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영 작가의 북토크에 참여했다. 작가의 소설은 장편으로는 ‘원도’, ‘구의 증명’, ‘단 한 사람’, ‘이제야 언니에게’ 를 읽었고, 단편으로는 ‘홈 스위트홈’과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읽었다. 글이란 읽을수록 글쓴이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고, 글은 작가의 서사를 추측 또는 궁금하게 한다. 글에서 느껴지는 심리, 작가의 경험 등등.. 나도 나름 글을 쓰는 사람으로, 글을 쓰는 다른 이들의 그런 것들이 궁금해진다.
‘이제야 언니에게’에서 작가는 폭력을 당한 피해자의 곁에 머문다. 함부로 다가가지도 멀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곁을 줄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가만히 응원한다. 나는 소설 속 시선이 가진 이 스탠스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원도’와 ‘구의 증명’ 에서는 주인공을 고통속으로 있는 힘껏 몰아세우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괴롭히고 있었다. ‘단 한 사람’과 ‘홈 스위트 홈’에서는 다가온 고통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안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불안하지만 평범하고 잔잔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삶 그대로를 묘사하고 있었다.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 함부로 응원하거나 즐거워하지 않는다는 것, ‘정말 이렇게 아무렇지 않고 평범한 것이 최선이고 전부인가?’ 라는 마음 속 의문에 ‘그게 전부고 당연한 것’이라고 담담하게 대답을 해 주는 것 같은 글이 작가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괴롭고 섬세하고 담담한 글들이 어떤 경험에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경험들이 편집되고 각색되어 글로 재구성되었는가 궁금했다. 나는 경험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다. 소설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을 토대로 내가 배우고 접한 이론에 기대어 생각을 써내려간다. 글은 기본적으로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하루 종일 진료실에만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래서 글을 쓰는데 치명적 단점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작가는 내 생각과 전혀 다른 지점에 있었다.
작가는 감정을 글을 쓴다고 했다. 생소한 대답.. 감정이 글이 된다는 점은 이해하겠는데, 그게 어떻게 구체화되어 서사가 되는 것일까? 잘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가는 정말 감정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고 했다. 피해자 이제야의 감정을 느끼며 글을 썼다고 했다. 삶이 무척 괴롭고 힘들 때, 고통 속으로 내몰릴 때, 원도의 주인공이 탄생했다고 했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그것이 ‘구의 증명’이라고 했다. 고통 역시 경험의 일부겠지만, 경험의 구체화나 편집없이, 고통의 감정만으로 서사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은 작가만의 힘일까, 아니면 다른 누구도 그렇게 글을 써내려가고 있는 것일까 하는 다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감정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작가는 시는 다른 영역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작가의 까페였던 무한의 서에서 받아본 절기 편지는, 시와 맞닿아 있었다. 시의 감성이 충만한 문장들.. 감정이 글의 재료라면, 작가는 충분히 시도 써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 시는 커녕 소설도 아직 두려운 나에겐 참 머나먼 일이긴 하지만, 충분히 써내려갈 수 있을 것 같은 작가가 시의 영역과 분명한 경계를 긋는 모습 역시 의아함이었다. 옹포에 내려와 까페를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는 소식에 작품을 접하고 까페를 갔었다. 작품의 세계와 감성은 내가 함부로 무어라 할 수 없는 영역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동시에, 북토크까지 참여하고 난 후로는, 나와는 글의 결이 전혀 다름을 느꼈다. 그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 그런 기분이었다. 나에게 감정은 누르고 다스리다가, 사소한 것이라면 잊고 버리거나, 마음에 담긴다면 언젠가는 경험에 버무릴 하나의 속재료로서 기능할 것들이다. 감정 자체의 글.. 내게는 짤막한 속어들의 나열에서나 마무리될 것이다.
북토크를 마치고 나는 근처 바닷가에서 농어낚시를 할 생각에 장비까지 다 챙겨갔다. 그런데, 포인트에 도착해 파도와 바람을 맞고 있자니 추위와 두려움이 생겨서 이내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북토크에서 느꼈던 묵직한 담담함이 요란스런 밤파도를 이질적으로 느끼게 만들었다. 생소한 글의 세계를 만나고 나니, 익숙했던 밤바람이 한걸음 멀어진 경험이 된 것 같아 두려움이 일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생소해지는 경험이었다. 글을 쓴다는 것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다는 경험.. 그 경험에 내게 익숙했던 세상이 조금 낯설어지는 경험. 그리고 나의 글은 어떻게 깊어질 수 있는가의 고민이 한결 어려워지는 기분.. 쉽게 접할 수 있는 세계는 그만큼 다양하고, 깊이 역시 알 수 없다. 발이 부르트도록 곳곳을 돌아야 하고, 생각한 지점에서 질식을 각오하고 깊게 파고들어야 한다. 발에 굳은살이 두껍게 생기고, 숨을 참다 못해 질식사의 목전에서 겨우 숨을 토해내는 순간, 글은 오롯해질 것이다. 여전히 부드러운 내 글의 발바닥을 부끄러워 한다.