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작업은 계속되었다. 밭일은 때가 있다. 때를 맞추지 못하면 농사는 망치기 마련이다. 3월과 4월은 그 때를 맞추기 위해 분주할 수 밖에 없는 시기이다. 머리 속에서는 작업의 과정과 순서가 나름 그려졌고, 일정과 시간 그리고 날씨를 보아가며 순서대로 작업을 이어나갔다. 작업은 어쩔 수 없이 주말에만 가능했다. 주말은 거의 온전하게 텃밭에 투자하는 시간이 되었다.
주말 작업을 이어가는데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집을 짓고 텃밭을 처음 시작할 때엔,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 전 한 시간 정도를 텃밭과 마당일에 투자했었다. 지금은 일어나서 씻고 아침먹고 출근하기 바쁘다. 몸이 피로함을 많이 느껴서 그러는 걸까? 아니면 내가 게을러져서 그러는 걸까?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한 의문이 들었다. 나이가 들면 아침잠이 없어진다는데.. 사실 새벽이면 잠을 깨서 뒤척이다 동틀녘 잠깐 잠들었다가 일어나는 날이 다반사다. 불을 켜고 책을 읽기도 애매하고, 일어나 바깥일을 하기도 애매한 그런 시간과 상황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깜빡하고 눈을 떠 보면 동이 터 있고 알람이 울린다. 애매해져버린 일상의 한 때를 몸의 탓으로 돌려야 할지, 습관의 탓으로 돌려야 할 지 여전히 모르겠다. 아침 출근 전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큰 작업은 못해도 마당의 거침없는 잡초들에 마음이 심란할 일은 없을텐데 말이다.
고민은 고민이고 작업은 어떻게든 때를 맞춰 마무리해야 했다. 삽 하나로 땅파기는 이어졌고, 이틀 나절의 시간에 계획한 구석까지 마무리되었다. 한 주가 지나고, 나는 장화를 신고 다시 텃밭으로 들어갔다. 줄자를 들고, 표식으로 쓸 지주대를 들고, 나무조각에 노끈을 길게 감아 들고 들어갔다. 틀밭을 생각한 규격대로 구획해야 했다. 틀밭 너비는 70cm, 틀밭 사이 간격도 70cm, 이 기준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틀밭의 네모 모양이 틀어지지 않도록, 옆집의 반듯한 담벼락을 중심으로 30cm 간격을 두고 구획을 정했다. 틀밭의 길이는 너무 길어지지 않게 평균을 잡아 정했는데, 가장 긴 길이가 5미터를 조금 넘고 있었다. 텃밭 안의 귤나무, 살구, 자두 등의 나무를 피해서 구획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었다. 구획작업도 나름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일요일 오전 내내 구획작업을 하고서는, 표식을 따라 노끈을 펼치고는 생각한 틀밭공간 안으로 흙을 퍼올렸다. 일종의 이랑을 만드는 셈이었다.
퍼올린 흙 경계를 따라, 그러니까 펼쳐진 노끈을 따라 잘라두었던 파레트 조각들을 설치했다. 틀을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작업이라기보다는 가져다 놓는 정도였는데, 돌과 무너지는 흙에 경계가 고르지 않아 고정하기가 번거로웠다. 그럼에도 부피가 있으니 놓기엔 어렵지 않았는데, 옆모서리는 그렇다 해도, 앞뒤 모서리는 얇은 판자를 사용해야 해서 고정이 조금 쉽지 않았다. 돌들을 치우고 망치로 흙에 대략 박아넣는 식으로 작업을 진행했다. 잘라둔 파레트가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파레트 조각과 함께 남은 판자들이 상당했다. 날이 좀 더 더워지면, 밤에 불을 피울 땔감으로 사용할 생각이다.
