕망.  비난할 수 없는 이기심과 통제된 이타심이 뒤섞인, 물리적 경계 안의 공동체의 모습.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속 아파트라는 공간과 겹치며, 숨겨지지 않는 불편함을 처음부터 끝까지 안으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각자의 처지에서 어떻게든 살고자 하는 욕망이 물흐르듯, 그리고 세밀하게 묘사된다.  황궁아파트라는 공동체가 살고자 하는 노력 역시, 설득력있게 묘사된다.  살고자 하는 다양한 노력과 본능들 중 하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것이 생존의 관점에서 지속력이 있는지 없는지와는 별개로 말이다.  

  영화를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황궁아파트 공동체는 파국을 맞는다.  그리고 명화(박보영 역)는 혼자 살아남아, 다른 공동체에 의해 구조된다.  명화는 황궁아파트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들’로 기억한다.  그리고, 여기서 살아도 되냐는 질문에 ‘살아있으면 그냥 사는 것’이라는 답을 얻는다.  아마도, 이것이 영화를 통해 감독이 말하고 싶은 메세지였을 것이다.  메세지, 그리고 메세지를 표현하는 영화적 방식 역시 너무 교과서적이라 조금은 식상할 정도다. 


  하지만, 의문은 영화의 밖에서 발생한다.  명화는 정말 민폐였을까?  명화가 지키고자 한 인간으로서의 신념은 공동체가 지속하는 데 있어 정말 걸림돌이었을까?  수많은 평들이 명화라는 캐릭터에 대해 ‘민폐’라는 딱지를 붙인다.  심지어, 어떤이는 영화의 결말은 명화가 혼자서 지친 모습으로 먹을 것을 찾아 폐허를 뒤지며 다니는 모습으로 끝나야 했다고 말한다. 

  레베카 솔닛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난 자연 재해 상황에서 발현되는 인간의 이타적이고 협동하는 본능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버드 로스쿨 교수인 요차이 벤틀러는, 이기심과 저마다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상에서도, 경쟁보다는 협력이 더 많은 이익과 긍정적 결과를 도출해 낸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영화를 다시 반추해보면, 실제 재난상황에서 명화의 신념은 단순히 민폐라고만 규정할 수 있을까?


  세상의 변화는 상대적이다.  그리고 변화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의 변화에 대해 옳고그름을 쉽게 판단할 수 없다.  단지, 변화에 따라 우리가 나아가는 일이 옳은지 그른지, 또는 합리적인지 불합리한지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감독의 메세지는 명화를 통해 분명하지만, 영화 밖의 사람들은 그 메세지를 쉽게 인정하지 않는다.  황궁아파트 공동체가 지속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떠나 명화는 그저, 공동체를 훼방하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을, 쉽게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런 사람들이 실제 벌어진 현실 속 재난상황이나 무질서의 상황에서 보여줄 행동은 어떠할 지, 쉽게 예측하거나 미리 안타까워 할 수도 없다.  상대적으로 변하는 세상속에서의 답이나 합리 역시 상대적으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의 합리가 이른 공멸을 통한 고통의 단축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우리는 충분히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이타적 본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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