가장 큰 작업은 잡초매트를 까는 일이었다. 틀을 대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고 금방 마무리되었지만, 잡초매트 작업은 뭔가 마음의 준비를 하게끔 만들었다. 60cm 너비의 잡초매트를 통로구간에 모두 까는 작업이었다. 통로뿐만 아니라, 텃밭 공간에서 경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공간과 나무 주변을 모두 덮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에 사용하는 잡초매트는 부직포 매트를 사용했다. 비닐매트보다 내구성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비닐보다는 부직포가 더 마음에 들어 구입했다. 나중의 후회와 추가작업은 결국 내 몫이니, 큰 걱정은 없다. 틀밭 사이의 통로는 파레트 틀 아래로 부직포를 밀어넣고 금속 핀을 박아서 고정했다. 일차 작업은 틀밭 사이의 통로에 매트를 덮는 일이었다. 그 다음은 텃밭 가장자리로 매트를 덮었다. 옆집 담벼락 아래의 돌무더기와, 양측 잡풀과 나무와 로즈마리가 무성한 자리의 바닥 가장자리를 최대한 덮고 금속핀으로 고정했다. 이 작업이 힘들었는데, 매트를 접어서 간격을 맞추어야 했고, 덤불과 바닥이 불균질한 돌무더기 안으로 들어가 덮을 공간을 가늠하고 힘겹게 고정할 자리를 찾아 망치질을 해야 했기 때문이다. 금속핀을 박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흙으로만 되어 있어 핀이 쉽게 박히면 다행이지만, 아래 돌이라도 있어 들어가다가 막히면, 다시 뽑아 각도나 위치를 다시 잡아야 했다.
그 다음은 나무 주변으로 약간의 공간을 남겨두고 바닥을 덮는 작업과, 남은 공간을 모두 덮는 작업이었다. 너비와 길이를 가늠하고, 바람에 날리지 않게 핀으로 고정하는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어정쩡한 자세와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했더니, 허리와 안쪽 허벅지의 통증이 상당했고, 몸통과 다리가 접히는 서혜부 양쪽으로는 옷에 쓸려 상처가 났다. 주말작업이긴 했지만, 주중 내내 몸이 아프고 걸음은 어기적거렸다. 언제나 그랬다. 텃밭하는 봄의 노동량은 상당해서, 몸이 항상 아팠다. 이전에는 6월에 심을 고구마 밭을 조금 남겨두고, 그늘진 구석자리는 그냥 방치를 했었다. 이번에는 이 공간까지 손을 보고 작업을 하니 몸의 통증은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작업을 여기까지 마치고 텃밭을 바라보니 마음이 뿌듯했다.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몸은 먼지와 땀으로 뒤덮였다. 뭔가 큰 고비를 넘기고 있구나.. 그러고는 마당으로 눈길을 돌리니 여기저기 덤불처럼 불쑥불쑥 올라와 있는 잡초들이 보였다. 역시, 텃밭과 마당일은 끝이 없음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남쪽 모서리의 로즈마리 덤불도 전정해야 한다. 집 주변의 잡초들도 다 뽑아야 한다. 봄은, 나들이도 여유도 없는 계절이 되어버렸다. 집에 매달려야 한다. 고사리 꺾는 일은 점점 요원해진다. 게다가 날이 더워져 이젠 봄도 짧다. 서둘러야 한다. 이제 틀 안의 밭흙에 멀칭을 해야지. 비닐 잡초매트를 들고 다시 텃밭으로 들어간다.
틀 안의 멀칭도 고민을 살짝 해야하는 작업이라 어떻게 덮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통로와 마찬가지로 금속핀으로 모서리를 박아 고정했다. 두 구획을 작업하고 나니, 라디오에서 6시 알람이 울렸다. 정리해야지.. 토요일 저녁인데 술 한잔 해야지.. 몸도 힘드니 술이 간절했다. 소맥으로 말아 마셔야겠다. 내일 일요일은 멀칭작업을 모두 마치고 지주대 작업을 해야 한다. 시간이 남으면 주변정리도 해야겠지.. 무엇을 심을지 이제 슬슬 고민해야 한다. 날이 빨리 더워지니 심는 시기도 빨라져야 한다. 4월 마지막주로 고민중인데,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